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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ch of spice

2011. 11. 28. 00:46 Film Diary/Review

 




이번 수업을 듣기 전에 디아스포라의 존재를 희미하게나마 인식했던 것은 어느 감독과의 대담자리였다. 그의 이름은 ‘장률’. 대륙과 반도의 어느 중간지점 쯤 위치하고 있는 이 감독의 작품 속에는 중국변방 지역에서 삼륜차를 끌며 김치를 파는 조선족의 모습과 두만강을 경계로 우정을 나누게 된 조선족 소년과 함경도 북한 소년의 관계를 통해, 움직여야만 했던 혹은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불안과 한계의 경계 속에서 삶을 위해 삶을 이어가는 대다수의 수동적 디아스포라의 모습들이 비춰지고 있었다. 사실 영화를 본 이후에도 이 작품들을 통한 뿌리와 정체성에 대한 자각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었다. 영화의 감상이 끝난 후 가지게 된 감독과의 대담자리에서 그가 뱉어낸 이야기를 접한 순간 단순히 서울을 기점으로 안과 밖의 경계인식을 해오던 내 머릿속 지도의 개념이 한층 확대되는 느낌을 받았었다. 중국말로 생각을 한 후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의 영화들은 정작 중국 땅에서는 단 한 차례도 소개 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막연히 기묘한 경험으로서 접하게 된 이러한 이야기들이 문화인류학 수업을 통해 민족과 상상의 공동체의 이해를 거쳐 보다 구체적인 접근을 통해 오늘날의 현실과 인식들에 당도하는 순간 디아스포라에 대한 심상이 보다 강렬하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점점 많은 것들의 경계가 희미해져가는 요즘, <Touch of spice> 속에 담긴 경계와 소비의 함의파악을 통하여 2011년의 대한민국, 영원한 정착과 일관성이란 곧 무의미한 환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역동적인 이곳에서 오늘을 살아가야만 하는 내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그간의 수업을 통해 듣고 느낀 바를 토대로 다시금 떠올려 보고 정리해보고자 한다.


정치적 이권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를 파악하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과 안위를 위해 다퉈온 과정 속에서 역사서의 문장들이 채워져 왔으리라 믿고 있다. 특히 디아스포라 같이 독특한 개념의 집단들은 갈등의 시계추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점점 더 복잡한 형태로서 파생된다고 본다. 만약 키프로스내의 그리스-터키 간 분쟁이 없었다면 파니스는 이스탄불의 어느 향료가게에서 할아버지의 가르침과 사이메와의 추억을 통해 평범한 인생을 살았을 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 작은 소년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것은 자신은 존재조차 모르는 어느 경계지대의 이권다툼이었다. 그렇게 소년의 인생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경계로 문화와 정치의 이동과 마찰 속에서 전혀 새로운 형태의 길을 걷게 되었다.





디아스포라의 존재는 근대국가의 개념이 명확해진 이후, 특히 집단 간의 정치 경제적 침탈이 본격화 되면서 점화되기 시작하여 글로벌화의 추세 속에서 보다 빠른 속도로 다양화되며 하나의 단어로서는 규정짓기 힘든 복잡성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존재를 큰 맥락에서 나누어 파악해 본다면 각자의 원점에 위치하고 있는 뿌리를 향해 정신적으로 품고 있는 향수와 애착의 정도가 그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파니스의 기억과 추억 속으로 들어가는 본 영화의 구성은 독특하게도 유년기와 중년기를 통해 각각의 특성들을 보여줌으로써 한 개인의 순간순간들을 넓게 펼쳐내어 1-2세대의 태도와 존재성의 차이를 한 몸속에 담고 있다. 그 결과 억압의 객체로서의 다수적 측면과 선택의 주체로서의 소수적 측면을 파니스의 인생여정을 통해 보여주며 디아스포라가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측면들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스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주연장신청 기각과 추방명령을 받으면서 이야기는 본격화 된다. 파니스의 가족은 그리스의 혈통을 지니고 있음에도 터키에서 넘어왔다는 이유만으로 경계인의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터키에선 그리스인이며 그리스에선 터키인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일상은 여러 방면을 통해 강요를 받기 시작한다. 파니스의 성장과정 속에서 이러한 측면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교육적 측면에서의 강요이다. 학교와 경찰서에서 파니스의 부모님들이 공통적으로 듣는 이야기는 그리스 언어와 역사에 대한 강조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런 조언을 구하기 전에 파니스 부모에게 던진 ‘터키를 떠나 오신지는 얼마나 되셨죠?‘라는 폭력적인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비단 어린 학생에 대한 교육적 차원의 훈계가 아니라 민족과 민족 간의 갈등 속에서,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상대를 구별 짓고 혈족적인 굴레 속에서 타자를 배격하는 시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상위 문단에서 언급한 차별을 전제로 한 폭력적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요리와 파니스의 관계역시 생각해 볼만하다. 직접적인 정치 사회적 묘사 없이 일상의 영향력을 통해 구성원으로서의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다룬 작품인 만큼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매개삼아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암시해 주는 부분이 많은것 같았다. 유년시절 파니스가 음식을 만드는 행위는 부모와의 사소한 마찰로서 유머러스하게 묘사되고 있다. 물론 향료로서 세상을 묘사하는 영화이기에 필연적으로 따라붙은 요소이지만 나는 그 과정속에서 파니스를 향한 부모와 세상의 시선과 태도를 바라보며 디아스포라와 같은 숙명적 소수자에 대한 올바른 시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틀에서 벗어낫다‘ 판단되는 것들을 향해 무조건적으로 자신만의 삐뚤어진 자를 들이대어 기준을 설정하고 올바르기를 강요하는 태도, 바로 그와 같이 다름에 대한 인정없이 강요와 평준화를 요구하는 폭력적인 시선. 파니스와 부모 사이의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를 바라보며 굵직한 상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 생의 최악의 5초를 회상하며 서글피 눈물 흘리던 파니스의 아버지가 대변하는 이민족의 서러움만큼이나 디아스포라에 대한 한 운명을 잘 표현해주는 듯 했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기준으로 아시아와 유럽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본 작품의 중심에는 항상 맛에 대한 기억과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동하며 그때마다 생활방식과 행동양식을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서 바꿀 수 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있다’라는 가정일 뿐 무조건 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아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세기를 거쳐 오면서 우리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규정짓는 현재의 시스템과 문화를 구축시켜 왔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이야기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에피타이저 - 메인디시 - 디저트 의 소제목으로서 <Touch of spice> 속 파니스의 기억들은 명확하게 나누어진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을 이전과 이어주며 사회적 차별의 시선 속에서도 계속적으로 이슬탄불의 그것과 맥을 함께하게 해주는 것은 계피를 비롯한 여러 향신료 및 맛에 관한 소비적 태도이다.


이익추구를 우선시하는 경제적 논리 하에서 지역, 민족 간의 경계의 벽을 가장 쉽게 드나들 수 있기에 상업적 측면은 점점 보편화되며 세계화에 있어 담장 무너뜨리기의 대표적인 측면으로 부각되고 있다. 자신을 구성하는 소비패턴을 통해 정체성과 차별점을 둔다는 것. 그리고 이익집단의 정책에 따라 전 세계의 인류들이 비슷한 방식과 유사한 과정으로 이를 경험한다는 것. 얼핏 보면 한 가지 맥락으로서 모든 것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개념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소비의 단면적 특징의 일부일 뿐.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엔 또 다른 경우의 수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디아스포라 같이 자신의 뿌리 밖으로 소수인원들이 튕겨져 나갔을 경우 이와 같은 소비의 특성은 앞서 언급한 보편화의 대척점에서 자신들만의 특수한 문화를 유지해나가는 방어적 장치로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극 전반에 이와 같은 특징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지만 가장 확실한 목소리를 내는 부분은 파니스의 삼촌과 그리스 약혼녀의 이야기를 다룬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 피상적으로 대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듯이 그들은 조리법을 논하면서도 각자의 차이를 분명히 들어내고 있다. “우린 음식에 뭘 숨기지 않아 ! ” “시집 오려면 숨기는 법도 배우세요.” 그렇게 파니스 가족의 소비방식은 그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주고 있었다.



디아스포라가 가질 수 있는 두 가지 상반된 모습. 비자발적이고 억압된 숙명적 상황. 자발적으로 자신의 경계위치를 이용해 다양성으로서 인생을 살아내는 상황. 그리고 시대의 상황에 따라 모두를 묶기도, 각자를 묶기도 하는 소비패턴의 상반된 모습들. 본 영화 속에서는 위에 언급된 바들이 시간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적절한 위치에서 디아스포라와 사회의 관계를 다양한 측면에 의거해 설명해주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입장에서는 역시나 파니스의 중년기에 더 많은 시선이 가게 되었다. 이스탄불의 거리를 걷는 그의 주변부의 상황과 모습들을 보며 현재적 의미로서의 디아스포라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몇몇 가지 눈에 띄는 사항들이 필름 너머의 현실 속 상상력을 자극해 주었다. 고향땅으로 돌아와 그들과 그리스어도 터키어도 아닌 영어로서 소통하는 파니스의 모습. 터키의 대학에서 별다른 제한 없이 교수직을 맡게 되는 모습. 수업시간을 통해 들은 선택적 권리로서의 자유를 지닌 디아스포라의 모습들. 그들의 특성들이 분명하게 들어난 장면들이었지만 나는 영화 속에는 직접적으로 담겨있지 않은 쓸쓸함이 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제 아무리 자신의 능력과 기회를 통해 억압적 상황을 탈피해 주체적으로 선택권을 지니게 된 이들이라 할지라도 역사적 폭력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뿌리에서 뽑혀진 이들의 의식과 정서 속에 남겨진 불안함과 공허함이 파니스의 표정 속에서 얼핏얼핏 느껴졌기 때문이다.


디아스포라는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점점 다양한 형태로서 확장될 것이다. 일년 후 내가 살고 있을 장소가 꼭 대한민국일 것 이라 장담을 할 수 없는 세상이다. 시간이 흘러 내가 낳은 자식들이 결혼상대로 외국인을 데리고 올 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게 거창하게 표현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다양화된 사회 속에서 언제든 어디든 이동할 수 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고 새로운 직장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지금 그러한 곳에 살고 있다. 장과 단을 따지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올바른 파악과 이해라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있는 현재가 완성되기 까지 지나온 발자취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의 실수담과 무용담들. 짧은 강의와 한편의 영화였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스스로 고민하고 정리해본 디아스포라의 존재는 정체된 사고의 유연성을 길러 앞으로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 다름에 대한 편견적 우를 범하지 않도록 많은 도움을 주게 될 것 같다. 파니스는 샤메이와 이스탄불의 거리를 거닐며 짧게 중얼거린다. ‘다들 달콤한 걸 들고 다녀...’ 많은 것들은 변하고 우리의 생각 또한 많은 그것들과 함께 변화해야 할 것이다.

듣고있는 것들 page.01

2011. 7. 16. 03:58 Film Diary/It track

잊지 않기위한 집착이자 나눔의 열망에 대한 강박으로서 시작해본다. 내러티브의 부재때문일까, 감상과 추억만 쌓여갈 뿐 경험적 학습에 의한 해부도가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 비해 2차 시장의 규모가 적어서일까. 독립적이며 지나치게 순간적인 러닝타임 역시 한 몫을 하는것일까. 음악에 대한 교육을 받지못한 너무나도 평범한 리스너로서 도저히 입을 떼기가 힘들었다. 언젠간 근사한 소개와 함께 음악적 교류를 이루고 싶었다. 허나 곰곰히 생각해봤자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뭘 좀 알아야 제대로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들도 많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냥 위안과 추억의 매개로서 멀뚱히 세워놓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음악이란게 원래 그런거려나... 생각해 보면서.  It track 의 공간을 주크박스 삼아 무작위로 디스크를 걸고자 한다. 가장 최근의 취향과 맥을 함께하려 한다. 곧 이곳에서 돌아가는 음악들은 동시에 내 일상을 함께하는 녀석들이기도 하다. 기분과 생각들을 은밀히 암시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 장르구분 조차 명확히 해내지 못하는 문외한이기에 친절한 설명보다는 인연과 인상에 대한 몇마디만 날길 수 있을것 같다. 허전한 느낌이 들까봐 이미지를 첨부한다. 이미지와 음악 사이에는 단 한가지 공통점만 존재한다. 바로, 이들이 서로 닮아 보였다는 지극히도 사적인 운명.  



최근 문화적 식성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캐나다 밴드, Brasstronaut 의 Mt. chimarea 앨범 중 타이틀격인 <Hearts trompet>을 첫곡으로 올려본다. 기타 피아노 드럼의 조합위에 트럼펫 클라리넷 그리고 콘트라베이스를 얹어놓은 이들의 음악은 최근의 내 일상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매번 감동과 위안을 선사한다. 마치 하늘 위의 구름조각들을 지상으로 끌어당겨 몽실몽실한 맑은 안개로서 흩뿌려놓은 공간감이든다. 에도 반 브리멘의 몽환적인 음색은 감상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토록 눈부신 안개속으로 뒷걸음질 치며 맑은 대지를 향해 나를 인도하는 따스한 안내자처럼 느껴진다. 올해 들은 앨범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지금 흐르고있는 <Hearts trompet>을 포함해 <insects> 와 <six toes> 까지 몇년이고 반복적으로 감상할만한 보물들이다. 언젠간 라이브를 꼭 들어보고 싶다.  
    






Fucked up의 음악은 사실 내가 듣기에는 다소 버거운 부분이 존재한다. 절규의 어느 지점에 걸쳐있는 보컬의 분노에 찬 목소리는 나를 지치게 한다. 그럼에도 이 음악을 자주 듣게되는 이유는 뮤직비디오의 독특한 인상 때문일것이다. 첫만남이 선사하는 독특한 기운이 있다. 남녀로 갈라앉아 서로를 마주보며 외치고 노래하는 그 분위기는 계속해서 내 머리속을 맴돌게 됐다. 독특하게도 뮤직비디오와 실제 음원의 남성파트는 다르다. 뮤직비디오 상에서는 남성보컬의 목소리 대신 작품 속 소년들의 음성으로 대체하였다. 연출상의 특이점인 이 부분이 참 좋다. 소년 소녀의 때창은 묘한 힘이 있다. 뮤비와 원곡을 함께 올려본다. David come to life 앨범에 속한 queen of hearts 는 음색보단 이미지로서 기억될 독특한 추억이 될것 같다.


     
 




시간이 흘러도 절대 외면할 수 없는 몇가지 것들.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조각의 일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8번째 앨범 <아름답다, 아름다워>는 정말이지 질리기는 커녕 날이 갈 수록 점점 더 좋아지기만하는 신기한 녀석이다. 음악에 있어 모든 관심이 가창에 쏠려있는 요즘, 조금 더 시야를 넓혀 한국대중음악의 보물같은 현역들에게도 박수와 시선을 보냈으면 한다. 이들의활발한 창작을 간절히 꿈꾸며 오늘도 8집의 아름다운 음악들을 감상해 본다. 앨범 사이사이 포진해 있는 4개의 연주곡에 눈길이 간다. 정말이지 봄 여름 가을 겨울 만이 꾸밀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어느 하나 대표격으로 내세우기 힘들기에 본 앨범과 인연을 맺게해준 사랑스런 음악을 올려본다. 부인인 이승신씨와 함께 작사한 사랑의 노래, <사랑은...>. 언제 기회가 된다면 하모니스트 전제덕씨와 라라라에서 함께한 버전을 들어보시도록.   

        




선천적으로 댄스음악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못견뎌하는 타입이다. 밴드 음악이 아닌 이상 속도가 올라갈 수록 점점 매서워지는 기계음의 떨림은 정서를 불안하게 만든다. 내가 생각하는 적당한 흔들림은 이 정도인듯 하다. 보다 강하고 빠른 음악들도 즐길순 있지만 이정도가 확실히 적정치다. Alex winston의 sister wife를 리믹스한 star slinger 버전은 정말이지 리믹스가 원곡보다 우아해 보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너무나도 드문 경우다. 원곡보다 훌륭하다. 어쩜 이렇게 이쁘게 포장한건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끼리는 서로를 닮아가며 영향과 취향을 공유하게 된다. 영화와 문학과 음악은 서로에게 이야기를 건내주기도 때때론 빌려오기도하며 기나긴 길을 걸어왔다. 이야기가 옮겨가는 과정에서 벌어지게된 비좁은 틈속에선 또다른 형태의 재미가 발견되곤 한다. 보드카레인 4집 faint의 가장 쾌활한 트랙 <심야식당>에선 원작과는 조금은 다른 온도의 위안이 발견되었다. 꼭 인생사의 굴곡진 사연이 없더라도 찾을 수 있는 편안한 느낌의 심야식당 이랄까나. 일상의 피곤함과 희미한 사랑을 위로하기 위해 자정을 넘긴 새카만 새벽, 얼음보다 차가운 한잔의 맥주와 기름진 안주를 찾아 떠난 여행. 요즘 이 음악을 다시 듣게된건 만화와 드라마를 동시에 감상하며 <심야식당>의 매력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심야식당의 분위기를 전혀 모르던 시절의 감상과는 분명히 다른 감흥이 존재한다. 심야식당이라는 소소한 위로는 대한민국 곳곳의 외로운 이들의 마음속으로 은은히 퍼져간듯 하다.     






Broken social scene (이하 Bss) 의 Forgiveness rock record 앨범에서 가장 분위기있는 트랙, Sweetest kill은 얌전한 서정성으로 내 귀를 단박에 사로잡았다. 본 앨범에서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돌아가는 건 이 트랙뿐이니 말이다. 내 몸을 감싸주는 듯한 분위기를 참 좋아한다. 안정적으로 반복되는 박자와 울리듯 퍼져나가는 음성, 들을때마다 몸을 휘감아준다. 비오는 어느 늦은밤,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가장 큰 볼륨으로 틀어놓으면 정말이지 끝내준다. 참고로 음악에 비해 뮤직비디오의 표현성은 꽤나 강렬하다. 어느정도 각오를 하고 감상해야 할것이다.     






우리가 놓치고 사는 소중한 몇몇가지 중 하나, 그건 바로 연주음악의 아름다움이 아닐까싶다. 이 땅위에 살면서 김광민의 연주곡들을 들어보지 못했다는건 굉장한 불행일테니 말이다. 요즘 가장 열심히 감상중인 국내 아티스트 중 한분이다. 그중에서도 이 곡 Summer rain 은 짜증을 넘어 서서히 하늘을 향해 원망의 눈초리를 흘리고 있는 요즘, 불가항력의 순리를 청아한 시선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빠져선 안될 안정제 중 하나이다. 어느 늦은 밤, 쏟아지는 빗줄기를 배경삼아 BSS의 음악을 즐겼다면 어느 개인 오후 촉촉히 떨어지는 빗방울을 팔목에 묻히며 이 음악과 함께 산책해보는건 어떨지. 한곡 한곡 참으로 아름다운 음악들이다. 김광민이라는 이름은 평생 잊지 못할것 같다.      







요즘의 내게 편안함을 주는 음악은 몽롱한 공중부유의 감각을 선사하는 것들이다. 주로 기계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절대로 자극적이지 않으며 얼핏보면 사람과 구분이 되지않을 정도로 따스한 기계의 감촉들. 눈을 감고 머릿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완전히 지워낸 후 음악에 몸을 맡겨 현재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 음악들을 그렇게 듣고 있자면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늘과 우주의 어느 중간쯤,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어도 분명한건 나의 두 발이 현재 허공을 가르고있다는 느낌만은 확실히 받을 수 있는 그 두둥거림의 편안한 지점. 비슷한 감각을 선사하는 두곡을 함께 소개한다. 이미지를 중심으로 상위에 있는건 이상은의 14집 We made of stardust의 2번째 트랙 <bliss>이다. 그리고 아래 위치한 음악은 Starkey의 <Stars>. 하늘을 중심으로 위 아래, 혹은 양옆으로 붙어있는 두 곡의 음악. 모호하고 몽롱하게 날 쉬게끔 한다.





Cold play를 향한 Frank ocean의 근사한 대답. <Nostalgia ultra> 앨범에 속한 cold play의 커버곡 <Strawberry swing>은 멜로디와 가사의 근사한 분위기를 따듯한 음색을 이용해 현명하게 탈바꿈해냈다. 화려하진 않지만 분명히 웅장한 구석이 있는 음악이다. Hotel california를 커버한 <american wedding>보단 이 쪽의 변화가 훨씬 흥미롭고 신비롭다.      






경황없이 달려가지만 뒤숭숭보단 속시원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몇안되는 치료제 중 한 알. 몸을 흔들 수 있을 정도의 흥겨움이지만 절대로 고막을 불편하게 간지르진 않는다. 반복적으로 굴러가는 이 느낌, 신명나게 바람을 맞을때는 항상 함께하는 음악 중 하나. Is tropical 의 <what>. 제목도 멋지구나. 같은 리듬으로 흔들 흔들. 뭐뭐 어쩌라고. 







요 몇달간 나의 귀를 지배해온 Cults를 어찌 빼놓을 수 있을까. 아무리 많이 이야기했다해도 이런 자리에 모시지 않으면 실례일것 같아 뒤늦게 소개한다. 마르고 닳게 들어온지라 요 몇주는 약간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앨범 전체는 아니여도 최소한 몇몇 곡들은 습관적으로 감상해왔었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트랙간의 애정척도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최후의 선택, Cults 의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가장 명확히 대표하는 트랙. <You know what i mean>. 귀여운 투정이다.     






Robin hannibal 의 음악을 찾아보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 보컬이다. 그 남자의 세련된 감각과 그 여자의 사랑스러운 목소리, 근래 들어본 음악중 가장 감각적이고 편안한 흐름이다. Szjerdene의 <Lead the way>. 갑작스럽게 들어왔지만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머리속을 끈임없이 맴돌게 될것같다. 보컬의 목소리를 잠시 지워보고 순전히 비트와 멜로디에 귀를 기울여보자, 정말 깔끔하고 감각적으로 흘러간다. 이런게 현대적인 느낌이다. 최소한 내 기준에선.      






완결성을 위해 수미상관의 아름다움을 빌려본다. 마지막은 다시 Brasstronaut 로 돌아간다. <Hearts trompet> 의 아름다움에는 미칠 수 없지만 이 곡 <Six toes>의 신비로움 속에는 그 어떤 아름다움과도 바꿀 수 없는 마력이 존재한다. 감상을 반복할 수록 더욱 진해져만 간다. 감정의 진폭이 일렁일 때마다 베스트 트랙 역시 바뀌기 마련이지만, 이 앨범에서는 저 두 곡의 범주를 넘어서진 않는다. 그만큼 매력적인 음악들이다. 대척의 다양함과 기묘한 어울림이 있는 사랑스런 앨범이다. 정말이지. 몽롱하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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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웨이 (The way) - 인생을 걷는 시간들

2011. 7. 9. 14:20 Film Diary/Review




울수 있다는건 참 감사한 일이다. 제서야 슬그머니 어른이 되어감을 공감하게되는 요즘, 불시착의 공허함과 숙명적 불안 사이에서 가끔이나마 눈물흘릴 수 있음에 감사해한다. 누군가 나를 바라볼때 비생산적이며 합리적이지 못하다 여길 수 있는 너무나 잦은 습관들. 영화와 술. 언어와 공상만으론 풀리지않을 현실의 고립타분한 매듭에, 안으로든 밖으로든 어느 방향이건 울음을 끌어내 다소간이나마 찰나의 일탈과 황홀한 느슨함을 경험토록 해주는 이들과의 만남이 나이를 먹어갈 수록 더욱 잦아지고 점점 진솔해져 가는것 같다. 운다. 운다는 것. 영화를 사랑하는 첫번째 이유를 요즘에서야 찾게된것 같다. 특히 어젯밤 나와 만나게된 이 작품은 내 마음속에 마르지 않을 추억과 인생살이의 근원적 원동력이란 이름으로 비처럼 흘러내려 평생을 고여있길 바라기에 이곳에 속삭이고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도 싶었다.

사실 이 작품을 감상하며 간간한 맛의 눈물을 많이 흘린건 아니였다. 허나 눈에 보이는 것만으론 우리네 광활한 감정폭을 온전히 묘사해낼 순 없다고 믿는 이중의 하나로서 어젯밤의 나는, 마음속으로 또한 생각과 다짐의 어느 계곡속으로 참으로 많은 눈물을 흘려 보냈다고 믿고싶으며 그 점에 대해 굉장한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안으로 운다는건 지나치게 개인적인 표현일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 나는 감상과 경험에 있어 감동과 자극의 반응을 눈물로서 표하는 편이다. 그러하기에 단순히 물방울의 흐름정도로 간단히 설명하기는 아쉬운 구석이 있었다. 극장을 나서고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멍하니 엔딩 크레딧을 바라볼때 비록 눈시울은 촉촉할 뿐이지만 지나간 인생살이와 머나먼 가능성을 향해 장마빗마냥 사정없이 흘러내리는 후회와 시기란 이름의 눈물들은 도구적 신파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생각과 행동들을 정화시켜 준다. 그 시립고 애틋한 몽롱함을 느낄때면 나는 안으로 울었노라... 라며 숨막히는 일상의 강박대기를 참아낼 활력과 위안을 얻는다.  




티나지 않을 흐느낌을 한참 토해내고 나면 해당 작품들의 중심에는 후회와 시기의 동경심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The way> 는 이 두가지 감정선을 가지런히 엮어 나의 눈과 귀 속으로 화사하게 미끄러져 들어왔다. 사실 자신의 경험을 명확히 전달할만한 약간의 감상과 최소한의 정보전달만으로 영화에 대한 추천사로서 충분함을 절감하는 나 이지만 오늘 만큼은 이쁘고 온전한 형태의 기록으로서 이야기를 끝마치고 싶어졌다. 인간이 맞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중 하나인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서글픈 부모의 시선으로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최악의 비극을 통탄의 신파가 아닌 삶의 과정, 화합의 도구로서 넘겨내는 <The way>의 사정에 대해 조금은 더 자세히 이야기 해보겠다.

넉넉한 안과의사이지만 한편으론 한없이 공허한 아버지이기도 한 탐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반복적인 업무와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던 어느날 프랑스에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유감스럽게도 당신의 아들인 대니얼이 어젯밤 사망했다는 소식. 소중한 이들을 몇번이고 떠나보낸 그이지만 핸드폰 하나 지니지 않은채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은 예상치 못한 절망으로서 다가오게 된다. 아들의 시신을 데려오기 위해 곧장 프랑스로 향하게된 탐은 싸늘한 아들에게 다가가는 시간,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후 유품을 매만지는 시간, 그 잔인한 진공의 시간속에서 자신의 뜻과는 반대로 자유와 깨달음을 위해 그간 쌓아온 모든것을 뒤로한 채 여행길에 올랐던 대니얼의 뒷모습에대해 생각하게 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아들과 겪게된 사소한 마찰, 그리고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아들의 속마음. 죄스럽고 의아한 마음들은 그의 어깨에 아들의 가방을 둥여매게 만든다. 현지에서 대니얼을 화장시킨 탐은 가방속에 대니얼의 흔적을 간직한채 자신의 아들이 끝까지 밟아보려 했던 산티아고의 기나긴 순례길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중간 중간 대니얼의 흔적들을 순례길 이곳 저곳에 흩뿌리며 부자는 800km 의 대여정을 함께한다.  

   


생각해보면 영화를 아무리 많이보아도 눈이 매서워지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The way>를 내 생의 영화로 당당히 들어올리는 이 과정에서도 완성도의 견고함에 대해선 보증을 설 수 없을것 같다. 어찌보면 상투적이고 보수적인 작품이란 생각마저 할 수도 있겠다. 이순을 훌쩍넘긴 노년의 자기반성과 화해의 여정.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풍광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이야기와 인물들. 마치 산티아고의 순례길 곳곳에 대형 스피커들을 박아놓은듯이 끈질기게 흘러나오는 일생살이의 배경음들까지, 로드무비의 과욕과 가족을 바라보는 감독의 평이한 시선은 <The way>를 평작으로 끌어내렸다. 매체지향층의 공통적인 사회관에 따른 자연스런 변화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더 많은 영화인들이 가족을 그림에 있어서 대안을 이야기하며 전복적인 사고를 꾀하고있다. 물론 장르적 관습으로서의 뻣뻣한 가족관 묘사에는 반기를 드는 편이다. 모두가 한결같이 담아내고있는 비슷한 틀속의 나태한 가족관은 되려 클리쉐의 이름을 넘어 환상동화를 읽는 느낌이 들어 불편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The way> 가 부자간의 이해와 화합을 다루는 가족영화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내가 사랑하는 <The way> 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대니얼이란 인생의 회전문을 만난 탐의 다리저린 성장통이었다.

세상의 모든 로드무비는 곧 성장영화이기도 하다는 이야기.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펼쳐진다. 일탈을 통한 내면으로의 여행을 보고있자면 클리쉐의 적극적인 활용이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다. 일탈과 여행이란 단어를 바라본다. 인간은 다양한 목적을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듣고 읽고있지만 저 단어들에 바라는 기대치는 독특한 목적성이 존재하리라 믿고 있다. 사랑과 함께 우리가 실질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도 용감한 순간들. 항상 갈구하게되는 저 행위들의 순간들은 그 자체로서 환상이자 그것은 곧 한차원을 뛰어넘어 보편의 영역으로 들어가버린 구역이라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인류가 일상에선 겪기힘든 예외의 순간들. 그곳에는 모두의 마음을 뜨겁게 지피는 비슷한 굴곡과 비슷의 향기의 길들이 존재한다. <The way> 는 일탈과 성장의 평범한 환상들을 여행자들의 상상로를 따라 펼쳐낸다. 산티아고의 기나긴 순례길.       






전체적인 분위기와 태도도 마음에 들지만 무엇인가를 사랑하기 위해선 결정적으로 마음 깊숙한 곳에 남몰래 숨겨놓은 열망과 컴플렉스를 부추기고 위로해줄 만한 순간순간의 요소들이 필요하다. 극 초반 탐은 아들을 공항까지 바래다주며 이런 대화를 나눈다. '내 인생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건 내가 택한 인생이다.' 여기에 이어지는 대니얼의 대답은 이 영화의 주제인 동시에 영화전반의 여정을 설득시켜주는 중요한 이야기다. '인생은 택하는게 아니에요, 아버지. 살아내는 거지' You don't choose a life, you live one. 일년전쯤 <시> 의 미자와 그녀를 그려낸 이창동 감독을 바라보며 나와 영화 사이가 친구이자 사제지간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었다. 그것과 맞닿은 맥락에서 나는 탐과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감독에게 삶의 태도에 대한 긍정적인 가르침을 얻었다. 명확히 밝힐순 없지만 앞으로의 30여년을 살아낼 근원이자 그 이후의 삶과 내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에 관한 소중한 지표가 될것이다. 역시 운명에는 상황의 연이 필요한것 같다. 짧은 호흡이었지만 30여일간을 테두리 밖으로 나서며 새로운 땅을 걷고 새로운 곳의 공기를 마시는 일의 가치를 체감한 요즘, 어느 고집스런 노인의 하나하나의 발자욱들이 선명히 가슴속에 자국을 내는듯 하다. 

또하나의 사랑스런 습관은 탐이 기나긴 여정속에서 만나게된 세 여행자들의 존재와 그들끼리 나누는 마법같은 순간의 눈빛이다. 각기다른 국적과 각기다른 목적으로 산티아고에 오른 네명의 동반길은 그들 생의 딱 한번만 존재하는 황홀한 조합이자 마법같이 멈춰진 시간으로서 평생 그들의 기억속에서 머물것이다. 어찌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로망일 수 있겠지만 요즘의 상황에서는 이들의 옅지만 운명적인 우정에 짠한 동경이 남는다.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20대 청년으로선 상상조차 해보지 못할 낭만적인 그림이다. 요즘들어 우리네 만성적 불안에 공포와 혐오를 느끼고 있다. 점점 나이가 들 수록 한정적인 범위로 집중되어가는 인간관계에서 미묘한 고독을 느끼게 된다. 얼마전 기이한 경험을 했다. 몇년을 알고 지내온 이들과 함께한 자리, 너무나 당연하게 한가지 이야기에 목을 메고있는 기괴한 커뮤니케이션. 취직과 합격역시 분명히 생의 중요한 과업이지만, 서로의 불안감을 안정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무의미한 위로를 이끌어내는 못생긴 화법에 주변 모든것들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었다. 우리가 살아내는 이 사회의 환경속에선 자연스럽게 끌어내기 힘든 저들의 일탈적인 생의 대화와 화합은 역시나 운명적인 궤를 함께하며 내 가슴에 불을 지폈다.

나는 <The way> 가 참 좋다. 이게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종합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표현일것 같다. 지나치게 작품성에 대해 딱딱한 시선을 지닌 이가 아니라면 한번쯤 좋은 경험으로서 동반해볼만한 여정이 아닐까 싶다. 시기적으로도 참 적절할때 만났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될것 같다. 영화를 관심있게 지켜본지 10년 정도가 흐른 지금,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과 그 이유에 대해 진심어린 공감과 이해가 가능한 때가 온것같아 더욱 기분이 좋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배우의 부족한 자질과 역량을 지적할 순 있어도 그들의 연기가 훌륭할 경우에는 별다른 말이 필요없는것 같다. 평범한 관객의 형언이 무의미할 정도로 그들은 진지했으며 또한 열정적으로 불탔으니. 참고적으로 영화관람의 독특한 재미가 될것같아 한가지만 더 이야기하자면 영화의 주연을 맡은 마틴쉰의 아들인 에밀리오 에스테베즈가 본 작품의 연출과 아들역인 대니얼을 함께 맡았다. 이런 지극히도 사적인 관계를 알고보면 그들의 연기사이에 흐르는 독특한 대기역시 추가적으로 발견할 수 있을것 같다. 
       



시종일관 걷고 걷는 작품이기에 사운드트랙은 빼곡히 작품의 배경을 체우고있다. 이곳 we7에서 <The way> 의 사운드트랙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으니 작품을 본 후 음악의 잔향을 즐기고 싶은 이들이 생긴다면 여유로운 주말 아침 이 음악들을 들으며 생각과 다짐들을 정리해 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춤추는 그대들의 세가지 모습

2011. 7. 1. 14:34 Film Diary/Just Three

삼합의 안정감을 선호한다. 자신들의 몸을 포개어 서로의 근거와 예증이 되어주는 어떤 세가지 것들의 모임. 한가지 컨텐츠를 단단히 구축해낼 자신감도 없기에 이와같은 기획에 내 부족함 역시 기대보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경계와 제한이 존재치 않는 자유로운 공간이 되었으면한다. 비록 사소한 단서가 되더라도 차곡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영화적 감흥이란 이름으로 머릿속에 오래토록 축적되어가는 '순간'과 '사건'의 이야기들이 미련의 여지로서 굳어지기전에 스케치 정도를 기록하고자 한다. 블로그의 존재가치에 대한 의문을 갖고 슬며시 권태의 길로 접어드려는 찰나 본 카테고리의 글들이 새로운 활력과 동력으로서 유일한 취미생활이 수면아래로 가라앉지않게 날 잡아줬으면 한다.     


세점을 잇는 첫번째 이야기는 춤추는 그대들의 모습이다. 사실 영상을 편집해놓은건 4월 경이었다. 당시의 주 목적은 오마주의 어느 단면에 대한 흥미거리였다. 장 뤽 고다르의 64년이 할 하틀리의 92년에게 그리고 94년의 타란티노에게, 최종적으로는 2009년의 정성일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영상을 한두번 돌려볼 수록 최초에 선물받은 뮤지컬씬의 달콤한 감흥이 확연히 줄어듬을 느끼게 되었다. 왜 일까? 매일매일은 과장이지만 이따금씩 3명의 젊은이들이 어느 한적한 카페에서 즐기는 순간의 군무들을 떠올리며 고민해봤다. 

두달사이 몇권의 책을 훑으며 몇번이고 마주치게된 이름이 있었다. 진켈리, 그리고 그 중에서도 <파리의 미국인>. 뮤지컬 장르의 분명한 역사이자 보물같은 순간인 본 작품의 모습에 대한 기억을 더듬다보니 극단의 위치에서 색다른 뮤지컬씬을 연출해낸 세 작품들의 단서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이야기를 빌려온다. 
「 나는 항상 영화속의 뮤지컬 신들을 좋아했다. 특히 '뮤지컬 장르가 아닌 영화' 속의 뮤지컬 신을 더욱 좋아했으며, 고다르 영화 속의 뮤지컬 신을 가장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의 영화에선 갑자기 뮤지컬 장면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 신은 매우 매혹적이다.그리고 뮤지컬 장르에 속하는 영화가 아니기때문에, 뮤지컬 신을 삽입하려면 영화의 흐름을 잠시 멈추어야 한다. 그 점이 영화를 더욱 달콤하게 만든다.     

어느정도 생각을 정리한 후에 읽게된 '
돌발적 뮤지컬신'에 관한 타란티노의 이야기는 독자적 편집에 의해 훼손되어버린 이들의 매력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 청춘과 불안의 어느 접점에서 튀어오르는 그대들의 몸짓은 <시카고>의 화려함이나 <렌트>의 열정마냥 작은 틀안에 가두어 각자에게 이름을 붙여줄 수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감정과 이야기를 쫓는 방식에 있어 논리적 서사보단 춤이라는, 인간의 육체로 표현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움직임으로서 직접적인 교감을 시도하는 뮤지컬 장르를 갑작스레 끼워넣는 방식은 가장 충격적이며 언제까지나 젊음의 이름으로서 기억될만한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걸까, 무의식중에도 이같은 매혹을 어느정도 느끼게된건지 통상의 뮤지컬 신과는 분명히 다른 편집점을 새겨넣긴 했었다. 율동의 시작점이 아니라 최소한의 단서를 선행한 후 출발하는 이들의 춤. <국외자들>에선 군무에 앞서 이들의 성격과 관계에 대한 단서를 주고 싶었던걸까. <심플맨>에서는 그 외침을 보여주고 싶었던걸까, <카페 느와르>에선 컬러의 무대로 진입한 순간 영수의 어중간한 미소를 보여주고 싶었던걸까. 어떤 동기에서건 갑작스런 침입의 최소한의 흔적은 남긴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오마주의 흥미로 시작된 관심이 사소하나 나름 의미있는 발견으로 마무리된 본 포스팅의 이야기들. 세명의 남녀가 추는 세개의 경, 본 기획의 첫번째 이야기로 어울릴듯 하다.          

















2001년 정성일은 김홍준과의 대담자리에서 <국외자들>의 카페 뮤지컬신을 최상의 뮤지컬로 손꼽은 바 있었다. 고다르의 최고작은 아니지만 최상의 뮤지컬은 분명하다던 그 이야기. 새삼 떠오른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에서 잭 래빗 슬림 댄스 컨테스트 역시 이들과 분명한 접점이 있는 모습이긴하나, 영화광의 지독한 욕심은 한 신속에 고작 한편의 작품에게 구애할 순 없었는지 너무나 많은 인용과 오마주가 있었기에 별도의 케이스로 떼어놨다.





고전영화의 발견 03 / 04 / 05 月

2011. 5. 28. 18:47 Film Diary/Classic movies

생각해보면 전파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영화 프로그램은 꽤 많은 편이다.  그러하기에 수적인 측면에선 별다른 불만은 없다. 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부류의 방송들이 창의적 기획과 팬들과의 소통에 있어 여전히 답보상태에 빠져있단게 아쉬울 뿐이다. 방송의 컨텐츠와 실용성에 있어 얼마만큼의 노력이 투자되며 이 기획들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수용자들에게 올바른 길잡이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영화팬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가이드가 몇이나 될지 생각해보면, 우열을 가리기전에 우리는 다섯손가락을 채 굽히지 못할 것이다. TV속 영화소개 프로그램들은 날이 갈 수록 영화팬들을 밀어낸다. 오히려 그들의 타겟은 영화에 취미 이하의 흥미를 보이는, 그렇다고 영화를 증오하지도 않는 대다수의 관객들인것 같다. 다행히 라디오란 매체는 그 속성만큼이나 속깊은 마음으로 영화팬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 일상의 어긋난 취향이 교합되는 공간으로서의 매력이 존재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위에 언급한 문제제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영화음악이란 주제를 걸고 감상적인 위안과 피상적인 정보를 주고받을 뿐이지, 깊이와 열정에 있어선 아쉬움이 남는게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지난 1월 6일 부터 이주연의 영화음악(MBC fm 4u 91.9)을 통해 방송되고 있는 김홍준 교수의 <고전영화의 발견>은 보석처럼 빛나는 기획이라 생각한다. 통칭 이영음으로 표현되는 이 새벽 영화음악 방송은 영화의 거죽만 둘러쓴 여타의 심심한 프로들에 비해 꽤 알찬 기획을 선보이며 기다림의 노고를 보상해주고 있다. <서편제>의 조감독 출신이자 <장미빛 인생>의 감독, 영화계 이곳 저곳에서 각종 위원장과 프로그래머를 역임한 이이자 현재 한예종의 교수인 김홍준. 앞에 언급한 수 많은 수식어보다 더욱 중요한건 바로,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영화광. 이거다. 김홍준 교수는 매주 목요일 새벽이면 자신의 지식과 애정을 가득담아 <고전영화의 발견>의 장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곳에서 매주 1편의 영화를 성의있게 소개하며, 감독의 최소한의 족적과 본 작품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30분 속에 녹여내려 한다. 고전이란 영화의 진화를 가능케 한 영화사의 전범이자 어쩌면 상업으로만 남을 수 있던 영화란 매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힘겹게 끌어들인 역사의 흔적이다. 이런 거대한 작품들을 30분의 순간에 온전히 담는단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는 듣는이로 하여금 감사한 마음이 일렁일만한 수준의 정성으로서 그 한계 메우려한다.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자리가 아니기에 김교수는 사전적 통상적 범위를 넘어 흥미의 끈을 놓치지 않을 수준에서 영화의 목록을 채워가고 있다. 초창기부터 심하면 90년대 까지의 영화를 고전으로 규정하고 이곳에서 소개하겠다는 약속은 고전영화의 소중함과 관람의 필요성을 설득시키기 위한 고민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소수를 위한 탐구보단 다수에게 고전의 가치를 알리자하는 본 프로그램의 취지와 노력은 적당한 선에서 알찬 정보를 안겨주고 있다. 다소 지나치게 유명한 작품 위주로 목록이 채워져가는 경향도 있지만, 지독한 영화광의 차고 넘치는 이야기를 듣고있자면 이미 영화를 본 이들이라도 마치 DVD 의 서플을 귀로 감상하고 있는듯한 묘한 2차적 즐거움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본 카테고리를 통해 매주 방송되고 있는 <고전영화의 발견>을 월 단위로 묶어 포스팅을 할 생각이다. 라디오란 매체의 접근성과 더욱 열악한 다시듣기의 불편함이 맘에 걸려 말로만 추천하기 보단 직접 눈앞에 가져다줄 생각이다. 적당한 경계에서 의미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고전영화의 발견>을 통해 발견혹은 회상을 경험해보길 바란다.   

2001년 씨네 21 <김홍준 - 정성일 대담> 을 통해 김홍준 교수는 현존 최고의 감독을 묻는 질문에 존 포드, 오스 야스지로, 루이스 브뉘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로베르 브레송 중 한 사람이라도 살아있다면  주저없이 꼽겠지만 거장들의 세기가 저문 마당에 그 답은 쉽게 나올 수 없을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가 생각하는 고전영화는 어떤 의미일지, 한번 들어보도록 하자.


* 지난 mbc 방송개편을 통해 이주연의 영화음악은 방송시간을 한시간 늦춰진 새벽 3시로 이동하였고 김홍준 교수의 고전영화의 발견 코너 역시 사라지게 됐다. 그래도 김홍준 교수의 새로운 코너를 만나볼 수 있으니 본 포스팅은 제목만 약간 바꾸어 지속할 생각이다. 고전영화의 발견을 통해 매주 위대한 유산을 한편씩 소개해주던 포맷에서 매주 한가지 굵직한 주제를 통해 영화사 이면의 재미난 트리비아를 소개해주는 <김교수의 은밀한 영화이야기>로 방향성을 약간 틀었다.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고전영화의 발견을 통해서도 익숙한 작품들의 숨은 속사정과 재미난 관점포인트를 찝어준 이였으니, 어찌보면 이번 개편의 방향성은 보다 발전적이고 흥미로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고전영화의 발견을 통해 소개된 작품은 총 18편이었다. 지난 1 / 2 월 포스팅을 통해 소개된 8편의 작품 이후의 10 작품들은 방송날자와 무관하게 본 포스트에 몰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5월 포스팅 부터는 <김교수의 은밀한 영화이야기>로 찾아뵙겠다.  



바보들의 행진 







사랑은 비를 타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엘리자베스 테일러







장국영







관계의 종말







하드 데이즈 나이트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오즈의 마법사








그랑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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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손택 - 잭 스미스의 <황홀한 피조물들>

2011. 5. 14. 17:54 Film Diary/Column

본문의 글은 수잔 손택의 저서 <해석에 반대한다 Against Interpretation (1964)>에 실린 에세이, 잭 스미스의 <황홀한 피조물들 Flaming Creatures (1963)> (국내 번역판의 명칭은 불타는 족속들이었지만 국내영화제 상영당시 사용된 황홀한 피조물들로 수정하였다.)에 관한 지지와 분석이다. 본문의 택스트와 하위에 첨가된 영상들은 어쩌면 누군가에겐 다소 선정적이고 불쾌한 경험이 될 수도 있음을 고지하는 바이다. * 배경음악은 상위 검은바를 이용 (미미시스터즈 - 우주여행) 


잭 스미스의 <황홀한 피조물들> 이 근접 촬영한 흐물흐물한 성기, 거대한 젖가슴, 자위행위, 그리고 구강성교 장면에 내가 유일하게 유감스러운 점은, 이런 장면들 때문에 이 걸출한 영화를 그냥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힘들게 됐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변호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입에 올린다거나 변호까지 한다고 해서, 내가 이 영화를 실제보다 덜 괴이하다거나 덜 충격적인 영화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려는건 아니다. 공식적으로 <황홀한 피조물들>은 여자 두명과 그보다 훨씬 많은 남자들이 중고품 할인점에서나 팔만한 현란한 색상의 여성복을 입은 채 시종일관 시시덕거리고 어울려 춤추면서, 온갖 방탕한 장면과 성적광분, 로맨스, 흡혈귀 짓을 보여주는 영화다. - 여기에 몇 곡의 라틴가요 (시보니, 아마폴라) 로큰롤, 긁히는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 연주, 투우음악, 몇명의 남자들이 여장을 한 채 등장했던 '하트모양 립스틱' 이라는 기이한 신제품 광고에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중국노래, 떨리는 고성으로 이뤄진 합창곡, 가슴 큰 어느 여자를 집단 강간하는 장면이 유쾌하게 집단 성교로 바뀌는 장면에서 나온 비명소리등이 반주로 곁들여 진다. 

간단히 말해서 <황홀한 피조물들>은 괴이하며, 또 그럴 작정으로 만든 영화다. 제목에서부터 바로 그런 의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공교롭게도 <황홀한 피조물들>은 포르노가 아니다. 성적흥분을 일으키려는 명백한 의도와 내용을 지닌 장르를 포르노라고 정의한다면, 이 영화의 나체 장면이나 (직접적인 성교가 두드러지게 생략된) 온갖 성적장면의 묘사는 너무나 비애감에 차있으며, 너무나 천진난만해 음란하다고 보기 힘들다. 스미스의 성교 이미지는 감상적이거나 음탕하다기 보다는 어린아이 같고 재기발랄하다. 


<황홀한 피조물들>에 대해서 경찰 당국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않다. 스미스의 영화가 법정에서 목숨을걸고 싸워야만 하리라는 것도, 슬프긴 하지만 불가피한 현실일 것이다. 실망스러운 점은 성숙한 지식인과 예술가의 공동체가 이 영화에 대해 무관심이거나 신경질적 반응, 혹은 노골적인 적의를 보였다는 점이다. 거의 유일한 지지자는 충직한 영화감독 동아리와 시인들, 그리고 젊은 '빌리지 사람들' 뿐이었다. <황홀한 피조물들> 은 아직 일종의 컬트, <영화문화>라는 잡지를 근간으로 하는 뉴 아메리카 시네마 그룹의 입상작 수준을 졸업하지 못했다. 

우리는 스미스의 영화를 비롯해 여타 수많은 새로운 작품들을 우리에게 소개하기 위해 거의 혼자 힘으로 꿋꿋이 영웅적으로 작업해온 조나스 메카스에게 감사해야하리라. 그렇지만, 메카스와 그의 동료들의 선언이 과장되고 때로는 실질적으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황홀한 피조물들>을 포함한 이 새로운 유파의 영화가 영화사상 전례없는 발전이 될 것이라는 메카스의 주장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그런 호전적인 태도는 <황홀한 피조물들>의 미덕을 이해하는데 불필요한 장애로 작용해 오히려 스미스에게 해가된다. <황홀한 피조물들>은 어느 특정한 전통, 즉 충격적인 시적 영화의 작지만 소중한 결실인 것이다. 이 전통을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브뉘엘의 <안달루시안의 개> 와 <황금시대>, 에이젠슈타인의 <파업> 일부, 토드 브라우닝의 <별종들> , 장루쉬의 <미친 지도자들> 프랑주의 <짐승의 피> 레니카의 <미로> 케니스 앵거의 작품들 <불꽃> <살아난 전갈> 노엘 뷔르쉬의 <사제수업> 등이 있다. 

미국의 초기 아방가르드 감독들 (마야 데렌, 제임스 브러튼, 캐니스 앵거)은 상당히 치밀한 기법을 연구한 단편영화로 돌아섰다. 아주 저예산으로 작업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이 만든 영화의 색체와 카메라 촬영술, 연기, 이미지와 음향 합성은 전문적 기량을 최대한으로 살린 것이었다. 미국 영화계에 등장한 두가지의 새로운 아방가르드 스타일 가운데 하나 (그레고리 마코폴로스나 스텐 브래키지 보다는 잭 스미스나 론 라이스 등이 여기에 속한다) 는 고의적으로 조잡한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 새로운 조류들 - 수작과 졸작, 태작 모두 - 은 부아가 치밀 정도로 영화기법의 모든 요소를 무시하고, 철저하게 계산된 투박함을 보여준다. 이는 매우 현대적인, 매우 미국적인 태도다.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미국만큼 구태의연한 유럽적 낭만주의가 긴 수명을 유지하는 곳도 없다. 깔끔하고 꼼꼼한 기법이 즉흥성과 진실성, 직접성을 방해한다는 믿음은 다른 어느 곳보다 미국에서 강력하게 살아있다. 아방가르드 예술의 일반적인 기법이 대부분 이 신념을 표명하고 있다. (기법에 반대하는 것조차 기법이 필요하다) 

음악의 경우, 이제는 우연성을 활용한 작곡뿐만 아니라 연주도 행해지고 있으며, 새로운 음의 재료를 찾고 기존의 악기들을 절단하는 식의 새로운 방법까지 등장했다. 회화와 조각의 경우에는 일회용품이나 기존의 잡동사니들을 재료로 이용하는 방법, 일부러 부서지기 쉬운 작품 (한번 쓰고 버리기) 을 만드는 방법, '해프닝' 같은 방법이 있다. 나름대로 <황홀한 피조물들>도 일관성과 기술적 완성도라는 예술작품을 둘러싼 속물적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캠프적인 미학을 응축하고 있는 이 전무후무한 이단적인 작품은 도착적이며 비순응적인 정의불가능한 성의 주체들의 사육제를 극화하며, 저속하면서도 또한 극한적으로 숭고한 그러나 표면만이 존재하는 실낙원의 인물들을 재연한다. 아마 모든 캠프적 영화들은, 요컨대 <핑크 플라멩고>에서 <헤드윅과 앵그리 인치>까지, <황홀한 피조물들>에 진 빚을 갚지 못할 것이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황홀한 피조물들>의 (내가 세어본 바에 의하면) 일곱 시퀀스는 서로 확연히 구분될 분만 아니라 이야기도, 줄거리도, 마땅한 순서도 없다. 일련의 대목에서는 정말로 과도한 노출을 의도한 것이 아닌가 의심도 하게 된다. 그 어떤 장면도 그보다 더 길거나 짧지 않은 바로 그 길이로 만들어야 했다는 이유를 납득시켜주지 못한다. 쇼트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맞춰지지 않았다. 머리 부분이 잘려 나온다거나 아무 연관 없는 인물들이 장면 끝머리에 불쑥 등장하는 식이다. 카메라는 대부분 손으로 들고 찍었고, 영상이 자주 떨린다. (이런 방법이 완전히 효과를 거둔, 그리고 의심의 여지없이 의도된 부분은 집단 성교를 찍은 장면이다)

그러나 <황홀한 피조물들>이 보여주는 아마추어적인 기법은, 최근의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영화들이 그런 것처럼 보는 이를 짜증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스미스가 시각적으로 감칠맛 나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의 영화는 매순간 볼거리로 가득하다. 게다가 그 영상에는 흔히 보기 어려운 즐거운 전율과 아름다움이 있다. 강력한 영상이 쓸모있는 영상 때문에 그 효과가 떨어지는 순간에 조차, 혹은 좀더 다듬어 졌더라면 더 좋았을 장면에서 조차 그렇다. 

오늘날에는 기교에 대한 무관심이 휑뎅그렁함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신중한 계획에 반감을 드러내는 현대예술은 흔히 미학적 금욕주의의 형태를 띄는 것이다. (추상표현 주의 회화들이 대부분 이런 금욕적 특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황홀한 피조물들>의 금욕주의는 이와는 다르다. 다시말해, 이 작품에는 시각적 소재가 흘러넘친다는 뜻이다. <황홀한 피조물들>에는 생각이나 상징도, 무언가에 대한 논평이나 비판도 없다. 스미스의 영화는 순전히 감각에 바치는 향응이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프랑스의 수많은 아방가르드 영화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문학적' 영화와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황홀한 피조물들>을 보는 즐거움은 우리가 보고 있는것을 이해한다거나 해석할 수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영상 그 자체의 직접성과 강력함, 양적인 풍성함에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진지한 현대예술과 달리, 이 작품은 좌절된 의식, 막다른 궁지에 몰린 자아를 다루지 않는다. 이렇듯 스미스의 조잡한 기교는 <황홀한 피조물들>에 구현된 감성 - 생각을 부인하는 감성, 부정 너머에 자리잡은 감성- 에 멋지게 이바지 한다. 

<황홀한 피조물들>은 현대에 보기드문 예술작품이다. 이 영화는 기쁨과 천진난만함을 다룬다. 분명히, 이 기쁨, 이 천진 난만함은 (보통 기준으로 볼때) 뒤틀리고 퇴폐적이며, 아무리 못해도 대단히 연극적이고 인위적인 주제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확히 이 때문에 이 영화가 아름다움과 현대성을 얻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황홀한 피조물들>은 오늘날의 한 장르, 즉 '팝아트'라는 경박한 이름으로 통하는 장르의 훌륭한 견본이 되는 작품이다. 스미스의 영화는 팝아트의 쾌활함과 꾸밈없는 천진함, 교훈주의에서 벗어난 활력 넘치는 자유도 있다. 팝아트 운동이 지닌 한가지 위대한 미덕은 뭔가 주제에 대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낡은 규범을 후려갈기는 방식에 있다. (말할것도 없이 세상에는 입장을 취해야만하는 일련의 사안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건 아니다. 그런 사안을 다룬 예술작품의 극단적인 사례가 <대리인>일 것이다. 내말은, 인생에는 입장을 취할 필요가 없는 요소들, 특히 성적 쾌락같은 요소들도 있다는 뜻이다)

팝아트라고 불리는 작품들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작품들은 예술에서 묘사된 것 -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인생에서 경험한 것- 에 반드시 찬성이나 반대의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낡은 사명을 내던지겠다는 의도를 실천한다. (바로 이것이 새로운 체제순응주의의 또다른 징후, 대중문화의 가공물에 환호하는 일종의 열병 현상이라며 팝아트를 도외시하는 자들의 생각이 어리석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팝아트는 이전 같으면 모순으로 여겨졌을 멋지고도 새로운 요소가 뒤섞인 행동양식을 받아들인다. 이렇듯 <황홀한 피조물들>은 성교를 재기 발랄하게 조종할 뿐만 아니라 성적 충동을 과장되게 그리고 있다. 시각적인 면만 보더라도 이 영화는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 즉석에서 만들어낸 것이 분명한 장면들, 가령 늘씬하고 여자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앙상하고 털투성이의 사람들이 뒹굴고 춤추고 성교하는 무질서한 장면들 중간 중간에 매우 치밀하게 계산된 시각효과 (레이스 달린 옷가지, 흩날리며 떨어지는 꽃잎, 활인화)가 삽입되는 식이다. 

스미스의 영화는 복장도착증의 시학을 주제로 다룬 작품이라고 도 볼 수 있다. <황홀한 피조물들>에 제 5회 독립영화상을 수여한 <영화문화>는 스미스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는 변태들에 대한 값싼 동정이나 호기심이 아니라, 복장 도착증 환자들의 영광과 화려함, 요정나라의 마술로 우리를 강타했다. 그는 우리 삶의 한구석에 불을 밝혀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멸시하는 구석이긴 하지만" 

 
<황홀한 피조물들>은 알고보면 동성애보다는 이성애를 다룬 영화다. 스미스의 통찰은 자신이 그린 천국과 지옥의 그림에서 몸부림치는 인물, 파렴치한 인물 등을 독창적으로 묘사해낸 보슈의 통찰과 비슷하다. 동성애적 사랑의 아름다움과 공포를 그린 앵거의 진지하고 감동적인 영화 <불꽃> 이나 주네의 <사랑의 찬가>와는 달리, 스미스의 등장에서 중요한 사실은 누가 여자고 누가 남자인지 쉽사리 알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성애의 다종다양한 쾌락 속에서 불타오르는 '피조물'들이다. 이 영화는 모호함과 다의성의 복잡한 거미줄로 엮어낸 작품이며, 그 으뜸 이미지는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이 분간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장면이다. 흔들리는 젖가슴과 흔들리는 성기를 바꾼다한들 상관이 없어지는 것이다. 

보슈는 고통과 쾌락을 동시에 보여주는 남녀양성 소유자와 나체를 배경 삼아, 자신만의 기이하고 불완전한 관념적 형상을 구축해냈다. 스미스에게는 엄밀한 의미의 배경 대신에 (인물이 실내에 있는지 야외에 있는지도 구분하기 힘들다) 의상과 몸짓, 음악 같이 철저하게 인공적인 경관이 있다. 그의 영화에서는 양성성의 신화가 진부한 음악, 광고, 의상, 춤 그리고 무엇보다도 촌스러운 영화들에서 끌어온 한 다발의 환상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스미스는 '캠프'에 관한 지식을 풍부히 콜라주해 <황홀한 피조물들>을 촘촘히 짜놓았다. 흰색옷을 입은 채 머리에 백합을 한송이 꼿고 고개를 수그린 여인 (여장남자)이 있고, 관에서 나온 말라빠진 여인이 있다. 이 여인은 나중에 흡혈귀임이, 그리고 끝에 가서는 남자임이 밝혀진다. 그리고 검은 레이스가 달린 만털라를 두른 채 부채를 들고 스페인 풍의 춤을 추는 커다란 검은 눈의 무희(이 사람도 복장도착증 환자다) 


<아라비아의 족장>이라는 그림에서 따온 두건 달린 외투를 입은 채 비스듬히 기대누운 남자들과 무신경하게 한쪽 젖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아리비아의 여부, 슈테른베르크가 1939년대 초반에 디트리히와 함게 찍었던 영화들의 밀도 높고 복잡한 구성을 연상시키는 꽃과 엉마에 기대 누운 두 여인의 장면등이 있다. 스미스는 라파엘 전파의 나름함, 아르누보, 1920 대의 이국적 스타일, 스페인과 아랍의 분위기, 대중문화를 즐기는 현대의 '캠프'기법에서 끌어온 표현 형식을 통해, 영화의 이미지와 구성을 만들어낸다. 

<황홀한 피조물들>은 세계를 심미적으로 바라보는 통찰력을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리고 그런 통찰력은 십중 팔구 양성성을 근저로 삼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예술은 아직껏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황홀한 피조물들>이 움직이는 영역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비평가들이 예술의 자리로 지정해 왔던 도덕관념의 영역이 아니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에게는 도덕의 영역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잣대로 보자면 <황홀한 피조물들>은 정말로 형편없는 영화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심미적 영역, 쾌락적 영역도 있다. 여기가 바로 스미스의 영화가 움직이며 그 생명을 누리는 곳이다.

 - the end 수잔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中 -

잭 스미스

캠프 영화의 고전이자 금지된 걸작으로 영화 애호가들의 소문 속에 회자되던 <황홀한 피조물들>의 감독, 잭 스미스는 그의 작품 하나 만으로도 미국 아방가르드 특히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감독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유럽의 감독들(예를 들어 페데리코 펠리니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장-뤽 고다르, 아그네스 바르다 등)은 벨기에와 뉴욕을 방문하였고 그의 팬이었던 앤디 워홀이 자신의 팩토리를 통해 영화 작업에 뛰어들었던 것 역시 유명한 일화이다. 분명 잭 스미스의 영화들은 부박하고 화려한 캠프적인 취미에 흠뻑 빠진 채 어떤 윤리적 명령의 강요도 영향을 미치는 순진무구한 관능과 열정 사이로 유영하는 현대 영화의 괴물들이다. 잭 스미스는 그 스스로 공공연한 게이였으며 자신의 영화에서 당시의 하위문화로부터 비롯된 게이 정체성, 특히 드랙 퀸과 이성복장착용자들, 성전환자들의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을 인용하였다. 그런 점에서 그가 자신의 영화를 통해 재현한 인물들에 대한 그 스스로의 정의였으며 그의 작품 제목에 빈번히 등장하기도 하는 '피조물(creatures)'은 매우 시사적이다. 느와르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디즘적인 범죄자나 팜므 파탈이 동성애 정체성의 은유로 전유되었거나 아니면 공포 영화에서 괴물의 이미지를 통해 배제된 자, 비천한 존재로서 자신을 재현했던 동성애자들과 유사하게 잭 스미스 역시 자신의 불법적인 섹슈얼리티를 기괴한 모습의 인물들을 통해 표상한다. 그러나 이런 영화들에서의 비극적이면서도 모호한 존재인 범죄자, 요부, 괴물들과 달리 잭 스미스는 매우 유쾌하고 순진한 표정으로 이들의 삶을 일종의 문화적 인공물로 가정한다. 즉 잭 스미스는 우리 모두의 삶을 장식과 수사, 색채와 양식화된 몸짓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간주한다. 잭 스미스는 영화 감독일 뿐 아니라 다른 아방가르드 영화 감독들의 배우로서, 사진작가, 연극 연출자, 디제이, 열정적인 의류 수집가, 비평가이기도 하였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현재 잔존하고 있는 그의 작품 중 복원이 완료된 <황홀한 피조물>을 비롯한 5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 2003년 쾌락의 셀룰로이드 궁전 프로그램 당시 감독 설명 -





영화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수 많은 책들을 넘겨본다. 그곳에는 걸작의 가치에 대한 찬사가 있을 수 있으며, 때때론 시대사적 해프닝들의 단편적 제시와 빛바랜 논란의 역동들이 담겨있기도 하다. 허나 드넓은 스펙트럼의 그물망에도 잡히지 않는 비사들도 존재한다. 특히 세계영화사를 한글로만 읽어내려 간다면 만나보기 힘든 이름들도 존재하고있다. <아라이아 로렌스>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던 해, 고다르는 <경멸>을 구로자와 아키라는 <천국과 지옥>을 펠리니는 <8 1/2>을 김기영은 <고려장>을 세상에 내놓은 해. 영화의 타이틀이 사서에 오르는 순간에는 항상 탄생년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흐름을 읽어 내려가며 영향과 가치를 분석할때 가장 명확하고 편의적인 방법은 시대사적인, 년도분류에 따른 구분일 것이다. 1963. 이들을 묶는 하나의 공통어, 네자리 숫자의 그림자속에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과거의 용암, 실험영화의 어느 지점인 동시 수 많은 논란을 낳은 문제작. 잭 스미스 감독의 <황홀한 피조물들>에 대한 에세이를 위에 소개해봤다. 세가지 연유에서 옮겨봤다. 첫째론 수잔 손택에 대한 탄복이지만, 이는 본 포스팅에 있어 발단이나 동기 정도의 단서이니 다음 기회에 더욱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남겨두도록 하고, 두번째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이토록 소중한 영감의 원천에 대해 지나치게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혹은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에 대한 역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어쩌면 반세기전의 특수한 영화운동의 흐름과 시효만료의 논란만이 <황홀한 피조물들>의 유일한 존재가치라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는 지나치게 틀에 얽매인 심심한 사조놀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2011년에 와 이 작품을 지지하고 언급하는 일이 비상식적이고 퇴폐적인 컨셉에대한 치기어리고 무조건적인 지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것이다. 물론 시초에 대한 예우도 아니다. 
일반의 시야에서 극단적 예술의 영역으로 치부되며 장외로 밀려나버린 본 형태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반세기를 건너서도 유효한 특수해석의 가치를 유지하게 됐다는대에서 <황홀한 피조물들>에 대한 수잔 손택의 지지와 미인지자들에 대한 경각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현재는 물론이고 50여년 전 <황홀한 피조물들>이 등장했을 당시에도 본 작품의 가치는 평상의 해석적 시각으로 재단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익스페리멘탈 / 언더그라운드 무비로 분류되는 본 작품의 해석은 심미적이고 직관적인 탐색을 통해 이뤄져야 할것이며,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온 이런류들의 자유롭고 쾌락적인 세계관은 흡사 미술관에서 경험해온 현대미술의 수용방식과 비슷한 형태로라도 받아들이며 그 가치와 존재이유를 논의하고 공유해야 할것이다.      

컬트무비에 대한 매혹과 열광도 끌어와본다. 특이취향의 과도유입과 특수팬덤을 노린 기획적 허술함들로 설명되는 현대영화의 돌연변이들, 그들이 치장한 마이너한 분위기에선 찾아보기 힘든 유영하는 자유로움들을 이전의 중단편 실험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본 작품은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는 크리스 마르케의 1962년작 <활주로>역시 영감과 상상력으로 가득한 과거의 신품이라 생각한다. 그야말로 소수에게 회자되는 기념비적인 컬트무비의 조건은 어쩌면 이들에게 더 유리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내러티브의 파괴가 작품의 입장을 더디게 하지만, 장르와 매체를 초월한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들을 대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창의적인 영감의 긍정적 원천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마지막 연유는 통제와 닳아가는 것들에 대한 단상이었다. 멀리갈것 없이 <황홀한 피조물들>의 감상 전후로 경험한 <악마를 보았다>의 검열과 <블랙 스완>의 충격요법에 대한 개인적 의문이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1963년 영화가 공개되었을 당시 작품의 표현수위는 충격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로인한 사회적 파장도 엄청나 본 작품을 지지한 어느 누군가는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반세기전의 빛바랜 해프닝을 듣다가 문득 두가지 갈래로 의문이 생겼다. 폭력과 성에 관한 표현수위. 이전에 7인의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실험영화 <제한해제>를 다루며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적이있다. 나체의 전시와 상식에 어긋난 성교로 점철된 필름이라고 해서 포르노취급을 당해야 하는가? 김지운과 이병헌의 메인스트림의 폭을 넓힌 과감한 시도가 어째서 1,2 초 차이로 제한상영과 청소년관람불가 사이를 오가야 하는가? 이 시점에서 페이드 아웃과 함께 과거장면 하나를 인서트 하고자 한다. 아래의 글은 박찬욱 감독이 2002년 <죽어도 좋아> 제한상영가 판정당시 올렸던 격문이다. 

그뒤로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그 영화 얘기를 해댔습니다. 기자들을 만나면 빨리 감독 인터뷰 잡으라고 충고했고 감독들을 만나면 우리 반성하자고 촉구했으며, 민간인을 만나면 “기다려라, 죽이는 영화가 너희 곁을 찾아갈 것이니. 한국영화, 이제 장난 아니니라”며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이번 판정으로 저, 완전히 바보됐습니다.

구강 아니라 비강으로 한들 뭐가 대숩니까, 아래로 들어가면 정상이고 위로 들어가면 변태입니까? 국가가 체위도 정해주나요? 남성기가 크게 잡혀서 안 된다고요? 중요한 건 어느 신체기관이 찍혀 있느냐가 아니잖습니까. 영화가 무슨 축군가요? ‘핸들링’처럼 ‘페니슬링’하면 반칙인가 보죠? 그럼 성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해놓은 미술사의 숱한 걸작들은 다 뭡니까. 그리고, 성교를 가짜로 했든 진짜로 했든 그런 게 왜 문제죠? 가짜로 하는 영화들일수록 진짜처럼 보이려고 애쓰지 않나요? 예를 들어 너무 실감나게 연기해서 꼭 진짜 같아 보이는 어떤 에로틱한 영화가 있다고 칩시다. 그럴 때 여러분은 배우들을 불러 실제 삽입 여부를 조사 확인한 다음, “삽입이면 제한이요, 불입이면 십팔이라…”, 이러실 건가요?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자기들 좋아서 진짜로 성교하는 장면과 아무 애정도 없는 배우들이 억지로 성교하는 척만 하는 장면 중에 어느 쪽이 보기에 아름다운가요? 그 장면에서 심의위원 여러분은 정말 성적 수치심을 느끼셨나요, 아니면 ‘나는 아니지만 우리 국민은 그럴 거야’라고 생각하셨나요. 전자면 과민이요, 후자면 오만이라….

제 생각에는 여러분이 뭔가를 심판하려는 자세로 영화를 봐서 그런 착각이 생겼지 않았나 싶군요. 그냥 편한 마음이었다면 여러분도 아마 저희 부부처럼 입으로는 웃고 눈으로는 우는 희한한 경험을 하셨을 텐데, 참 안 됐네요. 


<황홀한 피조물들>과 <악마를 보았다>의 연계를 상상하며 내가 언급하고자하는 바는 논리적인 반박이나 시스템에 대한 모순지적이 아니다. 음악부터 영화까지 도통 이해가 불가능한 현 체계에 대해 놀라움을 표할뿐이다. 수잔 손택의 글을 옮기게 된 몇몇가지 연상중 하나이기에 언급하며 문제제기할뿐 도저히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할지 모르겠다. <숏버스>와 <악마를 보았다>를 향한 몰상식하고 박한 대우들. 과연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것이 맞을까. <블랙스완>에 대한 고민은 충격과 표현이 점점 닳아져갈 몇몇 장르영화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었다. 훌륭하고 아름다운 심리스릴러 한편을 본 후 <황홀한 피조물들>의 해프닝을 듣고나니, 대런의 강박적 걸작이 몇십년 후에 받을 평가에 있어 연출장치에 대한 둔화가 걱정되어 살짝 고민했던건데, 얼마전 시네마테크에서 브라이언 드 팔마의 <시스터즈>을 보면서, 예상가능하고 고립타분한 순간을 영화적 고민을 통해 놀랍고도 지속가능한 충돌로 변환시키는 모습을 보며 한시름 걱정을 덜어놓긴 했다. 케익살해씬은 관객을 엄습하는 독특한 힘이 존재한다. 정말 사랑스러운 영화다. 

말이 길어졌지만, 결론은 이거다. 잭 스미스의 <황홀한 피조물들>은 보다 더 많이 언급되어야 하며, 수잔 손택의 글들은 보다 더 많이 읽혀야 한다는 것. 어쩌면 괴상한 40여분의 영상물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영화적 고민을 파생시켜준 독특한 경험이었기에 애정과 존경을 아끼고 싶지 않다.  

[Link] 다양한 포스터아트를 한눈에

2011. 5. 13. 14:28 Film Diary/Link


 

간혹 받게되는 질문, 포스터 아트의 출처는? 마음같아서야 친절히 하나 하나씩 알려주고 싶어도 나역시 수십가지의 영화관련 싸이트 혹은 디자인 싸이트를 옮겨다니다 산발적으로 튀어오르는 이미지들을 출처도 모른채 가져오는 경우가 많기에 명확한 답을 내리기가 애매했다. 요 몇년 이미지를 따라 이곳저곳 스며들다보니 포스터아트만을 집중적이고도 꾸준히 업로드하는 싸이트는 거의 없다고 보는게 맘 편하단 생각도 들었었다. 허나 얼마전 꽤 독특한 장소를 발견하게 되어 소개하고자 한다. 초반에는 다소 편중된 취향의 이미지들이 올라와 그렇게 멋진 곳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는데, 자료를 업로드하는 지속성과 보다 다양해진 수용성에 조금씩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Reelizer , 차곡히 쌓여가는 성실함도 마음에 들지만 이토록 단순하고도 직관적인 배려심이란 ! 한 페이지에 40개의 작품을 차분히 펼쳐놓은 후 손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 이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춘 디자인이다.  


이미지를 선택하면 확대된 이미지의 전시와 함께 최소한의 정보, 제목과 아티스트 그리고 카테고리의 단순한 구성이다. 아티스트나 카테고리의 내용을 선택하면 작가와 분류별로 이미지를 감상할 수도 있다. 요즘 발도장을 가장 잦게 찍는 곳이다. 부디 한결같은 모습으로 유지되길 바랄 뿐이다. 



[기대작] 라이프 인 어 데이 Life in a day - 멋진 하루

2011. 5. 12. 12:48 Film Diary/Preview


역사라는 단어를 마주할때면 항상 뒤따라다니는 의문과 아쉬움이 있다. 어떤 의미로든, 어떤 사유에서든  대의와 분류를 위해 뭉뚱그려지고 분해되는 개개인의 단면들. 어쩔 수 없는 한계지만 역시나 어쩔 수 없는 미련이다. 불편한듯 편이한 기억의 눈들 모두가 소유할 수 있는 요즘, 어쩌면 완벽은 아닐지라도 일정수준 이상의 갈증은 해소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우리는 시도때도 없이, 어쩌면 필요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기록하고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으로 시간만이 기제된 수 많은 문화와 일상을 밀어넣고 있다. 먼훗날. 일상의 역사란 측면에서 이들을 뒤돌아 볼때면 파편처럼 흩어진 우리의 수 많은 기록들은, 충분한 자료인 동시에 흐름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여기 이러한 아쉬움을 달래줄 매체의 긍정적 장악이 있어 기대감을 걸어본다. 

2010 년 7월 24일,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몇몇가지 기준점을 찍어 지구별을 하나로 묶는다. 숫자로 명시된 제한적 시적 범위와 햇빛과 달빛이라는 단 하나의 조명 그리고 닮은듯 다른 수십의 언어와 감정들. 리를리 스콧과 케빈 맥도날드는 보편적인 통로를 통해 국적불문, 주제불문의 일상을 모집한다. 한 가지 조건은 2010년 7월 24일의 일상이여야 한다는 점, 개인적으로 가장 흥분되는 단서다. 세계각지의 생활인들이 하루의 일상을 담아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업로드한 것을 리를리와 케빈의 선택으로 다듬고 이어붙여 한편의 영화로 탄생시켰다. 


<Life in a day> 197개국의 45개국어로 구성된 8만여개의 하루. 비록 95 분의 최종본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번 해프닝은 그 과정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하나의 추억이며 모두에게는 소소한 역사가 됐을 것이다. 편집과 연출을 맡은 케빈 맥도날드 감독은 이번 작품을 미래 후손들에게 건내는 어떤 하루의 타임캐슐이라 칭했으며, 선댄스 집행위원장 존 쿠퍼는 이 작품을 영화제에 추가하며 전 세계인의 스토리텔링 지원과 경험과 감정표현에 대한 플랫폼 기능으로서의 역활을 언급했다. 뜨겁고도 이토록 따스한 해프닝의 핵심을 비춰주는 좋은 취지들이다.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명쾌한 설명이다. (트레일러에서 가장 눈부신 단어 역시, Filmed by YOU)

이 작품은 지금껏 2가지 방식으로 공개되었다. 지난 선댄스를 비롯한 몇몇 영화제 상영과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이뤄졌던 단 한번의 유튜브 중계. 솔직히 말해서 간발의 차로 중계를 놓치긴 했지만, 이처럼 스펙터클한 로케이션과 신선한 내러티브의 다중플롯으로 구성된 의미있는 작품을 극장에서 처음으로 접할 생각을하니, 이 역시 나쁘지 않은것 같다. <인사이드 잡> 의 정식개봉을 바라보며 이번 작품, 그야말로 영상매체의 새로운 바람으로 기억될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극장에서 마주할 날을 기대해 본다. 마지막 귀여운 트리비아는 본 작품의 북미 개봉일은 2011년 7 월 24 일이다. IMDB rate - 8.4 (491 vote)   
 




트레일러를 살펴보면 감상자들에게 인사를 건내는 한 사나이가 있다. 이번 작품에 참가한 유일한 한국인으로서, 2001년 부터 9년간 자전거를 타고 190개국을 돌아다닌 자전거 탐험가 윤옥환씨 이다. 여행이란 특수성 때문에 다소 아쉬움이 남는 조건이지만 같은 나라 사람을 이런 곳에서 마주하는건 꽤나 신나는 일이긴하다. 




몇개월 전부터 가장 소개하고 싶던 작품이었고, 얼른 완성하고픈 포스팅이였다. 어쩌다보니 이제야 올리게됐지만, 참 기분이 좋다. 훌륭한, 하지만 상업성의 불확신으로 인해 주류에선 밀려난 타국의 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정말로 즐겁다. 인터넷은 일단 언어로서 구획을 나눈 후, 주제로서 각자의 틀을 완성하는 느낌이다. 우리는 보편적으로 한국어로 이뤄진 정보를 접하며, (이런 페이지를 떠도는 우리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다. 수 많은 블로거와 정보제공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을 떼어놓고 읽는다면 분명 무게감있고 존재가치 있는 조각으로서 각자의 몫을 다하고 있지만, 다소 편중된 경향이 보인다. 영화정보의 장이라는 틀 속에 그들의 조각들을 모으면 대부분은 겹칠것이며, 커다란 덩어리 사이사이로 무수히 많은 빈큼과 공백이 생길 것이다. 발견은 거창하고 필수는 과하지만, 이런 비상업적 작품에 대한 소개와 공유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 전시를 위한 단문의 감상보단 잠시의 흥분과 유익한 교류가 가능한 이와같은 기회가 더 늘었으면 한다. 언젠가 불어와 일어도 공부하고 싶다. 깊이도 중요하지만 폭의 매력에 점점 빠진다. 본편과는 다소 무관하나, 상당히 매혹적이고 경쾌한 트레일러를 마지막으로 ...
 

고전영화의 발견 201102

2011. 5. 6. 14:03 Film Diary/Classic movies

생각해보면 전파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영화 프로그램은 꽤 많은 편이다.  그러하기에 수적인 측면에선 별다른 불만은 없다. 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부류의 방송들이 창의적 기획과 팬들과의 소통에 있어 여전히 답보상태에 빠져있단게 아쉬울 뿐이다. 방송의 컨텐츠와 실용성에 있어 얼마만큼의 노력이 투자되며 이 기획들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수용자들에게 올바른 길잡이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영화팬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가이드가 몇이나 될지 생각해보면, 우열을 가리기전에 우리는 다섯손가락을 채 굽히지 못할 것이다. TV속 영화소개 프로그램들은 날이 갈 수록 영화팬들을 밀어낸다. 오히려 그들의 타겟은 영화에 취미 이하의 흥미를 보이는, 그렇다고 영화를 증오하지도 않는 대다수의 관객들인것 같다. 다행히 라디오란 매체는 그 속성만큼이나 속깊은 마음으로 영화팬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 일상의 어긋난 취향이 교합되는 공간으로서의 매력이 존재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위에 언급한 문제제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영화음악이란 주제를 걸고 감상적인 위안과 피상적인 정보를 주고받을 뿐이지, 깊이와 열정에 있어선 아쉬움이 남는게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지난 1월 6일 부터 이주연의 영화음악(MBC fm 4u 91.9)을 통해 방송되고 있는 김홍준 교수의 <고전영화의 발견>은 보석처럼 빛나는 기획이라 생각한다. 통칭 이영음으로 표현되는 이 새벽 영화음악 방송은 영화의 거죽만 둘러쓴 여타의 심심한 프로들에 비해 꽤 알찬 기획을 선보이며 기다림의 노고를 보상해주고 있다. <서편제>의 조감독 출신이자 <장미빛 인생>의 감독, 영화계 이곳 저곳에서 각종 위원장과 프로그래머를 역임한 이이자 현재 한예종의 교수인 김홍준. 앞에 언급한 수 많은 수식어보다 더욱 중요한건 바로,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영화광. 이거다. 김홍준 교수는 매주 목요일 새벽이면 자신의 지식과 애정을 가득담아 <고전영화의 발견>의 장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곳에서 매주 1편의 영화를 성의있게 소개하며, 감독의 최소한의 족적과 본 작품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30분 속에 녹여내려 한다. 고전이란 영화의 진화를 가능케 한 영화사의 전범이자 어쩌면 상업으로만 남을 수 있던 영화란 매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힘겹게 끌어들인 역사의 흔적이다. 이런 거대한 작품들을 30분의 순간에 온전히 담는단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는 듣는이로 하여금 감사한 마음이 일렁일만한 수준의 정성으로서 그 한계 메우려한다.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자리가 아니기에 김교수는 사전적 통상적 범위를 넘어 흥미의 끈을 놓치지 않을 수준에서 영화의 목록을 채워가고 있다. 초창기부터 심하면 90년대 까지의 영화를 고전으로 규정하고 이곳에서 소개하겠다는 약속은 고전영화의 소중함과 관람의 필요성을 설득시키기 위한 고민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소수를 위한 탐구보단 다수에게 고전의 가치를 알리자하는 본 프로그램의 취지와 노력은 적당한 선에서 알찬 정보를 안겨주고 있다. 다소 지나치게 유명한 작품 위주로 목록이 채워져가는 경향도 있지만, 지독한 영화광의 차고 넘치는 이야기를 듣고있자면 이미 영화를 본 이들이라도 마치 DVD 의 서플을 귀로 감상하고 있는듯한 묘한 2차적 즐거움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본 카테고리를 통해 매주 방송되고 있는 <고전영화의 발견>을 월 단위로 묶어 포스팅을 할 생각이다. 라디오란 매체의 접근성과 더욱 열악한 다시듣기의 불편함이 맘에 걸려 말로만 추천하기 보단 직접 눈앞에 가져다줄 생각이다. 적당한 경계에서 의미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고전영화의 발견>을 통해 발견혹은 회상을 경험해보길 바란다.   

2001년 씨네 21 <김홍준 - 정성일 대담> 을 통해 김홍준 교수는 현존 최고의 감독을 묻는 질문에 존 포드, 오스 야스지로, 루이스 브뉘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로베르 브레송 중 한 사람이라도 살아있다면  주저없이 꼽겠지만 거장들의 세기가 저문 마당에 그 답은 쉽게 나올 수 없을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가 생각하는 고전영화는 어떤 의미일지, 한번 들어보도록 하자.




20110203 서편제







20110210 Vertigo







2 월 17 일자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편 부터는 코너 속 소개음악이 편집되지 않고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

20110217 Elevator to the Gallows







20110224 Blade Runner






김홍준 교수님께서는 이영음 게시판을 통해 청취자들의 질문과 후기에 친절하게 답변을 달아주시고 계십니다.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영화를 보고난 후 생긴 궁금증이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곳 <고전영화의 발견> 게시판에 의견을 남기시면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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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류승완의 <지구를 지켜라>에 보내는 열렬한 응원

2011. 4. 26. 02:57 Film Diary/Interview


2003.04.11

박찬욱-류승완, 이상한 감독 2人이 괴상한 영화 <지구를 지켜라!>에 보내는 열렬한 응원


지난 3월 중순 <지구를 지켜라!> ‘VIP시사회’가 열리던 한 극장에는 유난히 열광적인 분위기의 한 무리가 눈길을 끌었다. 광란이라 할 만큼 뜨거운 반응을 보냈던 이들의 정체는 박찬욱, 김지운, 허진호, 봉준호, 류승완 등 젊은 감독들. 이날 그들은 <지구를 지켜라!>의 기발한 세계에 취했고, 이어진 자리에서도 술과 대화에 취했다. 그중에도 유난히 목소리를 높였던 박찬욱 감독과 류승완 감독이 한 카페에서 만나 <지구를 지켜라!>에 관한 수다를 떨었다. 4월12일이면 <마루치 아라치>(가제)의 크랭크인에 들어가는 류 감독과 5월 초 <올드 보이> 촬영에 돌입하는 박 감독 모두 초 단위로 일정을 짜야할 정도인데도 시간을 내준 것. ‘동업자’로서의 연대의식 때문이 아니라 이 영화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 위해서였다. <지구를 지켜라!>를 통해 예전 영화광 시절의 즐거움을 잠시나마 되찾았던 두 감독이 “이 영화를 응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박찬욱 | (웃으면서)어 승완아, 소문에 <마루치 아라치>의 크랭크인이 내년으로 미뤄졌다더라.

류승완 | 감독님, 제발 악소문 좀 내지 마세요. 아, <올드 보이>는 감독 바뀌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박찬욱 | (웃음) 도대체 개봉이 언제야, 개봉이?

류승완 | 아직 개봉을 안 잡고 있어요, 일부러. CG 분량도 많고 스케일도 커서 개봉일을 미리 정해놓을 수가 없어요.

박찬욱 | 난 11월이거든. 알지?

류승완 | 아, 전 11월엔 죽었다 깨도 못해요. 저희는 8월 말 정도까지 촬영하는데 후반작업이 길어질 것 같아요.

박찬욱 | 후반작업 들어가면서 다음 작품 촬영에 들어가면 되겠네.

류승완 | 원하는 게 그건데. ‘류승완이 해냈다’,(웃음) 이런 좋은 소문을 내놓고 작품이 끝나기 전에 계약을 해서…. 계약만 하면 전쟁이 나도 되고….

박찬욱 | 전쟁, 그거 어떡하니?

류승완 | 아차, 감독님. 00당에 제 연락처 가르쳐주셨어요?

박찬욱 | 아니. (침묵)

류승완 | 거기서 감독님이 가르쳐줬다고 하던데요. 제가 촬영준비 때문에 낮엔 시간이 정말 없다고 하는데도 계속 1인시위를 하라더군요.

박찬욱 | 거 참 이상한 애들이네. 내가 네 전화번호 가르쳐줬다고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류승완 | 아, 그렇죠. <지구를 지켜라!> 어떻게 보셨나요?

박찬욱 | 이창동 감독이 문화부 장관이 되는 걸 보고, 이젠 나도 영화 만들어 칭찬도 많이 받을 수 있을 줄 알았거든. 당분간 영화 못 만드실 테니. 그런데 이런 영화가 나오고…. (한숨) 앞으로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도 나오지…. 올해도 틀렸구나…. (웃음) 그런 착잡한 마음이지. 산 넘어 산이구나, 하는. 허진호가 나보다 늦게 찍을 것 같아서 그나마 위안은 되는데, 어떡하냐 이제.

류승완 | (애써 정색하며) <선생 김봉두>가 잘돼야죠.(류승완 감독은 <선생 김봉두>의 제작사인 좋은영화에서 새 작품을 만든다) 저는 그거예요. (웃음)

박찬욱 | 좀 진지해지자. 나는 장르영화가 볼 때는 즐겁지만, 만들 땐 안 내키는 그런 갈등 속에서 지냈어. 내가 만든 영화가 완전히 장르에서 벗어난 게 아니면서도, 만들 때는 장르적으로 막 간다는 게 별 재미가 없어서 괴로워하던 참이라고. 근데 이 영화는 장르영화이면서도 장르를 갖고 놀다시피 하니까 그런 게 부럽기도 하고. 그런 감독이 한국에 필요한데, 기다리던 재능이라는 생각을 했어. 그런데 이게 <선생 김봉두>에 비해 어떻다는 거야.

류승완 | 일단 <선생 김봉두>의 흥행이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웃음) 사실 저는 <선생 김봉두>를 재밌게 봤거든요. 영화의 완성도나 이런 걸 떠나서 만든 사람의 진심이 보여서 좋았어요. 같은 맥락에서 <지구를 지켜라!> 같은 경우는 주류에서 장르를 활용해 어떻게 개인적인 영화를 만드는가, 이게 너무 잘 보이니까. 감독 개인의 얘기이기도 하고, 장르의 외피를 썼으면서 그거대로 가지 않기도 하고.

박찬욱 | 우리 제작실장은 팀 버튼보다 나은 재능이라고 그러던데. 팀 버튼이 없었다면 또 이런 영화도 안 나왔겠지만.

류승완 | 저는 장준환 감독 단편도 봤고, 함께 일해봤던 경험이 있고, 개인적인 친분으로 시나리오도 먼저 봤거든요. 그래선지 영화에서 만든 사람이 계속 보이더라구요. 그게 되게 좋았어요. 물론 개인을 모르고 그냥 영화를 봤을 때야 다르겠지만, ‘현장에서 저 사람 어디서 낄낄댔겠군’, ‘왜 저렇게 만들었는지 알겠군’, ‘저때 정말 자기가 무서워했겠군’, 뭐 이런 식이니까 재밌더라구요.

박찬욱 | 난 잘 모르는데도 재밌었어.

류승완 | 요샌 그렇게 개인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그러니까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잖아요. 그리고 자기를 드러내려고 해도 뭔가 이렇게 덮게 되고….

박찬욱 | 장 감독은 잘 모르지만 난 (신)하균이를 보는 게 좋았어.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도 함께했지만 <복수는 나의 것> 때 미안한 마음이 있었거든. 거기서 말을 못하는 역할이었으니까. 자기 표현의 무기를 뺏어놓고 연기시키는 게 미안했는데, 여기서 적역을 맡아 날아다니는 걸 봤거든. 하여간 시사회날 기분이 너무 좋아서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 장준환, 허진호 감독, 뭐 이렇게 새벽 6시까지 술 마셨다니까. 근데 하균이는 중간에 도망가고. 그래서 하균이한테 문자 메시지 보냈어. 두나한테도 보내고.

류승완 | 아 감독님, 요즘에 문자도 보내세요?

박찬욱 | 그럼. ‘하균이 영화 끝내주더라’ 이렇게 보냈더니, 두나는 그때 촬영 중이더라구. 새벽 6시에. 근데 어떻게 걔는 금방 알더라. ‘아직도 술 드시나요’ 하고 답이 오더군. 문자에도 그런 게 보이냐? 혀 꼬부라지고 그런 게? 아, 내가 6시에 일어나서 뭘 했을 거라고 생각을 안 하는 거지, 그지? (웃음)

류승완 | 새벽 6시에 문자는 잘 안 보내죠. (웃음)

박찬욱 | 특기할 만한 사항은 송강호 선수가 이 영화를 두번 봤다는 거야. 1년에 2편 보는 사람이. 올해 분량 다 채운 거야. (폭소)



류승완 | 이 영화에서 B급영화 정서가 흐른다는 말이 많은데, 제가 볼 때 장준환 감독은 참 특이해요. 감독 본인은 B급영화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어쩌다 저랑 영화 얘기를 하다보면, 놀랍다는 눈을 하면서 그 느릿느릿한 말투로 ‘어 넌 어떻게 그 영화들을 다 봤니?’ 이런다고요. (웃음) 아무튼 그 영화가 좋은 이유 중 하나가 그런 건데, 뭔가 아슬아슬한 지점이 있잖아요. 어느 쪽으로 좍 가는 게 아니라, 위태위태하게…. 그게 영화의 긴장이 돼서 몰아붙여요. 연기도 마찬가지에요. 이 사람이 영화광 출신이고, 그런 장르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의 설렁설렁한 연기에 중독돼 있었더라면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연기 연출하는 방식은 정공법이잖아요.

박찬욱 | 난 옛날 존 벨루시 시절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가 떠오르더라. 그때 이 TV쇼에 나오던 코미디언들은 다 마약중독자였단 말야. 그 미치광이, 마약중독자들이 나와서 미쳐버린다고. 이 영화엔 그런 무드가 있었어. 아주 좋았어. 그렇게 광기에 휩싸이는 영화가 한국에 별로 없었잖아.

류승완 | 저는 장 감독이 감수성에서 영향받은 지점이라면 B급영화로부터가 아니라 B급인생이 아닐까, 생각해요. 거기 나오는 폭력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김지운 감독님이 옛날에 <피도 눈물도 없이>를 보고 나서 제 영화에 나오는 폭력이 되게 히스테리컬하다는 느낌이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지구를 지켜라!>에 나오는 폭력도 여유가 없고, 광적이고….

박찬욱 | 너무 잔인하더라. 뒷부분에 연구소에서 백윤식씨가 하균이를 X나게 팰 때, 너무 무섭더라.

류승완 | 최근에 비교할 만한 영화가 있었던 것 같긴 한데…. 물속에서 발목 끊고, 그러는. (<복수는 나의 것>을 극히 우회적이고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박찬욱 |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더라.

류승완 | 그게 제 생각에는 약자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 같아요. 강자라면 폭력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게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거든요. 여기서 약자란 개인이 약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자신이 위치하고 있는 입장이나 그런 게 그런 편이란 거죠. 그리고 단편 <2001 이매진>하고 같은 연장선상에서 약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것도 느껴지거든요. 엄마에 대한 집착이나. 기본적으로 홀로서기가 잘 안 되는 인간에 대한 애정 같은 게 있어요.

박찬욱 | 그 인간이 그래?

류승완 | 아니, 뭐 그렇다기보다는….

박찬욱 | 너 삭제장면 아냐? 하균이가 굉장히 아쉬워하는 삭제장면이 있더라구. 추 형사를 추락사시키는 장면 있잖아. 그 다음 장면에서 카메라가 빨랫줄에 널려 있는 마네킹 팔들을 죽 트래킹한대. 그런데 그 팔들이 흔들흔들하는 거야. 그리고 저 멀리서 하균이가 도끼질을 하고 있는 게 포커스아웃으로 비쳐지고. 그러니까 도끼질 진동에 흔들거리는 거야.

류승완 | 카아~.

박찬욱 | 아주 리드미컬하게. 그리고 트래킹의 마지막은 진짜 팔이지. 추 형사의 팔. 그게 참 좋았다더라구. 차승재 대표도 아주 잘 찍은 장면이었다 하고. 감독이 왔기에 그걸 왜 뺐냐구 그랬어. 너무 폭력적이어서 뺐다고 한다면 잘못 생각하는 거다, 지금 남아 있는 데서도 훨씬 폭력적인 장면이 많다고. (웃음)

류승완 | 감독님, 근데 삭제장면이 걸작이란 얘기는…. 우리가 항상 쓰는 수법이잖아요. 정말 죽이는 장면을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뭐 이렇게….

박찬욱 | 장준환 감독이 그 장면에 대해서 뭐라고 하냐면, “참 아름다운 커트였죠”. (웃음)


류승완 | 저는 <지구를 지켜라!>가 걸작이라기보다는 간만에 보는 에너지가 충만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다소 거친 CG장면들이 튀어나와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잖아요. 그 영화의 미덕이 거기인 것 같아요. 너무 세서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너무 세서 좋은….

박찬욱 | 난 좋아. 형사들 나오는 게 좀 재미없었고, 나머지는 더 바랄 게 없어. 팀 버튼이 쓴 시나리오를 존 랜디스가 연출한 것 같아.

류승완 | 크으~.

박찬욱 | 특히 생각나는 장면이, 백윤식씨가 여자 옷 입고 환풍기 뜯고 도망가려다가 감전돼가지고…. (폭소) 엎어져서 울다가 웃다가 막 그러잖아.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데, 송강호도 그러더라고. “저건 연기가 아니다. 실제로 백윤식씨가 ‘씨발 내가 여기서 뭘하고 있나. 내 인생 왜 이렇게 풀렸나’, 이러는 거”라고. (폭소) 난 거기가 백미였던 것 같아.

류승완 | 제가 꼽는 백미는 액션장면이죠. 약국에서 나와서 벌어지는. 그게 제일 이해가 안 가는 장면이지만. (웃음)

박찬욱 | 내가 아쉬웠던 건 형사들 에피소드가 너무 길게 느껴지더라는 거야. 영화를 보다가 무슨 얘기 하려는지 알겠으니까 그만하고 이제 산으로 가죠,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

류승완 | 병구나 강 사장, 순이는 안에서 뭔가 분열하고 있는 게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형사들은 딱 자기 역할만 있는 것 같아요. 서울대 나온 형사, 막 치고 올라가는 반장, 주방에서 일하는 추 형사 이렇게. 그러니까 역할만 있지, 캐릭터가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박찬욱 | 난 형사들보다는 순이를 좀더 보여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좀더 보고 싶더라. 병구와 헤어진 다음에 순이가 어떡하고 있는지, 순이가 서커스하는 장면이나 왜 순이는 병구와 사랑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도. 아, 그런데 나는 백윤식씨가 앓는 소리를 할 때마다 너무 웃겨가지고…. (웃음) 그 아무 포인트가 아닌데도…. 대사가 없어도 돼. 아으으, 그러기만 해도 죽겠더라, 진짜.

류승완 | 배우도 배우지만, <지구를 지켜라!>에서 굉장히 좋았던 게 미술인 것 같아요. 그분이 우리 영화 미술감독(장근영)이기도 하죠. 음악도 굉장히 좋았어요. <오버 더 레인보우>를 계속 변주해서 쓰는 것도.

박찬욱 | 난 <오버 더 레인보우> 쓴 것은 좀 진부한 발상이라고 생각했어.

류승완 | 미술감독에게 들어보니 같이 콘티 작업을 했는데, 밝은 장면에서는 밝은 <오버 더 레인보우>, 어두운 장면에선 어두운 <오버 더 레인보우>, 빠른 장면에선 시끄러운 <오버 더 레인보우>, 이렇게 종류별로 틀어놓고 콘티를 그렸대요. 다른 인터뷰에선가 봤는데, ‘<오버 더 레인보우>는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나오는 음악이 아니냐’고 물으니까 장준환 감독이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러대요. <오즈의 마법사>를 자세히 보고 있으면 주디 갤런드가 미쳐서 그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고…. (웃음)


박찬욱 | 그러니까 미친 병구와 잘 맞는다? 그래, 너무 잘 맞아서 재미없다는 얘기지. 그런 식으로 보기 시작하면 모든 영화의 주인공이 미쳤다고 볼 수도 있어.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도 이혜영, 전도연, 그리고 수십명 다 미쳤지.

류승완 | <복수는 나의 것>도 그렇게 정상적이진 않죠. 이해해달라고 하면서 발목 끊고…. (웃음) 아, 감독님, <2001 이매진> 보셨나요? 이 영화가 그것과 되게 흡사해요. 캐릭터가 함몰되는 방식 같은 게. 주인공의 존재가 이미 만들어져 있는 무언가에 영향받는다는 것도 그렇죠. <2001 이매진>에선 주인공이 존 레넌이라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아이콘에 필이 꽂히죠. 이 영화도 보면 거기서 농담같이 얘기하지만, 병구가 추 형사에게 “저도 이 책 안 만났으면 평생 화만 내고 살았을 거예요”라고 하잖아요. (웃음)

박찬욱 | (웃음) 그 대사 진짜 예술이야.

류승완 | 그렇죠? 어쨌든 병구가 완전히 산골에서 사니까 현대문명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그렇게 미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돌파구가 없으니까 그런 책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


 박찬욱 | 이 영화는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잖아. 대개 이런 영화에 그런 얘기가 들어갔을 때 거부감을 사기가 쉬운데 그런 건 전혀 없었어. 그런데 시사회에서 일부 젊은 관객은 병구의 과거가 나오자 ‘또 그런 거였어?’라고 했다는군.

류승완 | 실제로 제 동생 세대나 이렇게 보면 좀 다른 것 같아요. 아마도 내 또래 정도까지가 현실을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박찬욱 | 그렇지. 요즘엔 시위를 해도 즐겁게 하니깐.

류승완 | 젊은 세대가 영화를 어떻게 봤을지 궁금하긴 하네요.

박찬욱 | 내 주변 사람들은 다 죽던데. 우리 회사 직원들도. 우리 회사 직원들은 <복수는 나의 것> 안 좋아하는 애들 많거든. 그런데 <지구를 지켜라!>는 다 죽고 왔어. 결국 흥행이야 관객이 알아서 하는 거지만, 이 영화가 잘되면 우리야 편해지겠지. 이런 영화가 돈을 벌 수 있다면 아무래도 은퇴, 아니 퇴출 날짜를 좀 미룰 수 있겠지.




류승완 | 스코시즈가 <천국의 문> 사태가 끝나고 한 얘기 있잖아요. 더이상 큰 제작비로 개인적인 영화 만드는 시대는 끝났다, 뭐 이렇게. 저도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잘됐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요. 지금은 영화가 일종의 기호식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은데 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박찬욱 | 이 영화에서 가장 기분 좋은 점은 웃음이 폭력과 붙어 있다는 거야. 그게 또 슬픔과 그렇게 결합돼가는 거 말이야.

류승완 | 일방적으로 웃어라 해서 웃는 게 아니라 좋은 거 같아요. 끊임없이 계속 웃을 사람 웃고, 놀랄 사람 놀라고. 무책임한 게 아니라 재밌는 연출 같아요. 이를테면 김지운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 영화에서도 그런 게 있잖아요. 포크로 이마를 찔렀는데 웃어야 하는지 아닌지, 달려가다 아파트 문짝을 맞고 쓰러졌는데 웃어야 하는지 울어야 하는지.

박찬욱 | 내가 시나리오 쓰거나 콘티 작업할 때 사람들이 이건 너무 잔인해요, 라고 할 때 내가 항상 드는 예가 있어. <반칙왕>을 봐라. 거 뇌의 시점숏, 포크가 푹 들어오고. 근데 그거 흥행만 잘되지 않았냐. 그래서 나는 아직 멀었다고 그러지. <지구를 지켜라!>가 잘됐으면 하는 것도, <반칙왕>말고 예를 들 사례가 있으면 좋은 거지, 나는.

류승완 | 하긴, 이태리타월로 밀고 물파스를 바르니…. 우린 아직 멀었다.

박찬욱 | 백윤식씨가 “난 마취됐어, 아프지 않아”, 이러면서 못 박힌 손을 빼고. 오우~.

류승완 | 그러니까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 하지만 영화로 즐길 수 있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그게 영화적인 매력인 것 같아요. 너무 뻔하지 않게 가면서…. 그래서 상상력이라보다는 관점의 차이 같아요. 저는 이 영화가 상상력이 빛난다기보다는 아 참 골때리게 본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관점이 독특하다는. 말할 때 엄한 얘기 툭툭 던지는데 유쾌한 사람 있고, 짜증나는 사람이 있잖아요. 장 감독이 전자 스타일이거든요. 영화가 그렇게 나와서 되게 좋더라고요. 그리고 이러면 웃기겠지, 식의 잔 계산 대신 그냥 딱 했는데 그게 웃겨 보이고. 즐겁고 슬프고.

박찬욱 | ‘이러면 웃기겠지’보다는 ‘이때 웃어도 할 수 없어’쪽이겠지.

류승완 | 관객이 포스터 문구를 보고 코미디 정도로 생각하고 본다면 ‘또 뭐야’, 이럴 수도 있는데, 그런 건 다 걷어버리고 극장에 들어오는 순간 그냥 풀어놓고 보면 좋을 거예요. 분명 진심이 있는 영화잖아요.

박찬욱 | 근데 그날 차승재 대표의 반응은 실망스러웠어. 나하고 허진호하고 김지운, 류승완이 좋아했다는 얘기를 해줬더니 그걸 비보로 받아들이더라고. 어쩌면 좋냐는 투로. 그런가 하면 최근에 김동주 대표 인터뷰에서는 곽경택하고 나하고 박기형하고 허진호 얘기를 하면서 최신작이 다 실패했던 감독들이라 반성하는 걸 기대한다고…. 한순간에 이렇게 되는구나…. (웃음) 잠깐이구나…. (웃음) 그렇게 생각했지.

류승완 | 그래도 감독님은 누가 얘기라도 해주죠. 저는 이제 얘기도 안 나와요. 영화나 찍어야지, 조용히.

박찬욱 | <지구를 지켜라!> 광고에 내 평도 실려 있잖아. 근데 그거 실패해봐. 투자자들이 날 또 어떻게 보겠냐고. 내 말을 인용해놓고 그때 가서 차승재 대표가 책임질 거냐고.

류승완 | 그러고보니 저도 이 대담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웃음) 아, <시카고>에 붙을걸.
 

박찬욱 | 아무튼 내 영화도 앞두고 있는데, <지구를 지켜라!> 보고선 X됐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

류승완 | 저는 남의 게 좋으면 가져다 쓰는 성격이라서, 뭐 별로…. 그냥 전화 한통 해주고 가져다 쓰는 편이라 그런 게 없어요. (웃음) 그런데 희한한 게 제가 한 건 표절이라고 하고, 장준환 감독님이 한 건 표절이 아니라고 하대요. 아니,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똑같이 해놓고, 오마주다, 이러고.

박찬욱 | (웃음) 솔직히 말해서 그 영화 보고 행복했어. 너무 유쾌하게 보고 6시까지 술 마시고.

류승완 | 어쨌든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기분은 좋지 않아요?

박찬욱 | 모처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은 영화를 만난 거고.

류승완 | 저는 시나리오 볼 때부터 잘됐으면 좋겠고 막 그랬는데, 내가 응원한 만큼 나와서 안심했어요. 나 이 영화 좋았어, 그래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그게 되게 고맙더라고요.

박찬욱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너도 바쁘지? 그럼 영화 열심히 만들자고.

류승완 | 네, 감독님. 그럼 저희도 <지구를 지켜라!>를 능가하는 주류 대중 흥행영화를 만들어야…. (웃음)



영상자료원의 5월

2011. 4. 26. 02:42 Film Diary/Column



알 사람은 이미 다 알고있기에, 라는 단서뿐이겠는가. 알고 있더라도 물리적 방문이 힘겹기에 영상자료원이나 인디상영관에서의 개봉 소식은 별도로 고지하지 않았었다. 허나 우연한 계기를 통해 잠시 딴맘을 먹게되었다. 이상하게 들리지 모르겠지만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준 친구는, 필요에 따라 문자를 보낸다는 마셰티 양반이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마셰티>를 극장에서 보기 몇달전나는 이 작품을 집에서 먼저 감상했었다. 최소한 개봉작만은 극장에서 만나보자는 이기적 순결주의자였지만 솔직한말로 장난으로 시작해 장난으로 끝나는, 심지어 아무런 맥락없이 잔인하기까지한 이 작품이 대한민국 극장에 걸리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아마 현 캐스트에서 몇몇 배우들의 이름을 지워버린다면 DVD 직행의 운명을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굉장히 실망스러운 작품이라 속단했었다. 하지만 극장에서 이 작품을 다시 본 후 <마셰티>를 완성시키는 요소는 다름아닌 극장이란 공간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작품성이나 완성도에 대한 부담은 버리고 시작한 농담이었다. 엉성한 비율의 화면과 스크린에 애써 박어넣은 촌티들. 영화적 헛점을 극대화시키는 극장이란 공간이야 말로 요 쌈마이스런 로드리게즈의 농에 가장 적합한 장소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화룡정점은 나와 비슷한 각도에서 의도된 순간에 적절한 낄낄거림으로서 그들의 발악에 예를 갖추는 관객 친구들이었다 (생판 남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친구같은 존재들이었다). 

이래저래 <마셰티>에 대한 미안함과 로드리게즈에 대한 오해를 정리하고 영상자료원에서 준비한 5월의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내가 읽어봐도 주제와 근거가 전혀 이어지지 않고있지만 이번 <마셰티> 해프닝을 통해 깨우친 간단한 교훈은 첫째, 극장에서 멀쩡히 영화가 상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구석에서 소박하게나마 감상한 후 영화에 대해 제멋대로 실망하는 짓거리는 어쩌면 바로 옆동네에 사는 처자와 직접 얼굴을 맞대고 멋진 시간을 보내볼 수 있음에도, 화상채팅을 통해 그녀와 한두시간 떠든 후 '이번 소개팅에서 만나본 여자는 영 별로였어...' 라고 중얼거리는 것 만큼 안쓰럽고 희안한 짓이나 광경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둘째는 이런 진실되고 황홀한 스크린의 경험을 단 한번의 언질과도 마주하지 못해 갈등의 기회조차 맛보지 못할 극소수의 불우이웃을 돕기 위함이다.
 
고전은 개뿔, 어쩌면 10년 후면 제목조차 기억하지 못할 작품들도 섞여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이유는끝내주는 몇몇 걸작들도 섞여있기도 하지만 그것보단 누군가에게는 그 어떤 걸작보다 소중하게 맘에 담아둘만한 이쁜 영화들이 꽤 많기에, 그리고 그런 인연과 어긋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걸어놓고 누군가는 인지하길 바라기 떄문이다. 5월 1일,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전이 끝나면 <블루레이 특별전>과 <앵콜극장전>이 이어진다. 

블루레이 특별전의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5월 3일부터 7일까지 비교적 짧게 진행되며 각 영화당 상영횟수는 2회 정도다. 상영일자와 시간은 이곳 상영스케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판의 미로  2006 / 15세관람가  기예르모 델 토로
 그라인드 하우스  2007 / 18세관람가  쿠엔틴 타란티노 - 로버트 로드리게즈
 허트 로커  2008 / 15세관람가  캐서린 비글로우
 렛 미 인  2008 / 15세관람가  토마스 알프레드슨
 싱글맨  2009 / 15세관람가  톰 포드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2010 / 12세관람가  이시아라 타츠야 - 타케모토 야스히로

일단 5년전 일반 상영관에서 기립박수를 칠뻔한 <판의 미로>를 감상할 수 있다. 스크린으로 다시볼 생각을 하니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번 라인업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그라인드 하우스>다. 북미흥행 실패로 타국에선 매정하게도 쌍둥이를 각기 다른 곳으로 입양시키는 꼴이 되버렸던 웨인스타인의 횡포로 (그도 그럴것이 <그라인드 하우스>는 지난 10년간 최악의 흥행성적을 거둔 작품 순위에서 9위를 차지했다) 인해 흥겨운 이벤트의 쾌감의 반의 반도 느끼지 못했던 지난날의 원통함을 씻어내릴 기회다. 상영시간 191분이 이리도 반가울 수 있을까. 여기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두 감독의 작품을 합치고 중간에 일라이 로스, 에드가 라이트, 롭 좀비가 별 지랄을 다해놨어도 <카페 느와르> 보다 러닝타임이 짧다. <플래닛 테러>와 <데스 프루프>를 동시에, 그것도 스크린으로 접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아주 씬나죽겠다. DVD 로 몇번이고 돌려본 작품이지만 기껏해야 안방 티비로 감상한게 전부이기에 이번 기회야말로 <그라인드 하우스>와의 진정한 첫만남이 이뤄질 수 있을것 같다. 


블루레이 특별전에 이어 우릴 맞이하는 건 <앵콜극장전>이다. 누가 한건진 몰라도 참 이쁜 짓이다. 본 프로그램의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로큰롤 인생  2007 / 35mm / 전체관람가  스티븐 워커
 우리 의사 선생님  2007 / 35mm / 12세관람가  니시카와 미와
 몽골  2007 / DV     / 15세관람가  세르게이 보드로브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  2008 / 디지털/ 전체관람가  파울 슈마츠니 - 마리아 슈토트마여
 오슬로의 이상한 밤  2008 / 35mm / 15세관람가  밴트 해머
 산타렐라 패밀리  2008 / 35mm / 15세관람가  나초 G. 베일라
 파리 36의 기적  2008 / 35mm / 15세관람가  크리스토퍼 빠라띠에
 울트라 미라클 러브 스토리  2009 / 디지털 / 12세관람가  요코하마 사토코
 아이 엠 러브  2009 / 35mm / 18세관람가  루카 구아다그니노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  2010 / 디지털 / 12세관람가  피나 바우쉬
 환상의 그대  2010 / 35mm / 18세관람가  우디 앨런
 사랑하고 싶은 시간  2010 / 디지털 / 18세관람가  실비오 솔디니
 세상의 모든 계절  2010 / 35mm / 12세관람가  마이크 리

솔직히 이 13편의 작품을 다 감상한건 아니지만, 일단 음악과 춤이 인생과 만나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연출해내는 <로큰롤 인생>과 <엘 시스테마> <댄싱 드림즈>가 안보이나. 이따금씩 극장 관람을 상상해본 작품들이기에 심히 반갑다. 그뿐인가 때려죽여도 결코 변하지 않을 2011년 최고의 걸작 두편이 라인업에 끼여있다. 나는 사랑일세 라며 황홀한 자아회복귀를 펼쳐보인 평범한듯 비범한 <아이 엠 러브>와 인생의 진실과 거짓을 교묘히 배열해 사람 맘을 제멋대로 들쑤셔놓은 마이크 리 할배의 <세상의 모든 계절>을 다시볼 수 있다. <미드나잇 인 패리스>를 만나기 전에 잠시 보류했던 우디 앨런의 최근작도 만나볼 수 있고, 설원의 풍경만큼이나 시린 농으로 점철된 <오슬로의 이상한 밤>의 분위기에 빠져볼 수 도 있는 기회다. 5일 부터 19일까지 상영되며 자세한 상영일정은 이곳 상영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편중 10편 가량은 고대하고 있다. 물론 다 볼수는 없을게다. 애석하게도 잠실에서 바라본 영상자료원의 위치는 서울같지 않은 서울이다. 얼마전 비행기를 타고 갔던 제주도가 더 금방 도착했던것 같다. 여하튼 루카 구아다그니노, 마이크 리 평생을 기억하게 될 내생의 걸작을 선물해준 두 감독의 작품은 기필코 다시찾을 생각이다. 그리고 <그라인드 하우스>는 사적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 누가 때려죽인다고 해도 가볼 생각이다. 나머지 작품들은 기회가 된다면야 최대한 노력해서 스크린을 통해 만나보고 싶다. 그러고보니 영상자료원에 대해 이야기를 안했다. 위치는 여기고, 가격은 공짜야. 시설은 준수하다네. 인사는 못하겠지만 함께 즐거이 영화를 감상해보자고. 마셰티 땡큐.  

후아유 - 노래라는 몸짓

2011. 4. 24. 16:01 Film Diary/It scene



이 땅의 영화계에서 가장 소외된 장르중 하나가 바로 뮤지컬이 아닐까싶다. 최초의 뮤지컬영화 <청춘 쌍곡선 (1956)>을 시작으로 <삼거리 극장>에 이르기까지 (삼거리극장도 벌써 5년전에 본 영화다. 그 이후론 그럴싸한 시도조차 없었다.) 우리의 기억속에 고스란히 남은 넘버와 씬들은 몇이나 될까. 지금 이곳에서 소개할 영상, <후아유>속 조승우의 소박한 퍼포먼스는 아이러니하게도 21세기에 갓 들어선 청춘남녀들의 앳된 관계를 다룬 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영화팬들에겐 가장 인상적이고 친숙한 음악적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고 본다). 이건 쫌 슬픈일이 아닐까 싶다. 간헐적으로 시도라도 이뤄진다면 아쉬움이 덜한텐데, <추격자>가 스릴러의 불씨를 당겻던 것처럼 대중적이고 환상적인 뮤지컬 영화가 하나 등장하지 않는 이상 이대로 희미하게 사라져 버릴것만 같아 정말 아쉬울 뿐이다. 

주제로 돌아와, 비단 뮤지컬 장르와의 비교를 떠나서라도 조승우가 이나영을 위해 윤종신의 '환생'과 긱스의 '짝사랑' 나미의 '유혹하지 말아요'를 연달아 부르는 장면은 노래라는 몸짓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선물과 위안이 될 수 있을지 보여주는 예시일 것이다. 라이브 스피커라니, 벌써 추억이 된듯한 단어다. 그러고보니 9년이 흘렀다. 좋은 배우들의 시작점을 볼 수 있는 야심찬 작품이니 아직 감상하지 못한 분들은 한번쯤 시간내어 봐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다시 본 <후아유>는 흥미로운 부분이 꽤나 많았다.    



김지운, 이상한 감독 박찬욱을 만나 <복수는 나의 것>을 논하다.

2011. 4. 22. 13:27 Film Diary/Interview



2002.04.06

한살 터울의 두 감독, 박찬욱과 김지운은 어딘지 닮았다. 체내에 흐르는 영화광의 피가 잡아당겨서 그런지 시사회나 회고전을 비롯해 영화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행사에서 둘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류승완 감독이 “우정의 가교”였다고 말하는 두 감독은 송강호가 주연한 영화 <반칙왕>과 <공동경비구역 JSA>로 21세기 첫해의 스타 감독으로 떠오른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영화세계가 겹치는 교집합은 그간 만든 영화보다 그간 본 영화쪽에 훨씬 폭넓게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두 감독이 만나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근사할 것이라는 발상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진정 서로의 세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평가해줄 수 있는 두 감독의 이야기는 엿듣는 즐거움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해보였다. 김지운은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해 “나라면 두려워서 코미디로 피해가는 부분을 과감히 치고나간 영화”라며 박찬욱을 “늘 나보다 한두발 앞서 나가는 감독”이라 말한다. 송강호에게 코믹연기가 아닌 전혀 다른 이미지를 뽑아낸 것만 봐도 김지운의 이런 말은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러므로 두 감독의 대화는 서로에게 장풍을 날리는 내공 겨루기가 아니다. 같은 길을 걷는 동료로서 김지운은 <복수는 나의 것>에서 남들이 못 보는 면을 샅샅이 뜯어본다. 때로 정말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우고 때로 아무도 눈치 못 채는 연출자의 진정한 성과를 추어올리면서 대화는 훌쩍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일단 글을 썼다 하면 기자, 평론가들이 펜을 꺾고 싶게 만드는 두 감독은 대담도 정말 멋지게 해치우려는 듯 보였다. 두 사람의 대화는 어떤 담화를 펼쳐야 근사하다고 소문날 것인가에 대한 은근한 탐색전으로 시작했다.

 

김지운: 요즘 뭐 하고 사는지.

 

박찬욱: 개봉 전 막바지 인터뷰하면서 한동안 접하지 못했던 책 읽고 영화 보고 산다. <복수는 나의 것>이 메가히트가 되면 인터뷰 요청이 다시 쇄도하겠지만. (웃음) 인터뷰까지는 참는데 사진 포즈 취하는 게 고역이다.

 

김지운: 모 잡지에 실린 박 감독 사진 보니까 전날 밤 술 많이 했는지 눈이, 거의 한번 빼서 술에다 담갔다 다시 끼운 안구 같더라.

 

박찬욱: 배우들과 매일같이 술 많이 했다. 인터뷰가 재미있으면 인터뷰어와도 좀 마시고. 요즘 본 영화 중에는 DVD로 본 <존 말코비치 되기>가 최고다. 실망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막히더라. 서플먼트는 또 어떻고. 조수석에 앉은 기자가 질문하며 캠코더로 찍고 감독이 운전하면서 대답하는데, 상투적인 일련의 질문에 줄곧 메슥거리는 표정을 짓더니 아예 차를 세우고 마구 토하는 게 아닌가! 기자들한테 들려주고 싶어서 연출한 조크겠지만.

 

김지운: 나도 얼마 전 잉마르 베리만과 그의 오랜 동료였던 요셉슨이라는 사람의 대담을 봤는데 어찌나 재밌던지. 압권은 ‘평론가 폭행사건’에 관한 수다였는데, 베리만의 평론가에 대한 증오심이 <복수는 나의 것> 수준이더라. 내가 폭력을 가했지만 언어폭력도 신체에 가해진 폭력 이상의 상처가 된다면서. “우발적이었나?” 물으니 “아니, 철저히 준비했다”고 하고 “고인이 됐지만 그놈은 정말 죽일 놈이었다”고 못 박았다. (웃음) 당시 평론가협회에서는 회의를 하고 난리였던 모양이다. 베리만은 82살, 요셉슨은 77살인데 그 연배의 두 대가가 만나서 죽음이나 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잠깐 하고 여자이야기만 30분 이상 낄낄거리면서 했다. 누군가 “두분이 만나면 자주 이러냐?”고 물으니까 “사실 그것밖에 할 게 없다. 우리 둘의 명랑함은 계속될 거다”고 말했다. 그 염세적인 ‘암울쟁이’가 말이다. 그 인터뷰를 보다 박 감독에 대해서도 묻고 싶은 질문이 떠올랐다. 잉마르 베리만이 아들한테 “내가 네게 나쁜 아버지라는 걸 인정한다”고 하니까 아들이 “나쁜 아버지조차 못 된다”고 빽 소리를 지르던데 당신은 좋은 아빠인가?

 

박찬욱: 많은 감독이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유지하지 못한다. 집에 오래 못 있고, 있어도 머리가 딴 데 가 있는 직업상 결함 탓이다. 그래서 “이건 집중력의 문제다” 생각하고 집에 있을 때만큼은 집중하자고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딸내미라(서우) 아빠를 따른다. 얼마 전엔 방학숙제한다고 해서 우리 둘이 조그만 동화를 하나 만들었다.

 

김지운: 박찬욱 감독 딸 서우는 내가 만나본 여자 중에 최고로 매력적이고 도도한 숙녀다. 그 카리스마는 실로 압도적이다. 영화야 물론 내가 한참 더 따라가야 하지만(박찬욱, 쿡 웃다), 무엇보다 부러웠던 건 영화 속에 아내와 딸을 향한 사랑이 보이는 지점이었다.

 

박찬욱: 서우는 자기 아빠가 감독이라는 사실, <공동경비구역 JSA > 감독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걸 무척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나 좌중의 누가 그 얘기를 꺼내면 그러지 말라고 아빠 싫어한다고 몸을 날려서 막곤 한다.

 

김지운: <복수는 나의 것>에 나오는 보배는 전형적이지 않으면서도 독특한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인물이다. 감독의 딸에 대한 감정이 들어간 부분일 거다.

 

박찬욱: 시나리오는 96년에 썼지만, 아빠가 된 뒤 만들기 잘 했다는 생각도 들더라. 특히 고만한 아이를 둔 내 또래의 아빠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신하균이 누나의 자살을 알게 될 때 보배가 <보노보노>를 보는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치마 들추는 장난하고 하균이 다리 포개면 보배가 올라타서 턱을 괴는 동작의 연출은 ‘애 아버지’가 만든 영화다운 순간이다. 내게 애가 없었다면 그저 건조하게 찍었겠지.

 

김지운: 6년 전 시나리오와 지금 영화가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박찬욱: 범죄를 부추기기만 하는 작은 역이었던 영미의 비중이 캐스팅 이후 야금야금 커졌다. 그건 전적으로 배두나 책임이다.

 

김지운: 책임이라니?

 

박찬욱: 귀여우니까. 돈도 많이 줬으니까 본전 생각도 나고. (웃음) 엔딩에 테러리스트가 등장하는 것도 뒤늦게 들어갔다. 그건 전적으로 봉준호 감독 책임이다. 고민하고 있는데 봉 감독이 나서서 “이렇게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그 술자리에서 송강호도 ‘전향’했다. 혹자는 남의 영화라서 그렇게 용감했을 거라고 하더라.

 

김지운: 어쨌거나 <복수는 나의 것>을 전작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휴머니즘과 웃음과 감동의 <…JSA >에서 180도 바뀌었다는 식으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특이한 행보 아닐까.

 

박찬욱: 뭐, <배트맨> 만들던 사람이 <에드 우드> 찍는 거나, <위험한 관계> 만든 감독이 <밴>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만든 거나, <크라잉 게임> 감독이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찍은 거나. 나는 날 작가로 분류하는 것이 적당치 않다고 인터뷰에서 말한다. 내 영화에 감독의 흔적이나 일관성이 없었으면 좋겠고 심지어 한 사람이 만든 영화 같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지운: 영화 안으로 들어가 보자면 현실적 소재, 사회적으로 예민한 주제를 다룰 때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은 점에서 영화의 장단점이 동시에 나온 것 같다. 그런 부정합이 박 감독이 원한 아우라였던 것도 같고. 이질적인 소재와 형식이 빚는 충돌 때문에 한번에 소화하기 힘들었다. 마틴 스코시즈는 미국 내 계급대결 구도와 베트남전 같은 사회적 이슈를 다룬 <택시 드라이버>를 몽환적으로 풀어서 잊지 못할 영화로 만들었는데, <복수는 나의 것> 역시 그런 종류의 강렬함이 있다. 이런 소재를 현실적 시각으로 풀 때 더 섬뜩할까, 스코시즈나 린치처럼 부조리한 악몽으로 풀었을 때 더 섬뜩할 것인가. 대중적으로는 전자가 답일 테고 소수 마니아는 후자에 열광할 것 같은데 <복수…>의 개봉결과가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복수…>를 박 감독의 상업적인 실험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박찬욱: 개봉을 앞두고 불안, 초조, 긴장…, 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덤덤하지도 않다. 지금 심정은 호기심에 가깝다. 이런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일반 관객이 별점 주는 사이트에 갔더니 <복수…>는 다섯개 아니면 반개였다. 예전과 달리 리뷰, 홈페이지 게시판을 다 챙겨본다. 욕은 해도 좋은데 자꾸 전작과 비교해 배반이네 발전이네 반전이네 하는 건 불만이다. 다만 스타들이 이런 영화에 나와준 것은 내 영화가 아니라도 고무적인 경향이라고 생각한다. 이 수준의 영화를 다시 못 만들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갖는 것도 이런 배우들이 이런 영화에 다시 모이기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계급대립의 관점에서 보는 평도 재밌게 봤다. 그런 의도도 명백히 있었고 운명론적 입장도 들어가 있다. 무정부주의 유물론자 테러리스트들이 신의 대리인 역할을 자임하는 설정이 보여주듯 나는 순전히 모순의 결합으로만 이루어진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김지운: 그와 관련해 나는 <복수…>의 주요 캐릭터들이 우리나라에서 듣도 보도 생각도 못 했던, 생각하더라도 감히 실현시킬 수 없었던, 말하자면 어두운 열정의 소유자라는 점이 맘에 들었다. 그들은 온전한 삶의 대응방식을 갖고 있지 않다. 극단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마니아들에게 천진한 구석이 있듯 정신적 순결성, 고결함이 훼손됐을 때 극단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박찬욱: 영미를 비롯해 그 인물들은 몹시 위험한 존재들이지만 멸시하거나 무시하거나 거부할 수는 없다.

 

김지운: 그러니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에서 아주 비현실적인 인물들이 움직이는 결과가 된다. <복수…>에서 모든 리얼리티는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평범한 사람인 나도 기존 질서를 지키며 살려고 하면서도 무서우리만치 적개심에 불타고 상상의 낭떠러지로 치달을 때가 많다. 다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지만.

 

박찬욱: 운전중에 무섭다는 소리는 들었다.

 

김지운: 흠. 말하자면 삶에 서투른 거다. 배두나의 혁명적 무정부주의자 동맹도 순진하고, 송강호도 신하균도 누구 하나 순리대로 사는 사람이 없다. 그런 사람들은 분명 이 세상 속에 같이 살고 있다. 불가해하고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또 하나의 축이 굴러가고 있고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재수가 없어서, 어떤 계기 때문에 그 금에 발이 걸린다. 예전에 교도소의 조직폭력배 순화교육하는 스님을 따라간 적이 있는데 중간보스와 화양리를 걷는 동안 15미터에 한명씩 200~300미터에 걸쳐 인사를 하더라. 어떤 끈을 잡으니까 안 보이는 또 하나의 세상이 있는 섬찍한 느낌을 안 그때부터 부조리도 리얼리티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박찬욱: 실은 그런 것을 너무 의식해 데이비드 린치처럼 아예 다른 세계로 영화를 끌고 들어가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김지운: 그래도 <복수…>에는 와이드를 쓴 양식적인 앵글이나 기괴한 조형감, 인물을 포진시키는 방법, 양식화된 캐릭터 설정 등등 현실을 악몽으로 치환시키는 일종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이 있다.

 

박찬욱: 사실 광각렌즈도 너무 감독을 내세우는 것 같아 피하려 했는데, 떨어져 있는 인물을 잡기 위해서는 심도가 필요한 나머지 불가피한 경우가 생기더라. 심도는 확보되지만 양식화된 느낌, 과장된 거리감이 생기니 고민이었다. 그런데 또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그런 양식화된 화면이 싫지 않은 거라. 할 수 없다는 식으로 가면서 내심 좋아했던 거겠지.

 

김지운: 장면묘사나 전개가 현실의 숨막히는 압박감을 전하면서도 매순간 이것은 어쨌든 유머라는 점을 자꾸 노출시키는 부분이 있었다. 이를테면 밖에서는 방이 나뉘어져 있는데 카메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벽과 벽 사이를 이동한다거나. 알게 모르게 감독의 존재와 의도를 상기시키는 터치들이 보였다.

 

박찬욱: 스타일을 추구한 건 아니지만 잘 구도 잡힌 단정하고 엄숙한 화면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영화에서 어떤 감독은 흐트러지고 꾸밈없는 앵글을 선호할 수도 있겠고 미학적으로 미결된 그림이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랬고. 그러나 결국 지금처럼 해야 관객이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김지운: 그점이 열광해야 할 지점인 것도 같고 말이 많아지는 지점이라는 생각도 든다. 비교는 안 되지만 <조용한 가족> 할 때 고호경이 세트에 들어가면 벽이 보이고 다시 후진하면 벽이 없어지는 장면이 있었다. 다들 이해 못 하는 중에 정광석 촬영기사님만 그러자고 해서 기뻐했는데 나중에 “뭐, 편집에서 자를 것도 있고 일단 다 찍어둬!” 하시더라. (웃음) 어쨌든 나는 폭력의 잔혹성, 박진감과 더불어 끊임없이 유머와 픽션의 징표를 노출하는, 그래서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라고 단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복수…>의 장악력이 좋았다.

 

박찬욱: 그게 바로 인터뷰의 곤란함이다. 예컨대 “소외효과”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치자. 나는 한 가닥의 실로 꿰어지는 전략이 싫고 설사 있다 해도 들키는 게 질색이다. 그런데 질문이 나오면 자꾸 한 가지로 대답해야 되니 멋이 없어진다. 스즈키 세이준 감독처럼 대응하면 되지만, 보통사람이 그게 되나. 자꾸 성의있게 대답하고 싶어지는 걸 어떡하나.

 

김지운: 나도 감독 입장이 돼봐서 아는데 (웃음) 자기조차 궁금한 지점이 있다. 모르고 할 수도 있고 어떤 의도도 없이 할 수도 있고, 마음속으로 이 부분에서 이런 이야기가 거론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지만 노출할 수는 없는 게 있다. 평론가들이 감독이 말하기 힘든 잠재의식을 짚어줘야 하는데. 표면에 드러난 걸 말하는 거야 누가 못하나.

 

박찬욱:그렇지. 내 입으로는 말 못 하지. 최근 누군가 <복수…>가 말이 없어진 이유는 내가 <…JSA > 이후 너무 많은 인터뷰를 해서가 아닌가라고 써서 철렁한 경험은 있다.

 

김지운: 그런데 영화를 만들면서 절제의 과잉이 있었다는 생각은 없는지? 오버액션만 과잉은 아니니까. 분명 감독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권을 잡았다는 느낌은 들지만, 나 역시 현장에서 절제하는 맛이 너무 좋은 나머지 풀지 못하고 갈 때가 있다.

 

박찬욱: 촬영이 끝난 시점에서는 오히려 “미니멀하게 가려 했는데 너무 감상적이 된 게 아닌가, 더 눌렀어야 하는데”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다 편집으로 솎아내고 나니까 충분히 건조했다. 그러니까 크게 보면 지금 김 감독이 말한 것과는 반대다. 성격 탓인지 확 눌러간 테이크만 고르게 되더라. 예컨대 송강호가 마침내 신하균을 잡아 기절시켜 때리는 신에는 비통한 심정이 정점에 달해 거의 발광하고 엄청난 에너지를 토해내는 테이크도 있었다. 누구나 그것이 오케이라고 했다. 나와 송강호만 빼고. 물론 너무 건조한 것도 폼이니까 경계해야지 하는 생각은 있었다.

 

김지운: 여담이지만 <복수…>에 잘 들리지도 않는 소리 녹음하려고 1시간 반 차 타고 양수리 가서 2분 녹음하고 다시 1시간 반 차 타고 집에 왔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다음은 김지운 감독의 신작 <정말로 이상하다>의 주제곡 <정말로 이상하다>입니다.”라는 말 녹음하겠다고.

 

박찬욱: (미안한 듯) 믹싱할 때는 들리게 했는데 극장이 이상해서 그래.

 

김지운: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연기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영화에서는 표현된 적 없는 인물의 기이한 행태가 기주봉 선배를 비롯한 76극단 멤버들의 조연을 중심으로 많이 보인다. <어둠의 자식들> 끝내고 영화를 안 했던 기주봉 형을 <조용한 가족>에 불렀는데 처음부터 다른 배우와 달랐다. 세트장에 나타나자마자 “내가 나그네 입장에서 저 밑에서부터 그냥 올라와봤어.” 하는데, 예전 76극단 선배들과 의사소통하던 특이한 방식이 되살아나면서, 이런 형한테 내가 연기주문을 한다는 것이 무참했다. 전혀 통제가 안 되는 분들이다. 야외촬영장에 데려다놓으면 들로 산으로 꽃이나 꺾으러 다닐 사람들한테 무슨…. (웃음)

 

박찬욱: 76극단원들은 첫 테이크 돌아가면서부터 전 스탭이 긴장해야 한다. 언제 최고가 나올지 모르고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으니까. <복수…>에서 테러리스트로 분한 오광록이 뒤에서 송강호를 찌르는 연기는, 이런 말 미안하지만 전 출연진을 통틀어 최고의 순간이다.

 

김지운: 아마 이번 영화에서 송강호 연기가 잘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혼동되는 관객이 많을 거다. <복수…>에서 내가 생각하는 송강호 연기의 백미는 이거다. 송강호가 형사와 봉고차 안에서 온갖 비장감에 충만한 상태로 ‘아우라’를 관장하며 이야기하는 장면 있지 않나. 그런데 이 형사가 차에서 막 나가 전화를 받으면서 김을 빼는 거다. 그때 송강호가 “아이, 씨발” 하면서 걸어나오는 연기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거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송강호가 고양된 상태로 형사와 이야기하고 있는데 형사가 분위기를 깰 때 그의 판타지는 무너진 거다.

 

박찬욱: 자세가 안 나오는 거지.

 

김지운: 폼은 잡는데 밋밋하다는 느낌이 관객에게 가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송강호는 속으로 온 우주의 절망을 다 안고 가는 건데.

 

박찬욱: 알고보면 자세가 망가진 사람의 좌절인 거지. 난 송강호가 최 반장을 매수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여기서 송강호는 딸의 유령을 만난 직후다. 그는 뭔가 달라진 거듭난 사람이라는 느낌, 정말 밥맛 없는 부자라는 느낌을 풍긴다. 소파에 눕다시피 앉아서 헛기침하는데 그 부분이 정말 송강호답다.

 

김지운: 배두나를 린치하고 숨을 고르면서 머리 넘기는 장면을 보자. 실제로 아마 그 상황과 입장에서는 그 동작 외에 할 일이 없을 것이다. 송강호 연기는 사실 그런 각도에서 논의돼야 한다. 보통의 영화에서는 생략되는 시간의 리얼리티를 아무렇지도 않게 건조하게 표현하는 능력 말이다. 신하균, 배두나, 오광록, 기주봉 등의 연기는 짐승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 생짜 에너지를 느꼈던 영화는 드물었다.

 

박찬욱: 나는 아무래도 “이 영화를 이런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가 아니라 “이 인물들이 그랬을 것 같습니다”에 가까운 감독인 것 같다. 예컨대 송강호가 테러리스트를 만나기 전에 어떤 생각이었을까. 나는 그가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였고 그 과정에도 많은 번뇌가 있었지만 일단 끝난 이상 자수성가한 자본가로 다시 사업을 시작해야지 하는 마음이었을 것 같다.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잘못 걸렸다고 끊는 것도 그런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 새출발의 순간에 결국 돌연히 ‘끝’이 찾아오니 억울해서 웅얼거리고 갸웃거린 것이 아닐까.

 

김지운: 하나의 공간에 신하균의 죽은 누나가 묻히고 송강호의 딸이 죽고 결국 그 자리에서 신하균도 송강호도 죽는다. 그 공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나.

 

박찬욱: 그저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반대의 지점에서 사건이 일어나게 하고 싶었다.

 

김지운: 그런데 문제의 강변은 극중 인물의 비밀이 집중되어 있으면서도 오픈된 장소다.

 

박찬욱: 대낮의 야외공간, 적나라하고 가혹한 일광이 꼭 필요했다.

 

김지운: 어려서 산과 계곡을 많이 쏘다녔는데 은폐돼 있고 비밀스럽고 음습한 공간에서 어두운 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탁 터진 공간에서 오히려 다 벗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툭 터진 장소에 사람을 끌고와 죽이는 것이 어둠 속의 살인보다 훨씬 안심이 될 거라는 생각도 했다.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되는 욕망의 발현이랄까.

 

박찬욱: 영화 속 죽음의 강가는 한국의 소박하고 평범한 산하이며 신하균 남매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런 자연에는 어머니 품 같고 어쩌고 하는 상투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자연이라는 것은 가장 가혹한 존재이기도 하다. 완전노출 상태의 적나라한 가혹함은 이 영화에서 중요한 포인트였다.

 

김지운: <조용한 가족> 시나리오 원본에는, 가족들이 시체를 푸대에 넣어 묻는데 노인 한 사람이 계속 산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설정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주 은밀한 행위를 그 노인은 멀쩡히 내려다보고 있는 거다.

 

박찬욱: 여기선 신하균이 그런 존재다. 송강호가 누나의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에도 둑 위로 트럭이 한대 지나간다. 그 설정을 고집한 것은 이곳이 오지도 아니고 누구나 지나다닐 수 있는 곳이란 느낌을 주고 싶어서였다. 어릴 적 시골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 어른들은 어린 나를 겁주려했는지 농촌에는 알고보면 밭고랑 같은 곳에 시체가 많이 묻혀 있다고, 사람이 드문드문 사는 이런 곳에서는 죽여서 가까운 데 묻어버리면 그만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김지운: 캐릭터에서 재미있는 점은 풍부한 상상력의 소유자들이 저렇게 참담한 사건을 맞이하면 저런 식으로 나가겠구나 싶었던 거다. 거울 앞에서 혼자 팔굽혀펴기를 하는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 니로처럼. 자신이 사회에서 이질적 존재로 느껴질 때의 쾌감에서 나오는 자가발전 같은 게 분명히 있다. 배두나가 도심에서 미제축출을 외칠 때, 신하균이 장기밀매단에 복수를 하러 갈 때 그들은 영혼이 구제받는 순간이라고 느낄 거다.

 

박찬욱: 송강호가 신하균을 잡았을 때도 그렇다. 신하균을 방 한가운데로 끌어놓고 문을 닿고 숨을 고르고 돌아서서 내려다볼 때, 그는 너무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선물 받았을 때와 같은- 장난감으로 생각한다는 뜻이 아니라- 당혹감을 느끼는 거다.

 

김지운: 이 소재에 적합한 더 사실적이거나 안정적인 방식이 있었을 것도 같다. 그랬으면 영화가 훨씬 더 높이 평가받고 대중적인 장도 더 크게 확보했을지 모른다는 짐작이 든다.

 

박찬욱: 그러면 더 나쁜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이 됐을 거다. 아마도 ‘정글’ 같은 느낌이 더 살았을 것이고. 그러나 일부러 그런 스타일을 택했다면 내 정체성을 배반하는 일일 것 같았다. 형식주의자 같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스타일이 ‘출구없음’의 느낌을 더 강하게 전할 거라고 판단했다.

 

김지운: 하긴 그런 길을 택했다면 박찬욱 감독 영화는 다 봤다는 느낌이었을 거다.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지 않았을 것이고.

 

박찬욱: 아, 감독은 부디 잊어달라니까. 난 훗날 영화사가가 내 영화의 일관성을 논하는 것보다, 이러이러한 영화들을 보다보니, 공통점은 감독이 같은 사람이라는 점뿐이더라고 말하기를 바란다.

 

김지운: 우리 영화산업의 인프라가 4, 5년 전보다 비대해지고 매체도 많아지면서 감독들도 모르게 덩달아 조급해지는 경향이 있다. 뭐든 빨리 표현하고 노출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대중예술이건 고급예술이건 간에, 인생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새 스타일을 찾아내기도 하고 끝없이 모색해야 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나 또한 영화를 보면서 신속히 결론을 내고 정리하고 싶은 욕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욕구를 거역하게 해주고 반성하게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복수…>를 보는 일은 즐거웠다.

 

고전영화의 발견 201101

2011. 4. 18. 23:49 Film Diary/Classic movies

생각해보면 전파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영화 프로그램은 꽤 많은 편이다.  그러하기에 수적인 측면에선 별다른 불만은 없다. 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부류의 방송들이 창의적 기획과 팬들과의 소통에 있어 여전히 답보상태에 빠져있단게 아쉬울 뿐이다. 방송의 컨텐츠와 실용성에 있어 얼마만큼의 노력이 투자되며 이 기획들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수용자들에게 올바른 길잡이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영화팬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가이드가 몇이나 될지 생각해보면, 우열을 가리기전에 우리는 다섯손가락을 채 굽히지 못할 것이다. TV속 영화소개 프로그램들은 날이 갈 수록 영화팬들을 밀어낸다. 오히려 그들의 타겟은 영화에 취미 이하의 흥미를 보이는, 그렇다고 영화를 증오하지도 않는 대다수의 관객들인것 같다. 다행히 라디오란 매체는 그 속성만큼이나 속깊은 마음으로 영화팬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 일상의 어긋난 취향이 교합되는 공간으로서의 매력이 존재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위에 언급한 문제제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영화음악이란 주제를 걸고 감상적인 위안과 피상적인 정보를 주고받을 뿐이지, 깊이와 열정에 있어선 아쉬움이 남는게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지난 1월 6일 부터 이주연의 영화음악(MBC fm 4u 91.9)을 통해 방송되고 있는 김홍준 교수의 <고전영화의 발견>은 보석처럼 빛나는 기획이라 생각한다. 통칭 이영음으로 표현되는 이 새벽 영화음악 방송은 영화의 거죽만 둘러쓴 여타의 심심한 프로들에 비해 꽤 알찬 기획을 선보이며 기다림의 노고를 보상해주고 있다. <서편제>의 조감독 출신이자 <장미빛 인생>의 감독, 영화계 이곳 저곳에서 각종 위원장과 프로그래머를 역임한 이이자 현재 한예종의 교수인 김홍준. 앞에 언급한 수 많은 수식어보다 더욱 중요한건 바로,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영화광. 이거다. 김홍준 교수는 매주 목요일 새벽이면 자신의 지식과 애정을 가득담아 <고전영화의 발견>의 장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곳에서 매주 1편의 영화를 성의있게 소개하며, 감독의 최소한의 족적과 본 작품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30분 속에 녹여내려 한다. 고전이란 영화의 진화를 가능케 한 영화사의 전범이자 어쩌면 상업으로만 남을 수 있던 영화란 매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힘겹게 끌어들인 역사의 흔적이다. 이런 거대한 작품들을 30분의 순간에 온전히 담는단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는 듣는이로 하여금 감사한 마음이 일렁일만한 수준의 정성으로서 그 한계 메우려한다.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자리가 아니기에 김교수는 사전적 통상적 범위를 넘어 흥미의 끈을 놓치지 않을 수준에서 영화의 목록을 채워가고 있다. 초창기부터 심하면 90년대 까지의 영화를 고전으로 규정하고 이곳에서 소개하겠다는 약속은 고전영화의 소중함과 관람의 필요성을 설득시키기 위한 고민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소수를 위한 탐구보단 다수에게 고전의 가치를 알리자하는 본 프로그램의 취지와 노력은 적당한 선에서 알찬 정보를 안겨주고 있다. 다소 지나치게 유명한 작품 위주로 목록이 채워져가는 경향도 있지만, 지독한 영화광의 차고 넘치는 이야기를 듣고있자면 이미 영화를 본 이들이라도 마치 DVD 의 서플을 귀로 감상하고 있는듯한 묘한 2차적 즐거움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본 카테고리를 통해 매주 방송되고 있는 <고전영화의 발견>을 월 단위로 묶어 포스팅을 할 생각이다. 라디오란 매체의 접근성과 더욱 열악한 다시듣기의 불편함이 맘에 걸려 말로만 추천하기 보단 직접 눈앞에 가져다줄 생각이다. 적당한 경계에서 의미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고전영화의 발견>을 통해 발견혹은 회상을 경험해보길 바란다.   

2001년 씨네 21 <김홍준 - 정성일 대담> 을 통해 김홍준 교수는 현존 최고의 감독을 묻는 질문에 존 포드, 오스 야스지로, 루이스 브뉘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로베르 브레송 중 한 사람이라도 살아있다면  주저없이 꼽겠지만 거장들의 세기가 저문 마당에 그 답은 쉽게 나올 수 없을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가 생각하는 고전영화는 어떤 의미일지, 한번 들어보도록 하자.



20110106 MODERN TIMES 



 



20110113 ONCE UPON A TIME IN AMERICA - THE WEST







20110120 BEAUTY AND THE BEAST








20110127 BARRY LYNDON







본 영상은 <고전영화의 발견> 3번째 시간에 추천한 장 콕토 감독의 1946년작 <미녀와 야수> 의 한 장면입니다. 화면이 가장 아름답게 담긴 흑백영화 중 한편이라는 명성이 괜한 말은 아닌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고나니 따로 간직하고픈 장면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자막을 붙여 함께 올려봅니다.   



김홍준 교수님께서는 이영음 게시판을 통해 청취자들의 질문과 후기에 친절하게 답변을 달아주시고 계십니다.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영화를 보고난 후 생긴 궁금증이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곳 <고전영화의 발견> 게시판에 의견을 남기시면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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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의 영화 속 Great Musical Moment 13

2011. 4. 17. 14:01 Film Diary/Column




사랑스런 필모그래피의 소유자,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독특한 감성과 캐릭터 만큼이나 적재적소에 인상깊게 파고드는 선곡으로도 유명하다. Paste 매거진에서 그의 영화속 위대한 뮤지컬 모멘트 13을 선정했다. 잡지사의 초이스란게 실상 소수의 취향이긴 하지만 웨스 앤더슨의 팬이라면 꽤 흥미롭게 추억해볼만한 리스트가 아닐지. 
 
 
13. Jarvis Cocker, “Petey’s Song” (The Fantastic Mr. Fox)




12. The Ramones, “Judy Is A Punk” (The Royal Tenenbaums)



11. The Rolling Stones, “I Am Waiting” (Rushmore)




10. Sigur Ros, “Staralfur” (The Life Aquatic with Steve Zissou)



9. The Kinks, “This Time Tomorrow” (The Darjeeling Limited)





8. Peter Sarstedt, “Where Do You Go to My Lovely” (Hotel Chevalier)




7. The Rolling Stones, “Ruby Tuesday” (The Royal Tenenbaums)





6. Iggy & The Stooges, “Search and Destroy” (The Life Aquatic with Steve Zissou)





5. Seu Jorge, “Life On Mars” (The Life Aquatic with Steve Zissou)





4. The Who, “A Quick One While He’s Away” (Rushmore)





3. Elliott Smith, “Needle in the Hay” (The Royal Tenenbaums)






2. Nico, “These Days” (The Royal Tenenbaums)




1. The Kinks, “Strangers” (The Darjeeling Limited)

2011 기억을 위한 기록

2011. 4. 17. 13:13 Film Diary/Column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는 질문. 몇편의 영화를 보았는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가. 제 1 의 취미로 삼고있음에도 영화에 대한 회상은 그저 흐릿하게나마 그려질뿐 명확한 답이 나오질 않는다. 몇번의 시도는 해봤으나 대부분 거창하고 부담스런 형식으로 인해 꾸준한 기록이 힘들었다. 앞으로는 단 한장의 사진이라도 망각전에 전시하려 한다. 가능하다면 짧게나마 기록을 위한 감상을 끄적이고 싶다. 아직은 독창적이고 존재가치가 있는 객으로서의 분석은 힘들것 같다. 독서와 경험의 폭을 넓힌 후 작품과 감독에게 상응할 수 있는 수용자가 되는 날, 나름대로 날카롭고 누군가에겐 의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전까지는 애정을 위한 기억 유지, 그야말로 그 기억을 위한 기록을 해야겠다. 사실 몇편의 영화에 대해서는 짧게나마 존재가치와 우수함을 적어놓긴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 다시 들춰보니 여전히 창피하고 무디다. 많이 읽고 열심히 생각해서 몇년 후 이 카테고리엔 꽤 쓸만한 텍스트들이 들어찼으면 좋겠다. 지금부터 간간이 작품에 대한 최소감상을 끄적이고자 한다. 비평이나 리뷰가 아니라, 최소한 문뜩 제목이 귓가를 스칠때 감상 순간에 대한 복기가 가능할 정도의 되뇌임을 기록해야겠다.  (배경음악은 애니메이션 illusionist ost 중에서 Chanson illusionist)
















































































































































































































































































































































































































































































































































































아네스의 노래

2011. 4. 7. 18:52 Film Diary/It track


자주 돌려보곤 합니다. <시>의 마지막을 자주 보고 듣곤 합니다. 처음 극장에서 이 장면을 마주했을때는 마음의 일렁임이 심해 문자를 삼키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어느순간부터 영상을 내리고 소리만을 듣게되었습니다.  눈을감고 낭독을 경청하듯 미자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것이 더 좋아졌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시> 란 영화도 1살이 됩니다. 잔잔한 충격과도 같았던 아네스의 노래를 오랜만에 들어보기위해 소리만을 빌려와봤습니다. 미자와 소녀의 낭독은 아마 지난해에 제가 만난 그 어떤 노랫말보다 더 아름다운 사운드트랙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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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 <시> 관련 인터뷰 중 - 영화란...

2011. 4. 7. 17:53 Film Diary/Interview



2010년 6월 3,4 양일간 박혜진이 만난 사람들에 출연하신 이창동 감독님의 인터뷰중 일부입니다. <시>의 메세지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된 이 짧은 대화는 비단 <시>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진정한 씨네아스트인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에 대한 시각과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것 같아 올려봅니다. 예술과 오락의 경계에서 끈임없이 흔들리고 고뇌하는 영화란 존재. 그것을 만드는 이의 고민과 수용하는 이의 선택에 있어 꽤나 큰 조언이 될것같습니다. 영화를 감상한 후 언제나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마음 깊숙한 곳에 아로 새겨주는 그의 영화와 많이 닮아있습니다.


타이틀 디자인 변천사 Art of the title

2011. 3. 19. 03:22 Film Diary/Link





타이틀 디자인의 변천사를 간략히 정리해본 영상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인톨러런스> 부터 황홀한 <엔터 더 보이드> 까지. 영화의 발전과 함께 변화해온 타이틀 디자인의 흐름을 짤막히 이야기 한다. 사실 그렇게 대단한 영상은 아니다. 단지 이 영상과 함께 소개하고픈 싸이트가 있어서 올려본다. 영상의 출처이기도 한 이 곳은 타이틀 디자인과 타이틀 시퀀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곳이다. 대부분의 타이틀이 도입부에 걸려있기에 대부분 타이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영화의 오프닝을 보여주고 이야기 하는 곳이다. 꽤나 깔끔하게 엄선된 장소이기에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본다. Link - Art of the title  







[기대작] SUBMARINE

2011. 3. 7. 14:43 Film Diary/Preview



작품을 기다리고 발견하는 일에 있어서 만큼은 감독과 배우의 명성에 기대지 않는 타입이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시장이 알아서 믿음직스런 제품들을 주선해 줄것이며, 무엇보다 모두가 목메고 있는 프로젝트에 마중나가는 일만큼 뻔하고 권태로운 일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연유로 거장과 명배우들의 개봉대기작들을 눈앞에서 치우다보니 반짝 반짝 빛나는 영화 한편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작품명은 <Submarine>. 지난번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소식을 접한 영화다. 

근거없는 기대감이었지만 한장의 스틸이 품고 있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바로 아래에 위치한 저 이미지. 생판 처음보는 배우들이 손을 맞잡고 정면을 응시하는 스틸 한장에서 강렬한 끌림을 느꼇다. 결과적으론 트레일러도 찾아보고 영화제 이후 올라온 숱한 호평을 접한 후에 이렇게 포스팅을 하는 거지만 만약 작품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다면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 추천사를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나만의 비밀스런 감상리스트에는 분명 이름을 올렸을것이다. 한컷의 매혹만으로 말이다. 




트레일러를 함께 올릴 것이기에, 내용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삼가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작품들은 사건이 아니라 인물을 쫓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최소한의 상황은 이렇다. 15세 소년 Oliver tate, 이 녀석은 지금 두가지 문제앞에 당면해 있다. 첫째는 역시나 여자문제다. 다가오는 생일 전까지 총각딱지를 떼고 싶어한다. 그리고 마침 그녀석 앞에는 어김없이 묘한 소녀가 한명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또한가지 문제는 집구석에 붙어있다. 엄마가 댄스강사에게 눈이 멀어 아버지를 버리고 집을 나가려 한다. 아, 15세 소년이 직면한 이 사소하고도 거창한 질문들. 영화는 이런 상황들을 재빠르고 재치있는 연출로서 풀어나간다고 한다.  

영화제를 찾은 이들이 누군가에게 이 영화를 추천할 때면 웨스 앤더슨의 이름을 함께 언급했다고 한다. <Submarine>은 영국판 <Rush more>라는 거부가 불가한 치명적인 비유. 많은 이들이 이에 어느정도의 긍정은 보였다고 한다. 물론 작품을 접하기 전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지만, 남의 입을 빌려보자면 <Rush more>에 대한 비유는 어느정도만 일리가 있었다고 한다. 영화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이도 있지만 꽤 많은 이들은 종반부에 들어서며 어두운 심연으로 꺽여 들어가는 분위기에 불만을 표하는 이들도 꽤 있다고 한다. 


 

감독과 원작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자 한다. 일단 저 익숙한 얼굴의 영국청년이 <Submarine>을 각색하고 연출한 리차드 아요아데이다. 그는 영국시트콤 <IT crowd>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다. 귀여운 찌질이 Moss 역을 맡았던 청년의 작품이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악틱 몽키즈나 뱀파이어 위켄드 등의 뮤직비디오도 연출한 이력이 있다고 한다. 신기할따름 일뿐 별다른 생각은 없다. 영화로서는 이 작품이 데뷔이니 일단 평가는 나중에 해야겠다. 그리고 Joe dunthome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도 카메오로써 자리를 함께 했다고 한다. 2008년에 발간된 소설인데 이번 개봉에 맞춰 영화의 커버를 배경으로 새로 출간된 책도 있는것 같으니 나중에 영화가 마음에 들면 꼭 사둘 생각이다. 





스틸 다음으로 나를 매혹시킨건 이 멋들어진 트레일러다. 스틸에서 예상한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줬다. 소년의 평범한듯 어긋난 일상의 이야기. 영국의 짙은 배경들. 개성있는 캐릭터들. 이거 꽤나 기대된다. 개봉은 영국기준으로 3월 18일이다. 영화제에서 상영됐을뿐 아직 자국 미개봉작이다. 한국에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도저히 아니다 싶으면 집구석에서라도 얼른 보고싶다. 어쩌면 이미 내게 큰 기쁨을 준 작품일 수도 있다. 기다리고 찾아보고 설레는 마음만으로도 꽤 만족스럽다. 영화까지 재미있다면, 생각만으로도 짜릿하다. 


트레일러에 사용된 음악은 Jacques Brel 의 57년 앨범에 있는 <Quand on n'a que l'amour>라고 한다.


IMDB (174 Vote) - 7.9 

파수꾼을 지지합니다.

2011. 3. 5. 21:18 Film Diary/Review




지난번 영화제를 통해 감상한 후 대략 한달만에 <파수꾼>을 다시봤습니다. 3월 3일은 개봉일이였기에 감독님과 배우분들이 모두 함께한 자리에서 GV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동진 평론가의 입을 빌리자면 관성적으로 영화를 봐오던 자신에게 정신을 번뜩 들게한 작품이라 칭했습니다. 그러면서 소년성에 대한 이야기를 덫붙였습니다. 그간의 한국영화들이 남고생의 이미지를 스테레오 타입속에 가둬  소년성의 착취와 나태함을 반복해왔다면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은 대한민국의 남고생으로서의 소년성을 정확하고 깊이있는 시선으로서 포착해냈다는 것입니다. 바로 소년성에 대한 진솔한 직시가 이 영화의 첫번째 장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이 작품이 한 시절의 순간적인 사건으로서 기억되는건 조금 억울한 일인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 인간관계 사이의 희미한 안개와 모호한 경계를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독역시 인터뷰를 통해 배경설명의 최소화를 위해 그들에게 교복을 입혔다고 언급했습니다. 소년성에 대한 뛰어난 고찰이 눈에 띄지만 사실은 학창시절이나 사회인으로서나 별다른 변혁이 없는 한국사회의 외롭고 애같은 우리 모두들에게 우정과 관계에 대해 작지만 날카로운 메스를 가져대는 것입니다.  

막상 개봉을 하니 영화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습니다. 5000만원의 예산으로 미묘한 관계와 사소한 갈등을 쫓아 굴레를 탐구하는 이 작품은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영화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뛰어난 기술적 성과도 놀라운 이야기의 발견도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친구의 관계속에서 2시간을 팽팽히 끌어가는 윤성현 감독 특유의 탁월한 화법을 발견했습니다. 깊이가 상당한 작품입니다. 감히 작품성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준은 아니지만, 소집단 내에서 피고지는 갈등의 골을 이만큼 섬세하고 짜임새있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건 진실된 인물에게 살아있는 대사를 부여한 작품은 이 영화가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보통의 존재를 내세우지만, 그 어느 영화보다 깊이있게 관계의 미묘한 떨림을 포착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기태라는 소년의 자살과 함께 시작됩니다. 기태의 아버지는 아들이 아닌 학생으로서의 기태를 조심스럽게 추적합니다. 그리고 주변부에 흩어진 갈등의 조각들을 하나둘씩 주어가며 평생을 함께할 물음표를 조금씩 펴가려 합니다. 기태, 백희, 동윤. 세명의 친구는 우정과 오해 사이에서 서로를 밀치고 잡아 당깁니다. 그렇게 흘러가는 2시간. <파수꾼>은 기태의 자살 이면에 존재하는 가장 보통의 존재를 발견합니다. 

인디와 상업을 구분짓는건 괜한 짓인것 같습니다. 형편없는 나태함과 흘러넘치는 자의식으로 완성된 상업영화도 수두룩한 요즘입니다. 우리모두가 한번쯤은 겪어보거나 몇번쯤은 지켜봤을 우정에 관한 희미한 질문을 담은 <파수꾼>은 정직한 연출과 진정성있는 연기를 통해 대중화법에 익숙해진 일반 관객들에게도 씁쓸(하지만 잊고 살아선 안될)한 향수와 영화적 재미를 동시에 가져다줄 수 있는 수작입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흔들리는 이미지를 선사합니다. 인물을 담은 모든 장면이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첫째 이유는 인물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동행이거나 아직은 경험이 부족한 신인 연기자들에게 가장 자유롭고 즉흥적인 연기가 가능하도록 배려한 감독의 과감한 선택같았습니다. 이에 관한 질물을 하고 싶었지만, 촉박한 시간탓에 혼자만의 추측으로 남기게 되었지만, 인터뷰를 읽어보고 GV의 내용을 경청해 보니 아마도 그 이유에서 윤성현 감독은 인물의 감정을 쫓아 프레임을 움직인것 같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영화를 추천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어느 책을 통해 예술의 투명성에 관한 짧은 생각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현미경을 들이댄 분석과 비평보다는 삶의 양식과 행복을 위한, 응시 자체로서의 감동에 귀기울이게 됐습니다. 그래서 위의 글들은 별다른 영화적 분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추억속 친구들의 사소한 단면과 희미한 성향을 버무린 우리네 관계와 우정을 떠올려보고 싶으신 분들은 한번쯤 시간내어 감상하시는 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두번째 감상이 더욱 인상적이었지만, 차마 그렇게까지는 추천하지 못하겠습니다. 

영화의 문을 열어준 박정민씨. 모두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완성시켜준 이제훈씨. 결국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는 서준영씨. 모두가 훌륭한 연기를 펼칩니다. 그야말로 발견의 장입니다. 그중에서도 이제훈씨의 연기는 분명한 발견입니다. 모두가 기억하고 기대해야할 확실한 발견입니다. 아직은 낯설지만 곧 익숙해질 이름입니다. 좋은 영화를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파수꾼>은 2011년 가장 반가운 한국영화였습니다. 







김영진의 러프컷 모음

2011. 1. 16. 19:49 Film Diary/Link



아쉬움 하나. 08년의 어느 여름, 평론가 김영진씨는 필름 2.0의 고정칼럼인 <러프 컷>을 일시정지 시킵니다. 그날의 칼럼인 [작별의 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평론을 쓰는 것을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겠지만 주간 단위로 뭔가 할 말을 찾아내야 하는 이 작업 리듬에 지쳤고 신이 나지 않는다. 따라서 잠시 중단하고자 한다. 명시적으로 일주일마다 한 번씩 글을 쓰겠노라고 천명한 고정 칼럼의 명분에 스스로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 주에도 글을 쓸 수 있겠지만 정기적으로는 쓰지 않으려고 한다. ' 청천벽력 까지는 아니여도 꽤 많은 영화팬들로 부터 탄식 정도는 받아낼 수 있을 정도의 이별이였습니다. 아쉬운 이별 말이죠. 그만큼 그의 칼럼은 훌륭했으니까요. 

 저의 경우는 이랬습니다. 일반 관객과 씨네필의 중간지대 쯤 위치하는 덜떨어진 영상중독자 혹은 대책없는 이야기 폭식꾼으로서 정성일씨의 논문같은 분석과 어느누군가의 아카데믹한 평론에서는 별다른 필요성이나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 부족한 소양과  빈약한 지적 호기심 때문 일 수도 있겠으나, 업이나 학문이 아닌 단순 제 1 취미로서 영화를 접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글과 접근들은 점점 관심에서 멀어져만 갔습니다. 어느순간 느꼈습니다. 영화 관람의 빈도는 높아가지만 그 폭만 넓어질 뿐 영화를 대하는깊이는 그대로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런 사고의 과정에는 쉽게 읽히지 않는, 금방 수긍이 가지않는 비평들의 철벽도 작용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간단한 평론이 아닌 깊이있는 비평들은 그렇게 멀어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집착은 아니여도 애착 정도는 있었기에 영화와 관련된 글들을 읽고 싶긴 했습니다. 20대 초반의 고민 아닌 고민은 <필름 2.0>의  뒤편 어딘가에 두면을 빼곡한 글들로 감싼 한 칼럼에 의해 실마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김영진씨의 <러프 컷>은 영화를 대하는 새로운 태도를 일러주며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의 글은 앞서 경험했던 것들에 비해 현학적인 부분이 적었습니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공간은 작품과 평행적으로 대화하려는 김영진씨의 신념하에서 영화와 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영화를 이야기 할때는 감상의 욕구가 시장을 이야기할때는 관객의 자성이 이어졌습니다. 

 저역시 영화를 보고 난 후 그것에 관한 글을 쓰고싶단 욕구를 이때부터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대상에 대한 애정과 그 사랑이 낳은 날카로운 눈매만 있다면 굳이 어렵고 학문적인 접근이 없더라도, 독자에게 감상의 욕구를 선물하는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리라 믿게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김영진씨의 글들은 쉽게 읽히지만 그 속에는 날카로움과 묵직함이 존재합니다. 뜨거운 씨네필의 차가운 문장들은 굳이 무게에 대한 의식이 반영된 복잡한 수사를 않더라도 차고 넘치는 날카로움과 묵직함을 동반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김영진씨의 글과 조우한 순간과 감사했던 날들의 기억이었습니다. 다시 두번째 아쉬움이 등장합니다. <필름 2.0>이 사라진 것 입니다. 잡지가 없어지는 동시 홈페이지에 등록되어있던 그의 기록들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영화에 일정 수준 이상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영진씨의 글은 한번쯤 읽어볼만한 것인 동시에 그를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저로서도 몇번이고 읽어보고 싶은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러프 컷>의 흔적은 산산히 흩어져 누군가의 블로그 한구석에 방치되어 '펌글'로서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였습니다.  <점프컷>과 <인디라마>같이 씨네 21에서 연재한 글들은 다행히 홈페이지에서 구독이 가능하지만, <러프 컷>의 흔적들은 보존없이 분해된 것입니다. 

 전부터 수 많은 싸이트를 돌아다니며 인상깊게 읽은 <러프 컷>의 칼럼들을 모아왔었습니다. 그렇게 하나 둘씩 모은 글들을 한곳에 올려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름 2.0이 사라진 현 시점에서 <점프컷>이나 <인디라마> 이전의 <러프 컷> 칼럼 혹은 더 이전의 몇몇 글까지를 한곳에 모아둔다는 것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팬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 판단하여 블로그를 별도로 개설했습니다. <러프 컷>에 연재한 모든 글은 아니겠지만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몇년 전 누군가가 무심히 복사한 그 글들을 하나 하나, 최대한 많이 모아봤습니다. 이곳의 글들은 <작별의 변> 이전까지의 105개의 칼럼들 그리고  정윤철 감독과 함께한 평론가 김영진씨의 인터뷰, 박찬욱 감독님과 함께한 <친절한 금자씨>대담까지 107개의 포스트가 올라와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영화 잔혹함 보다 중요한 문제]는 2010년에 쓰여진 글이지만 생각해볼만한 것이기에 함께 올렸습니다. 이 글을 제외하면 film 2.0 카테고리의 글들은 대부분 러프 컷에 연재된 것들입니다. 그리고 film 2.0 카테고리는 3개의 하위분류가 이루어져있는데 1관에는 영화 시장이나 이론에 대한 시선 그리고 2관은 한 작품에 관한 이야기 마지막으로 3관은 감독과 배우 그리고 작가에 관한 추억과 설명입니다. 다소 (시각적으로)읽기 불편한 포스트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좋은 글들이니 시간이 되실때 한번씩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쓰여진 칼럼들은 씨네21 홈페이지에 가시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작년에 <평론가 매혈기>라는 김영진씨의 책을 읽었습니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이란 이름이 처음으로 주어로서 떠오른 저서인데, 영화에 관한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명을 위해 피를 파는 내용의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에서 제목을 따온 이 책은 피를 팔아 깨긋한 글을 쌓겠단 그의 의지와 애정을 보여주는 좋은 책이였습니다. 역시나 올해 읽어본 정성일씨의 <필사의 탐독>은 참 어렵더군요


Link - 김영진의 러프 컷 블로그 

  


나는 나비 - 그 열정에 도취

2011. 1. 15. 08:08 Film Diary/Review


솔직히말해서 다큐멘터리적 완성도에 있어 정흠문 감독님의 <나는 나비>는 아쉬움이 큰 작품이다. 하나의 단점이지만 차치하고 건너뛰기엔 너무나 주요한, 골격에 관한 헛점이기에 그 아쉬움은 더욱 크다. <나는 나비>는 한국 밴드로서는 최초로 워프트 투어에 오른 YB와 미국을 찾는 YB를 기어코 만나보고야 말겠다는 신념으로 로드트립에 오른 써니의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이야기를 구성하는 두개의 물줄기는 아무런 화학작용이나 충돌도 없이 건조한 수평선으로서 소모되고 만다.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YB의 팬으로서 기나긴 로드트립에 오른 써니의 사정은 사족이였다. 심지어 그쪽의 과정은 작위적인 느낌마저 들어 다큐멘터리적 본성을 훼손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나의 지적과 아쉬움은 여기까지다. 작품성의 무게중심이 무너져내릴만한 헛점이 분명하지만 그 속에 펼쳐진 YB의 열정과 패기에 도취된 일인으로서 더이상의 태클은 제 감정에 대한 배신이 될것같아 그만하고 싶다. 8000원에 목멘 사람처럼 징징거리는 불만은 거두고 내가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는 이 작품은 보기드문 온도의 소중한 다큐라는 것이다. 기존의 락 다큐가 주목하는 것은 그들의 다사다난했던 과거의 이력과 현재의 화려한 무대의 교차나 찬사이다. 그런 류의 이야기는 주인공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포착해 추적해간다. 하지만 이 작품은 초심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주인공들의 새로운 시작에 동행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밴드의 업적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열정의 다짐을 따라간다. 기존의 비등점이 무대위에서 펼쳐지는 히트송의 후렴구라면 <나는 나비>의 비등점은 애벌레의 허물벗이다. 

눈물이 다 날것같은 걸작이 있는가하면 부럽고 억울한 맘에 눈물을 기어코 훔쳐가는 이야기들이 있다. YB의 힘겨운 미국원정기, 다큐멘터리 <나는 나비>는 내게서 꽤나 많은 눈물을 거둬간 작품으로 기억될것 같다. 물론 후자의 방식으로 말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밴드중 하나인 YB의 새로운 도전은 볼품없는 외형으로 연속되지만 감사함으로 귀결되는 그들의 여행길은 눈물나게 아름다운 것이었다. 20,30분 가량의 시간적 제약. 구석퉁이에 무심히 세워진 공간적 제약. 영화의 중반부쯤 윤도현은 메인 스테이지를 가르키며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도 한국에선 저정도는 하는데...' 이런 넋두리 아닌 넋두리 뒤에 <나는 나비>의 진정한 가치가 베어나온다. 실제로 그들은 자국의 슈퍼밴드이다. 하지만 밴드의 본질을 느끼고 자신의 한계를 확장하기 위해 대륙의 투어에 오른 것이다. 어쩌면 무의미할 수도 있는 이 무모한 모험길은 관객과 YB 모두에게 묵직한 감흥을 선사한다. YB에겐 감사와 결속을 관객에겐 우물쭈물과 핑계의 반성을 말이다.
 
미대륙에 떨궈져 새로운 시작을 마주하는 <나는 나비>는 태생적으로 화려함과 극한을 거세한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것 처럼 다른 온도를 지닌 락 다큐이다. 음악영화로서의 쾌감이나 로드무비의 다큐적 서사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즐겁게 땀흘리는 도전과 자기극복의 기록들은 틀에박힌 감탄 대신 감정적 반성과 동경을 수반시킨다. 단 두명의 관객앞에서 죽어라 연주하고 소리치는 그들의 모습을 연상해보라. 상상하기도 힘든 이 그림이 바로 <나는 나비>의 분위기와 가치이다. 이 핑계 저 핑계대며 우물쭈물하던 소심한 청춘으로서 이 아저씨들의 신나는 도전과 자기극복은 정말이지 눈물나게 고맙고 부러웠다. 아마 100여분의 시간이 흐른 후 당신은 <나는 나비>의 팬이 안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당신은 100분 후에 YB의 팬이 될것이다. 이건 확신한다. 진짜 멋있는 사람들이다. 정말로 좋은 열정이다. 그러하기에 텅빈 상영관이 더욱 쓸쓸했다. 

멋들어진 미대륙의 풍경위로 흐르는 YB의 음악들은 보너스다. 아주 달달한 디저트. 








제 2회 나름 진지한 시상식 (2010)

2010. 12. 13. 15:23 Film Diary/Column


   

 
 1. 제작년도와 관계없이 2010년 한국 극장에서 정식으로 개봉된 모든 작품을 대상으로함 (영화제/특별상영 제외).

 2..국외작품 상영에 대한 제한적 여건과 개봉지연 사유로 인해 미개봉 및 DVD 직행의 운명을 맞은 전세계의 모든 
    2010년 제작영화들까지 그 대상으로함.

 3. 접근성이 떨어지는 남미/유럽/아시아 각국의 작품들은 1,2년 정도의 제작년차는 감안해 북미개봉 기준 2010년 
    상영작들을 그 대상으로 함. (이런 작품들은 북미개봉을 기준으로 소개될때 비로소 존재를 알리곤하니) 

 4. 月을 영어로 표기한 작품은 국내개봉이 아닌 외국기준의 개봉일입니다.



20위 - 이층의 악당 (10.11.24) D : 손재곤 A : 한석규, 김혜수

 소포모어 징크스를 명백한 진화로서 뭉개버린 손재곤 감독의 신작 <이층의 악당>.  대사는 유효하고 이야기는 단단해졌습니다. 미스테리와 로맨틱 코메디의 기묘한 동거는 여전히 신선합니다. 감독의 여전함과 배우의 건재함을 상기시켜준 반가운 작품입니다. 2010년 한국 코미디 중에선 가장 뛰어난 영화가 아닐지. 특히 지하실 시퀀스는 말이죠.





19위 - 킥애스 (10.04.22) D : 매튜 본 A : 아론 존슨, 클로이 모레츠

  관객의 기대치를 정확히 충족시킨 현명한 히어로물입니다. 조금 더 강하게 갔다면 지금과는 다른 평가가 났을 수도. 뒤틀린 상상력을 메인스트림에서 어떻게 다뤄야할지, 좋은 선례를 남긴것 같습니다. 아쉬울것 없이 똑부러지는 영화이지만 속편에서는 주인공 킥애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할것 같아요. 누가보면 제목이 힛걸인줄 알겠어요.





18위 - 시라노 연애조작단 (10.09.16) D : 김현석 A : 엄태웅, 최다니엘, 이민정


 2010년의 복병, 시라노입니다. 무엇보다 김현석 감독님의 확고한 자리매김이 가장 큰 의미를 갖는것 같네요. 특유의 스타일을 구축하게한 기점, 김현석 월드 확장의 토대가 된 중요한 작품으로 남을 것입니다. 젊은 관객들이 생각하는 즐거운 영화의 현재가 바로 이곳에 있는 느낌입니다. 






17위 - 공기인형 (10.04.08) D : 고레에다 히로카즈 A : 배두나, 아라타

 오늘날의 서글픈 동화, <공기인형>은 고레에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을 다시한번 일러준 작품이었지만, 이번 만큼은 배우 배두나의 뛰어난 표현력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올한해 등장한 그 어떤 영화보다 배우의 지분과 역할이 중대한 작품이었습니다. 작품의 감정을 책임지고 관객을 올바르게 인도해준 인형같은 여인 배두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참 슬퍼요. 이 영화. 





16위 - 언싱커블 (10.May.26) D : 그레고 조던 A : 찰리 쉰, 사무엘 젝슨

 테러를 빌려 인권을 논해보는 시간입니다. 꽤나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한편으론 굉장히 훌륭한 장르적 온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징한 캐릭터간의 긴장감 넘치는 갈등양상을 너무나도 현명하게 잘라 붙여놓은 숨겨진 수작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보시기를. 찰리 쉰은 정말 다양한 얼굴을 하고있는것 같네요. 





15위 - 토일렛 (10.12.02) D : 오기가미 나오코 A : 모타이 마사코, 알렉스 하우스
  
 산책과 사색을 반복하던 오기가미 월드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긴것 같아요. 두터워진 드라마가 꽤나 반갑긴 했지만, 어째 특유의 휴식감은 덜 느껴지는것 같아 아쉽긴했습니다. 일전에 <카모메 식당>과 <안경>을 영화보단 기능성 영상에 가까운 참 고마운 휴식의 시간이라 이야기했던 적이 있는데, 이번엔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볼만한 따스한 드라마 한편을 잘 본것같습니다. 좋은 영화, 기분좋게 잘 봤습니다. 역시나 한국 관객들은 그녀의 세상을 참 좋아하는것 같네요. 스폰지 하우스가 매진인건 참 오랬만에 보네요. 





14위 -  베리드 (10.12.08) D : 로드리고 코르테스 A : 라이언 레이놀즈

  전개상 극단과 형식상 극복을 몸소 보여준 실험적인 작품 <베리드>는 분명히 언급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적 체험의 새로운 경지라고 생각합니다. 걸작이 될순없는 운명이지만 <베리드>는 자신의 자리에서 올라갈 수 있는 최대치의 작품성을 선보이는 작품입니다. 극장관람이 필수인 진짜 영화입니다.





13위 - 노라없는 5일 (10.10.21) D : 마리아나 체일로 A : 페르난도 루한

 여운과 회상. 두가지 키워드에서 만큼은 가장 훌륭한 매개였습니다. 세상을 떠난 후, 남은 이들을 화해시키고 이해시키는 그녀의 마지막 만찬은 어째 슬프지가 않았습니다. 다만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라며 후회의 연속을 반복할 내 자신의 처지만 처량해져 슬퍼질뿐이죠. 정제된 드라마가 건내는 진짜 인생의 이야기. 그래서 왠지 슬프기도하네요.
 




12위 - 꼬마 니콜라 (10.01.28) D : 로랑 티라르 A : 막심 고다르, 발리에리 르메르시

 관객을 무장해제 시키고 마냥 행복하게 만들어준 녀석들입니다. 절대적인 비교를 해본다면 작품성 측면에선 태생적으로 불리한 측면들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작품이지만, 극장에서 한없이 행복했던 제 추억에 솔직하고 싶어 12위에 <꼬마 니콜라>를 올립니다. 이렇게 해맑고 걱정없이 영화를 봤던 적은 없었던것 같습니다. 머리를 안쓰고 마냥 행복하게 바라본다는거 생각해보면 참 대단한 재주입니다. 생각만해도 행복해지는 작품이네요.





11위 -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10.09.02) D: 장철수 A: 서영희, 지성원, 박정학 

  힘 입니다.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은 힘입니다. 사실 칸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됐을때만 해도 장르적 재미에 기대를 걸었었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제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 기대했던 장르의 토착화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곳에는 박력넘치는 진중한 드라마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객석에 관객의 사지를 묶어둔채 징하게 괴롭히는 과정속에는 다양한 의미의 영화적 힘을 떠올리게 하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영화의 첫번째 힘, 장철수란 이름의 투박한 박력이 건져올린 수긍입니다. 신인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만큼 소신있게 작품을 완성한 덕에 의미없는 칼부림에 지친 관객들도 그녀의 낫질에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피와 살육이 영화에 있어 어느 순간에 등장해야할지 가장 올바른 예를 보여준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힘은 단연 배우 서영희입니다. 배우가 일생에 한번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광기를 그녀는 올해 행한것 같습니다.

 감독과 배우가 정체모를 힘으로 합심한 이 작품은 후반부에 가선 관객의 오금을 후려치며 오싹한 반성을 상기시킵니다. 잔인하리만큼 슬픈동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개인적으론 가해에 대한 복수보단, 방관에 대한 응징으로서 기억되는 작품입니다. 극적 완성도가 선사한 순간의 유희도 있었지만, 설득있는 어조로 우리네 삶의 어긋난 방식을 지적하는 부분이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우조연상 - 모타이 마사코 <토일렛>

 조연상은 작품에 대한 공헌도로 선정했습니다. 약간은 모자르고 어딘가모르게 삐걱대는 삼남매를 봉합한건 그녀의 존재였습니다. 작품을 통틀어 대사라곤 딸랑 2개 뿐이지만, 오기가미 월드의 뮤즈답게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책임져주고 있습니다. 한숨과 미소로 기억될 그녀의 온화한 표정이 어째 잊혀지질 않네요.
 




남우조연상 - 문성근 <옥희의 영화>

 이번에도 역시 문성근같은 연기였습니다. <오! 수정>과 <질투는 나의 힘>에서 봐오던, 바로 그 문성근이였습니다. 불균질적인 4개의 단편의 중심에서 현실감을 부여한것도 바로 그 문성근의 힘이었습니다. <주문을 외울 날>과 <폭설 후>에서 보여줬던 서로다른 매력의 상반된 연기는 굉장히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옥희의 영화>를 완성한건 이선균도 정유미도 아닌 문성근의 연기라고 생각합니다.





10위 - 부당거래 (10.10.28) D : 류승완 A : 황정민, 류승범, 유해진

 멈추지 않는 원형의 먹이사슬을 그린 작품 <부당거래>는 인용이 아닌 창조에 초점을 맞춘 류감독님의 결단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덕분에 그의 필모는 물론이고 2010년 한국 영화계에는 가장 날카롭고 굵직한 범죄 드라마 한편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몸이 아닌 머리로 영화를 대하는 류승완 감독님의 새로운 결심이 반가우면서도 어째 벌서부터 예전의 향취가 그리워지네요.




9위 -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 (10.AUGUST.13) D : 에드가 라이트 A : 마이클 세라

 에드가 라이트는 역시나 젊습니다. 만화적 관계에 대한 비디오 게임식 응답은 신선함, 그 자체였습니다. 신인류의 대중영화를 다루는 그의 행보는 확실히 보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젠 슬슬 오리지널리티를 선보일 차례인것 같습니다. 패러디와 인용이 아닌 그의 진짜 색을 다음엔 볼 수 있기를.  





8위 - 옥희의 영화 (10.09.16) D : 홍상수 A : 이선균, 정유미, 문성근


<극장전> 부터였습니다. 제가 20살이 되던해에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극장전>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는 성인의 실소를, 찌질한 남자의 쪽팔린 낄낄거림을 능숙히 뽑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신작 <옥희의 영화>는 홍감독님의 작품들중 가장 공감하며 구경한 어른들의 이야기였습니다. 4,5명의 스텝이 몇천만원의 예산으로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현장과 순간에 의지한 가변적인 4개의 이야기들은 어째 멋지게 어울립니다.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나저나 김기덕 감독님은 뭐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7위 & 감독상 - 소셜 네트워크 (10.11.18) D : 데이빗 핀처 A : 제시 아이젠버그, 앤드류 가필드

 연출력의 승리입니다. 올한해 가장 매끈하게 빠진 영화입니다. 무엇을 보다 어떻게에 주목하는 관람자로서 <소셜 네트워크>는 가장 훌륭한 상업영화중 한편이었습니다. 감독에게 놀아난 기분이 들었죠. 정말 기분좋은 농락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구성지게 해낼 사람이네요. 점점 젊어지네요. 시간이 거꾸로 가는듯이. 올해 감독상은 분명 데이빗 핀처입니다.







6위 - 인셉션 (10.07.21) D : 크리스토퍼 놀란 A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조셉 고든 레빗, 엘렌 페이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헐리웃이란 전쟁터에서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무력을 바탕으로 지나가는 곳마다 뜻깊은 기념비를 세우고 있습니다. 상업/대중 영화, 특히 거대자본을 바탕으로 한여름의 관객을 공략하는 오락물이 이토록 지적이고 탄탄할 수 있다는건, 아주 쉬운 인정으로 이어집니다. 그래 너 참 잘났다. 

 모두가 인정할만한 천재, 크리스토퍼 놀란의 상상은 시각이 아닌 내러티브 자체로서 차원을 건너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아바타>의 등장으로 모두가 한곳을 바라볼때 겉이 아닌 속으로, 눈속임이 아닌 재현에 힘을 쓰는 영리한 감독의 존재는 참으로 반갑고 고마울 뿐입니다. 올해 극장 관람을 2번한 작품은 <인셉션>이 유일한것 같습니다. 참 매력적인 이야기꾼입니다. 역시나 가장 무서운 사실은 상업영화를 예술의 경지로 올려 놓은 그의 상상놀음은 이제 막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5위 - 송곳니 (10.JUNE.27) D : 지오르고스 란디모스 A : 크리스토스 스테르기오글루, 미셸 발리

 끔찍한 영화입니다. 음산한 기운으로 가득한 이 그리스 영화에는 3남매를 평생 집안에서만 양육하는 부모가 나옵니다. 조지 오웰의 <1984>를 가장 소박한 시점으로 인용한 이 작품은 낯선 광기로 가득합니다. 멍하니 바라보다 싸늘하게 끝마치는 작품입니다. 라스 폰 트리에가 연상될 정도로 아주 힘겨운 체험이었습니다.  





4위 -  인디 에어 (10.03.11) D : 제이슨 라이트먼 A : 조지 클루니, 베라 파미가

  섬처럼 표류하는 한 남자를 쫓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많은 골치거리들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불안과 고독. 경쾌하게 뒤쫓아본 해고전문가의 발걸음이 어째 씁쓸하기만 하네요. 가장 기대하는 신진 연출가 제이슨 라이트먼의 너무나도 훌륭한 오늘날의 일기 <인디 에어>는 끝까지 외로울 수 밖에 없었던 조지 클루니의 의연한 표정으로 기억될것 같네요. 괜찮은 건가요. 우리?





주목할만한 시선 - 남매의 집(사사건건 中) D : 조성희

 지난 1월에 개봉한 영화 <사사건건>속에는 가장 주목받는 단편 4개가 섞여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남매의 집>이었다. 두려움이란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영화적 체험을 '낯섬'이라 믿는 사람으로서 이 작품은 정체도 의미도 알기힘든 낯선 두려움으로 가득한 작품이었다. 감상한지 꽤 오랜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감독의 이름 정도는 기억해둘 필요가있다.



여우주연상 - 서영희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나인>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아무리 명배우라도 작품을 잘못 만나면 힘을 못쓰는 구나. 역시 한해의 으뜸을 뽑는 주연상의 경우는 영화와의 합도 중요한것 같다. 감독 장철수는 물론이고 주연을 맡은 서영희 역시 일생의 한번 피울 수 있는 기적같은 순간을 이곳에서 보여준다. 주변부를 맴도는 착한 여성이 드디어 독한 맘을 품고 섬찟한 연기를 선보였다. 그녀의 표정과 움직임에 형언하기 힘든 박력을 느낀 사람으로서 올해 여우 주연상을 그녀에게 바친다.
 




남우주연상 - 라이언 레이놀즈 (베리드)

 솔직히 말해서 2010년은 배우보단 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한해였다. 명백한 수상자가 느껴지지 않은 한해였다. 서서히 뜨기 시작하는 태양, 라이언 레이놀즈가 <베리드>에서 선보인 연기는 그런 공백을 메꾸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다. 실험에 동참한 그의 비장한 각오는 진심이 되어 관객에게 전달됐다. 죽어라 고생한만큼 뜨거운 박수를 보내본다.






3위 - 경계도시 2 (10.03.18) D : 홍형숙 A : 한국사람들

 대한민국이란 리트머스 시험지 위에 떨어진 송두율이라는 시약, 다큐멘터리 <경계도시 2>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반드시 감상해야할 작품 중 하나다. 정치적 이념 논쟁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으로서 우리가 얼마나 비겁한 우인인지를 자문해볼 뜻깊은 시간이 될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흘러간 시간속에 별다른 반성도 개선도 없다면 ... 그건 참 비극적인 일이다.






2위 - 예언자 (10.03.11) D : 자크 오디아르 A : 타하 라힘, 닐스 아르스트럽

<대부>와 비교하려는 성급한 판단을 보류하더라도, 근 10년간 등장했던 갱스터 느와르 영화들 중에선 최상의 영화적 감흥을 지닌 작품이다. 1년동안 진지하게 고민해봤는데 <좋은 친구들>보다 <예언자>가 훨씬 괜찮은 영화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극장에서 다시 볼 기회는 없겠지만, 몇년의 한번씩은 찾아보며 흥분과 감탄을 반복할 준비 정도는 돼있다.   






1위 & 작품상 - 시  (10.05.13)  D:이창동 A:윤정희,안내상,김희라

 요즘 류승완 감독님의 인터뷰를 접해보면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게됩니다. 솔직히 영화라는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없어도 되는, 필수적 요소가 아니라는 이야기말이죠. 물론 류감독님의 주장은 거대자본을 다루는 연출자의 직업윤리에 관한 되새김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엉뚱하게 영화의 효용적 가치에 대한 존재의미를 연상하곤 합니다. 

 활자의 가치와 필사의 지적탐구가 희미해져가는 우리 세대에게 영화는 많은 것들을 충고해주리라 믿는 사람으로서, 잘 만들어진 한편의 영화는 책장을 가득메운 빼곡한 글자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와 우리의 삶의 태도를 긍정적 방향으로 돌려주리라 믿고 있습니다. 이같은 사적 의식흐름의 끝에는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 <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0년, 365일을 살아오며 제게 가장 의미있는 경험은 영화 <시>를 감상한 것이라고, 어디서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는데 있어 '어떻게'에 주목할뿐 '무엇을'에는 무관심한 편입니다. 우리 시대의 죽어가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속에선 많은 것들이 시들어 갑니다. 영화 <시>속의 '무엇'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역행하며 추락합니다. 욕망은 도덕을 끌어내리고 이기심은 인간의 존재를 스스로 지워냅니다. 시들어가는 인간사의 매서운 역행을 죽어가는 시로 치유하고자 하는 이 작품은 '어떻게'에서 조차 종이와 펜을 꺼내 스스로가 희미해져가는 시가되어 응답합니다.

 그간 소설의 형식으로서 현대사와 오늘의 고민을 이야기 해왔다면 이번 작품은 확실히 스스로가 시가되어 곪아가는 나와 우리에게 경고아닌 조언을 건냅니다. 그 조언의 결론은 이겁니다. 이감독은 우리에게 인간답길, 미자는 우리에게 아름답길. 설명보단 뭉텅이의 넓은 표면으로 몸을 맡겨 뛰어보는게 옳은 작품입니다. 본다는 시각적 경험이 어떤 방식으로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각성을 주는지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영화입니다.    
  

        
이상 제 2회 나름 진지한 시상식 (2010) 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올 한해 감상한 영화들중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지만 2010년에 제작된 것이 아니기에 소개하지 못한 영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공기인형>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1998년작 <원더풀 라이프>입니다. 이 작품은 죽음을 맞은 사람들이 일주일간 머무는 어느 공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혼이 지상의 육신을 떠나 영원한 시간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모든 사람들은 이곳에서 일주일을 머물게 됩니다. 

 그들은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자신의 일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한 순간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 기억이 결정되면 이곳의 직원들은 각자의 추억을 영상화하여 영원한 시간의 세계로 떠날때 나머지 모든 기억을 잊고 아름다웠던 순간만을 머리에 남긴 채 떠나도록 도와줍니다.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만을 기억한채 세상을 떠난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은 누구에게나 그러하듯이 자기 생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너무나 소박하고 아름다운 사후세계를 그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 마지막으로 강력히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준비하던 시나리오와 컨셉이 참 비슷해서 놀랐습니다. 제가 12년이나 뒤쳐진 것이지만, 저역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논리에 맞게 이야기를 진행하려 하였는데, 이런 공간에선 굳이 논리나 정확성을 따질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말이죠.  




잭 갈리피아나키스 Zach Galifianakis - 공존의 매력

2010. 12. 11. 23:48 Film Diary/Column



 이상할정도로 배우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편이다. 작품이나 연출자에 비하자면 연기자에 대한 관심은 확실히 적은편이다. 근데 요즘 묘하게 눈을 끄는 배우가 있어 짧게나마 기록해보고자 한다. 그의 이름은 Zach Galifianakis. 국내에선 개봉하진 못했지만 미국내에선 R등급 코미디물의 흥행역사를 새롭게 쓴 히트작이자 골든글러브에서 코미디부문 작품상까지 거머줘버린 골때리는 물건, <행오버>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존재를 알린 이다.

 <듀데이트>를 통해 재회한 연출자 토드 필립스와 잭 갈리피아나키스의 조합. 스타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합세와 전작의 메가히트 덕분에 (한발 늦긴 했지만) 국내에서도 스크린을 통해 이들의 정신나간 코미디를 마음껏 즐길 수가 있었다. 극장에 앉아 있을때는 정신없이 낄낄데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몇일이 지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배우에겐 전에없던 캐릭터성이 숨겨진듯 했다. 



 전에없다는 느낌은 완전한 창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같은 시대에선 사샤 바론 코헨같은 작정한 엔터테이너가 아닌 이상 온전한 의미의 새것이란 존재하기 힘들 것이다. 내가 바라본 잭 갈리피아니키스의 연기속에는 독창적인 새로움보단 기존 캐릭터의 현명한 공존이 느껴진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일 수도 있지만 거칠고 유별난 그의 외모 속에는 드라마같은 연민이 흐르고 있다. 가장 쉽고 정확한 예시라면 잭블랙과 스티브 카렐의 동거 정도가 되겠다. 잭블랙과 스티브 카렐은 어찌보면 너무나 거리가 먼 희극인일 수 있다. 잭블랙이 환상같은 존재로서 일상을 해체하고 스스로가 이야기를 발산해내는 스타일이라면, 스티브 카렐은 지극히 평밤한 일상속에 파묻혀 현실에 벽에 자꾸만 부디치고 넘어지며 연민의 이야기를 홀로 씹어 삼키는 이다. 현실을 깨부시는 부적응자와 현실에 자꾸만 미끄러지는 부적응자.

 잭 갈리피아나키스의 많은 연기를 본건 아니다. 4,5 작품을 통해 전달받은 그의 연기 속에는 분명히 저 둘의 기묘한 동거가 느껴진다. 세상에서 가장 당당한 기세로 발을 들여 놓곤 연민의 씨앗을 이리 저리 흘리며 주변과 소통하려는 그의 몸부림은 극단의 최고치는 아니지만 어느 가운데점 쯤에선 평균 이상의 즐거움으로서 관객에게 익숙한 새로움을 선물한다. 
 


 공존의 매력이 가득한 이 배우는 극단의 장점을 취함과 동시에 각자의 단점도 최소화하는 노력을 지속하리라 믿어본다. 환상처럼 톡톡 튀지만 지나치게 극의 분위기를 뜨게 만드는 어느 이의 결함과 세상과 사람을 읽을줄 아는 현명한 캐릭터임에도 대본과 연출의 지대한 영향을 받는 어느 누군가의 약점을 특유의 연민어린 괴상함으로 뛰어 넘길 바래본다.

 물론 <스쿨 오브 락>의 주인공을 잭 블랙보다 통쾌하게 해낼 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피스>의 마이클은 스티브 카렐 그 자체다. 배우를 거쳐 캐릭터가 완성된 케이스다. 잭 갈리피아나키스의 적절함은 이들의 극단적 매력을 뛰어넘진 못한다. 적어도 아직까진 말이다. 비록 40대에 접어들며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꾸준하고 현명한 선택을 이어가며 익숙한 새로움의 진정한 매력을 전세계인들에게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응원해본다.

 한가지 불안한 점은 토드 필립스 감독의 3작품에 연달아 출연하는 그의 최근 행보다. 블루칩으로 떠오른 만큼 다양한 작품들을 하고 있으니 스스로 경계하며 자신의 매력을 다양한 방향으로 발산하는 희극인이 되었으면 한다. 이점에선 최근 국내에서 주목받고있는 송새벽씨의 행보가 떠오른다. 너무 짧은 시간안에 한가지 모습만 반복해서 보여주게되면, 아무리 좋은 배우라도 함점에 빠질 수 밖에 없다. 한미 양국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 두사람이 현명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길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 <듀 데이트>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남자, 은근히 드라마에 탁월하다. 아닌가? 코끝이 찡했던건 나뿐인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코미디에 안착했고, 잭 갈리피아나키스는 드라마에 안착했다. <듀 데이트>는 오랬동안 기억할 괜찮은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될것같다. 물론 재미는 두말하면 잔소리.

베리드(Buried) - 그저 바라볼 수 밖에

2010. 12. 10. 08:59 Film Diary/Review



 
90분이란 시간을 사람 하나 겨우 누울 관 속에서 버텨내는 영화라니. 기대를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던 작품이다. 개봉일에 바로 극장으로 달려가 감상했다. 평일 오후의 동네 멀티플렉스는 참으로 한산하다. 그덕에 <베리드>를 텅빈 극장에서 홀로 감상할 수 있었다.  

들어오던데로 이 지독한 작품은 철저하게 자신이 세운 규칙을 지켜낸다. 오프닝 크레딧에서부터 서서히 하강하던 이미지는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암전으로 돌입한다. 거친 숨소리와 몇번의 기침과 함께 라이언 레이놀즈의 일인극은 시작된다. 불가능하리라 예상했던 코르테스 감독의 과감한 실험은 클리셰로 범벅된 나태한 스릴러들을 가뿐히 뛰어넘을 충분한 탄력을 가진 동시에 제 상상력에 발목이 걸려 거창한 오프닝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용두사미식 스릴러들의 비약한 상상력들 마저 비웃을 수 있는 연출력의 승리였다.


듣던데로 프레임 속에 등장하는 것이라곤 관속의 그것들이 전부다. 라이언 레이놀즈를 제외한 모든 배우들은 목소리로만 그에게 힘을 싣는다.관객의 몸을 간지럽히는 코르테스의 상상력은 라이언의 고통 위에서 빛을 발한다. 비영어권 연출자의 새로운 발견인 동시에 어느 평이한 배우의 새로운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 할것 같다. 8년전에 조엘 슈마허와 콜린 파렐에게 보냈던 그 박수를 말이다.


영화에 대한 구차한 설명대신 극장관람을 신신당부하는게 옳은것 같다. 상상력과 울부짖음만으로 완성된 이 작품은 전개에 관한 사소한 이야기 하나 하나가  영화관람에 있어 큰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분명히 오랬동안 회자될 작품이다. 일전에 히치콕의 <로프>를 보면서도 굉장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누군가의 표현처럼 히치콕을 관속에서 돌아눕게 만들 스릴러가 분명한것 같다. 제약으로 시작되는 극단적 스릴러의 새로운 지점  <베리드>는 강력히 추천할만한 영화다. 참고로 <닉 오브 타임>이나 <실제상황>과 같이 영화 속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물리적으로 함께하는 방식은 아니다. 그점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원활한 진행을 위해 감독이 택한 방식이니 그저 감사히 바라볼 수 밖에...


 
영화를 보며 그토록 몸을 움직여본 적이 없다. 좌우로  앞뒤로 유독 내 몸의 자유를 확인해보는 움직임이 잦은 관람이었다. 아마 극장을 나서며 자신의 손을 슥슥 비벼보며 탁트인 거리의 풍경을 몇초간 바라보게 될것이다. 그리고 차디찬 공기속 내 입김도 특별하게 바라보게 될것이다.

내가 그랬던것 처럼.


* 영화의 엔딩 크레딧과 함께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참으로 지독한 감독이다. 이미 헐리웃에선 지속해서 러브콜을 날린다고 하니 조만간 그의 상상력을 다시 만날 수 있을것이다. 시나리오 작가의 경우는 atm 서비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쓰고 있다던데 참 무서운 사람들이다.

*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후 2초 가량의 영상이 나온다.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이지만 ...


제 2회 나름 진지한 시상식 - 후보작

2010. 12. 8. 02:59 Film Diary/Column


 
 예전 블로그를 살펴보니 4,5년의 시간이 흘러도 유일하게 뿌듯한 포스팅은 당해년의 감상작들을 나름의 시각으로 선별한 후 분야별로 의미없는 수상을 해본것 뿐이었다. (영화 블로그에 있어) 새출발을 결심한 첫해인만큼,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으로 선정한 2010년의 중요한 순간, 즉 10편의 작품들을 뽑아보고자 한다. 시간만 허용된다면 BEST 10의 선정뿐 아니라 분야별로 뛰어난 재주를 선보인 이들의 재능에 감사를 표하는 자리도 마련해보고 싶다. 기준과 후보작들은 다음과 같다. 아래의 46편의 영화들 중 선정하고자 한다.   

1. 제작년도와 관계없이 2010년 한국 극장에서 정식으로 개봉된 모든 작품을 대상으로함 (영화제/특별상영 제외).
   
2..국외작품 상영에 대한 제한적 여건과 개봉지연 사유로 인해 미개봉 및 DVD 직행의 운명을 맞은 전세계의 모든 2010년 제작영화들까지 그 대상으로함.

3. 접근성이 떨어지는 남미/유럽/아시아 각국의 작품들은 1,2년 정도의 제작년차는 감안해 북미개봉 기준 2010년 상영작들을 그 대상으로 함. (이런 작품들은 북미개봉을 기준으로 소개될때 비로소 존재를 알리곤하니) 


위 1,2,3 기준에 따라 선정된 후보작들 (전체 감상작들 중 최소한 실망은 안한 작품들을 선정)

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 (The Secret in Their Eyes / El secreto de sus ojos) - 2009년 스페인/아르헨티나 
엉클 분미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 2010년 태국
옥희의 영화 (Oki’s Movie) - 2010년 한국
울지마 톤즈 - 2010년 한국
하하하 (夏夏夏) - 2010년 한국
유령작가 (The Ghost Writer) - 2010년 독일 / 영국 / 프랑스
하얀 리본 (The White Ribbon / Das weiße Band) - 2009년 독일 / 오스트리아 / 프랑스
경계도시 2 (The Border City 2) - 2010년 한국
시 (Poetry) - 2010년 한국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Bedevilled) - 2010년 한국
인셉션 (Inception) - 2010년 미국 / 영국
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 - 2010년 미국
시라노 연애 조작단 - 2010년 한국
사사건건 (Nice Shorts) - 2009년 한국
꼬마 니콜라 (Le Petit Nicolas) - 2009년 프랑스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 2008년 미국
의형제 - 2010년 한국
맨 온 와이어 (Man on Wire) - 2008년 미국 / 영국
그린 존 (Green Zone) - 2010년 미국 / 영국
시리어스맨 (A Serious Man) - 2009년 미국
언 애듀케이션 (An Education) - 2009년 영국
예언자 (A Prophet / Un prophete) - 2009년 이탈리아 / 프랑스
인 디 에어 (Up in the Air) - 2009년 미국
킥 애스 : 영웅의 탄생 (Kick Ass) - 2010년 미국
공기인형 (Air Doll / 空氣人形) - 2009년 일본
클래스 (The Class / Entre les murs) - 2008년 프랑스
악마를 보았다 - 2010년 한국
애프터 라이프 (After.Life / After Life) - 2009년 미국
부당거래 - 2010년 한국
노라 없는 5일 (Nora's Will / Five Days Without Nora) - 2008년 멕시코
듀 데이트 (Due Date) - 2010년 미국
이층의 악당 - 2010년 한국
송곳니 - 2009년 그리스
애프터 라이프 - 2009년 미국
러브드 원스 - 2009년 호주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 - 201년 미국
스플라이스 - 2010년 미국
인빅터스 - 2009년 미국
언싱커블 - 2010년 미국

12월내 개봉(감상)예정 작품

베리드 (Buried) - 2010년 스페인
브라보! 재즈 라이프 - 2010년 한국
아메리칸 (The American) - 2010년 미국
아웃레이지 (The Outrage / アウトレイジ) - 2010년 일본
토일렛 (Toilet / トイレット) - 2010년 일본
투어리스트 (The Tourist) - 2010년 미국 / 프랑스
황해 (Hwanghae / The Yellow Sea) - 2010년 한국 


 예전 블로그를 다시 확인해 보니 21살때 끄적여본 첫번째 시상식의 타이틀은 <제 1회 나름 진지한 시상식>이였다. 그렇다면 본 예고 포스팅의 후속 글은 <제 2회 나름 진지한 시상식>이 되야만 할것같다. 4년의 공백을, 이번 만큼은 제발 매꿔보자는 의미와 의지에서 4년전 1회 수상작들을 긁어와봤다.
 
제 1회 나름 진지한 시상식 - 원문 Link


2006년, 한해의 영화들을 돌아보며...
 
 예전부터 제 나름대로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은하고 다녔지만, 고3 주제에, 재수생 주제에 영화를 봤으면 한해에 몇편이나 봤겠는가. 그나마 2006년 올 한해는 개인적으로도 극장에 찾아갈 시간적 여유가 많았을뿐 아니라, 90년대 후반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래로 가장 다양하고, 개성있는 작품들이 많이 선보여진 한해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제3국의 영화들은 언제나 '선별적'으로 인정받은 웰메이드 작품들이 많이 선보여지지만 유난히 올해의 외국영화들은 내마음에 드는 작품들이 참으로 많았다.
 
2006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성애'를 다룬 영화들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왕의남자>와 <브로크백 마운틴> 그리고 <메종드 히미코> 이 세편의 영화가 동시대에 3국의 박스오피스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또한 9.11 이라는 역사적 비극의 시작을 영화계에서 다룬 첫해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국내 영화계만 살펴보아도 '스크린쿼터' 문제로 붉어진 한국영화 시장의 위기전조와  '괴물' 과 '왕의 남자'라는 두편의 천만영화의 등장으로 인해 한국영화에 대한 상반된 관심과 우려가 쏟아진 한해였다.
 
 김기덕과 홍상수등의 작가주의 감독들의 사랑이야기도 있었고, 봉준호 최동훈등과 같이 한국 상업영화의 진일보를 이끌게 해준 감독들의 오락영화들도 있었다. 그리고 유난히도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던 작지만 소중한 영화들도 많이 등장했다. 청룡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관객들의 외면을 위로받은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이 그나마 웃을 수 있었다면, 아직까지도 양분된 반응 속에서 저주받은 걸작, 혹은 벌을받은 졸작의 사이에 있는 '구타유발자들'도 있었다. '삼거리 극장'과 '후회하지 않아'역시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 작품들이었다. 또한 '다세포소녀'와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이 두작품은 대한민국 대표감독들의 실험작들로서 엄청난 욕과 소중한 사랑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2006년은 이전과 다르게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는 영화들이 참 많이 등장했다. 매니저와 퇴물가수의 관계속에서, 위험하지만 솔직한 꿈을 향해 나아가는 한 소년의 몸부림속에서, 그리고 별볼일 없는 깡패와 우리네 어머니의 대화속에서, 개인적으로는 외국영화 보다는 한국영화속에서 2006년의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 나간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작은 극장들과 소통했던 첫해로 기억될것 같다. 비록 아직까지는 상업영화에 가까운 작품들에 많은 '흥미'를 느끼고 있지만, 조금씩 작은 영화들의 매력에 젖어 가는것 같다. 스폰지를 오가며,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아다니며, 하이퍼텍나다와 씨네큐브의 상영표를 찾아보며 영화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며, 조금이나마 영화에 대해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좋은 영화들도 많았고, 영화를 볼 시간도 많았던 2006년.  극장에서 본 영화는 75편, 그리고 비디오와 DVD, 어둠의 경로를 통한 관람은 정확한 숫자가 나오지는 않지만 극장에서 본것 이상인것은 분명할것이다. 올해의 마지막이 다되서야 이렇게 한해동안 보았던 영화들을 정리하며 생각을 해보니 역시 영화는 프린트의 예술이며, 스크린에서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든다. Best 20 중에서 무려 18편이 극장관람작품인것을 보면 말이다.
 
 
 
2006년, 내가 사랑한 영화들
 
 사실, 이 Best movie를 선정하는 기획은 누군가의 블로그에 있던 것을 보고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신나는 일만은 아니라해도, 나중에 뒤돌아보면 좋은 추억이고, 좋은 정보가 될것같다는 생각에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영화들의 작품성과 오락성을 가늠해 정확히 줄세울만한 재주도 없을 뿐더러 그럴 자격도 없는것 같다. 그냥, 별다른 기준을 두지 않고 내가 좋은데로 조심스레 정성스러운 순위의 탑을 쌓아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영화의 순위를 매긴 기준은 무엇이냐.  기본적으로는 '나'와 잘맞아야한다. 영화를 사랑하는데 있어서 내가 재미있고, 내가 좋으면 그만이라는 논리가 언제나 기본에 깔려있었다. 마냥 재미있을 필요도 없다. 재미가 없어도 좋다. 내가 보고 그냥 좋으면 되는것이다. 업무가 아닌이상 나에게 뭐라할 사람은 없을테니, 내 가슴이 반응하고 감정이 뒤흔들린 영화들 중에서 나름대로 순위를 정해보았다.
 
 평소에 영화를 보고 별표를 달곤 하지만, 그건 그다지 신빙성없는 그때 마다의 감정적인 즉흥 점수이므로 여기의 순위와는 별개로 보겠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영화'라는 이유만으로도 그것에 무한한 애정을 심을 수 있는 이 별난 특성떄문인걸 생각해 보면 올해 내가 본 영화들은 단 두편을 제외하고는 다들 괜찮은 친구들이었다. 그렇다면 그 괜찮은 녀석들 중에서 가장 신나고 멋진 녀석들을 소개하겠다. 그전에 우선 후보에 올랐다가 20위권 밖으로 밀려난 녀석들이 여기 있다.




20위 프레리 홈 컴패니언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유작으로서 앞으로 더욱 유명해질 영화 <프레리 홈 컴패니언>. 기억이 날진 모르겠지만, 최근에 한국에서 개봉했던 영화이다. 상영규모도 작았을뿐 아니라, 흥행성적 역시 좋지 않아 이 영화를 극장에서 접한 이들은 얼마없을 것이다. 참으로 슬프다. 이 따듯하고 낭만적인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니... 
 
 유명 라디오 프로의 마지막 밤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오프닝 부터 나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송신탑하나가 외롭게 서있다. 친근한 라디오의 지직거림과 함께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차례로 배우들의 이름이 떠오른다. 이름만 봐도 설레게 하는 그런 배우들의 이름이 떠오른다. 영화는 시종일관 출연진들의 사사로운 잡담과 낭만적이고 힘찬 노래들이 배열된다. 그안에는 죽음도 있고, 사람들 사이의 말못할 사연도 담겨있다. 거장, 혹은 고령의 감독의 작품인 만큼 우리나라의 일반 관객들이 느끼기에는 다소 적응이 되지 않는 답답함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편히 갖고 여유롭게 이 작품을 즐긴다면, 추운 겨울 경치좋은 별장에서 따스한 차 한잔을 손에 쥔체   LP판을 틀어놓고 안락의자에 누워 세월의 흔적들을 되집어 볼만한 따듯하고 인간미 가득한 영화이다. 날카롭기만 하던 그의 눈빛이 많이 부드러워 졌음을 느낄것이다.OST는 두말할것없이 정말 최고이다.


19위 구타유발자들

 연말이 되면, 각종 잡지와 매체들은 그해의 최고 영화들을 언급하기 바쁘다. 그외의 많은 영화들은 조용히 관객들의 추억속에만 잠기게 된다. 그나마, 연말 연시가 되면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다른종류의 영화들이있는데, 아마도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타이틀 아래 언급될 작품들이 그것일 것이다. <가족의 탄생>이야, 이제 누가봐도 '저주받은' 걸작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것이다. 허나, 이 불쌍한 영화 <구타유발자들>은 아직까지도 매질과 사랑을 동시에 받으며 '걸작' 논쟁이 한창이다. 잔혹 마당극 정도로 이름붙일 수 있는 이 작품은 분명히 2006이라는 숫자와 함께 우리의 기억속에 남을 작품들중 한편임에는 틀림없다. 몇십년이 지난 후 시네마떼끄에서 재상영될 영화중에 한편임은 분명하다. 한석규와 이문식 그리고 오달수라는 배우들의 가장 훌륭한 모습들이 담겨있음이 틀림없는 작품이다. 


18위 박치기

1968년, 일본 학생과 재일교포 여학생의 사랑의 감정을 다뤄나가면서, 그들을 둘러싼 주변의 환경과 청춘들의 패기넘치는 에너지를 통해 일본 사회와 조총련간의 관계를 그려나가고 있는 작품이다. <69> 못지않은 젊음을 품고있는 이 영화는 <Go> 이상으로 진솔한 시선을 가진 체 때로는 우스꽝 스럽고 때로는 애절하게 그들의 관계를 이야기 한다. '임진강' 을 부르는 일본학생의 그 모습은 아직까지도 눈앞에 선하다. 1/2 일과 5일 양일간 하이퍼텍나다에서 상영이 잡혀있으니,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꼭 한번 봤으면 한다. '자유'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오다기리죠의 모습또한 꽤나 볼만하다.


17위 디파티드



 하긴, 갱스터 무비를 이 사람만큼 날것으로 잡아내는 감독이 또 어디있겠는가. 명감독과 환상적인 배우들의 조합으로 많은 관심을 이끈 <디파티드>는 정말 잘만든 영화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회자될 만한 훌륭한 갱스터무비이다. 오리지날 시나리오로 탄생한 영화라면 아마도 Best 5안에는 들어갈 만한 작품이지만, 잘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17위에 랭크하는 이유는 <무간도>에 세뇌된 나의 가슴을 움직일만한 영화는 아니였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원작의 주인공들이 보여준 고상한 모습들은 되려 비웃음거리가 되고, 디카프리오와 스콜세지가 보여준 이 시원한 모습들이야 말로 정답일지 모른다. 그래도 어찌겠는가, 너무 빨리 리메이크를 해버린 바람에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음을. 그래도 역시, 스콜세지는 명감독이고  디카프리오는 괴물같은 배우라는것 만은 분명하다. 연출과 연기, ost까지 훌륭하다. 근데 너무 차갑긴 하다.


16위 음란서생

 너무나도 세련된 즐거움을 안겨준 영화였다. 사극에 세련되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영상미'에 능숙한 작가의 여유가 느껴지는 '농'까지, 근래 한국에서 만들어진 사극중에서 가장 신선하고 훌륭한 작품이었다. 이도 저도 아닌 장르의 혼합이라는 비판도 많지만, 내 눈에는 장르의 훌륭한 교류 였다고 생각된다. 시나리오 작가에서 연출자로 나아간 '김대우'의 데뷔작. 전혀 음란하지 않았음이 아쉬울 뿐 충분히 훌륭한 코미디와 눈까지 즐거웠던 참으로 깔끔한 작품이었다. 한석규씨는 내년에도 '다작'을 해주었으면 한다. 그의 얼굴은 도데체 몇개인가.


15위 미션 임파서블 3

 올 한해에도 많은 후속편들이 등장했다. 모두가 애타게 기다리던 슈퍼맨도 돌아왔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잭 스패로우도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의 슈퍼맨은 향수에 젖어있었다. 그나마 잭 스패로우가 훌륭할 정도로 멍청한 모습을 선사하며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지만, 영화 자체가 지루한 감이 있었다.  올 여름 등장했던 블럭버스터 무비 중에서도 미션임파서블의 3번째 스리즈인 이 작품은 단연, 가장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첩보영화임을 포기 한것인지 스리즈가 늘어갈 수록 1편에서 점점 멀어지는 감은 없지 않지만(물론 2편 보다야 첩보영화 스러웠다) 여름철 헐리웃 블럭버스터가 선사할 수 있는 최고치의 즐거움을 보여준 이 영화는 적절하게 '때려 부수고' '날라 다니고' '나름 머리도 쓰면서'  헐리웃 원산지 공산품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했다고 본다. 앞으로 등장할 이단 헌트는 '탐 크루즈'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하던데, 그러면... 이거 재미없어질텐데

OST 부문
삼거리 극장 - 프레리 홈 컴패니언



 2006년 OST 부문에 있어서 만큼은 '이병우'의 한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도 그럴것이 <장화,홍련>과 <연애의 목적> 그의 작품들을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올 한해도 <왕의 남자>와 <호로비츠를 위하여> <괴물> 무려 세편의 영화에 참여하며, 시상식 마다 2편씩을 후보에 올리며 전 시상식의 OST 부문을 휩쓸었다. 나역시 이병우의 음악들을 참으로 사랑한다. 하지만, 그의 음악들은 참 듣기는 좋지만, 영화와조금 거리감이 느껴지는것이 사실이다. 비록 영화 자체는 그렇게 좋게보지는 않았지만, 국내 판타지 뮤지컬 영화 1호인 <삼거리 극장>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지금도 OST를 듣고있는 중이다. 기본적으로 뮤지컬 영화를 표방하고 있기에 음악에 많은 부분 신경을 쓴것도 있겠지만, 정말 이 OST의 완성도는 놀라운 것이다. 음악을 들을때마다 절로 몸이 움직인다. <자봐라 춤을>과 <똥싸는 소리>는 너무나도 나를 즐겁게 해준다.

<프레리 홈 컴패니언> 방송의 마지막날, 그곳의 가수들의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흘러나온다. 재치넘치고 신나는 우디 해럴슨의 컨츄리송부터 메릴 스트립의 분위기있고 잔잔한 속삭임을 거쳐 린제이 로한의 재기발랄한 외침까지. <프레리 홈 컴패니언>은 라디오 방송의 마지막 밤을 담고있는 영화인지라, 끊임없이 음악이 흘른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유작이된 이 작품속에 담긴 음악들은 영화 만큼이나 따듯하고, 나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질 만큼 진득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 


14위 비열한 거리 

 나는 유하감독의 영화를 참으로 좋아한다. 이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다. 우리네 현실속에 두 발 담그고 '폭력'과 사회와의 관계를 그려나가는 그의 이야기가 너무나 좋다. 억압된 70년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아름다운 젊은과 '폭력성'의 분출이 좋았고, 새로운 시대의 흐름속에 그들이 '기성'이된 위치에서 다시금 '폭력성'을 만들어내고 그것에 희생당하는 또다른 젊음의 연장적인 이야기가 좋았다. 비열한 거리는 <말죽거리 잔혹사>의 미래의 모습이며, 앞으로 유하감독이 만들어낼 새로운 영화의 과거이고, 우리의 현재이다. 우리들의 불안정한 '한국사회'를 말하는 도구로 사용된 조폭들의 존재는 그 '폭력성'의 연속성을 가장 비참하게 표현해내는 도구로서, 느와르 영화로서도 큰 의미를 지니게 해준다. <게임의 법칙>과 <초록 물고기> 그리고 <달콤한 인생> 의 뒤를 잇거나 그들보다 더 큰 의미를 품은 꽤나 소중한 영화임이 분명하다. 단순한 조폭영화로 치부하기에는 우리들의 더러운 삶이 너무나도 많이 뭍어난다. 역시, 유하감독의 작품인 만큼 많이 낡았지만 그만큼 영리 하기도 하다. 말그대로 old and wise 
 

13위 수면의 과학

 이 세상의 그 어떤 이야기가 자신의 '꿈'자리 보다 더 재미있을 수 있을까? 이따금씩 우리들은 어젯밤 꿈속의 환상적인 이야기와 짜릿함을 잊지 못하고, 그 기억들을 더듬어 보려한다. 희미한 기억속의 언뜻 생각나는 그 달콤한 이야기들은 엉성한 모양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비록 말은 안되지만,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신비하게 우리의 마음을 뒤흔든다. 영화 <수면의 과학>은 꿈의 세계와 현실의 중간지점 속에서 한 청년의 사랑과 상처를 그려나간다. '역시 미쉘 공드리'라는 말이 터져나올 정도로 스크린을 가득메운 그의 상상력과 표현력은 관객들의 눈과 귀를 간지럽힌다. 너무나도 달콤한 사랑이야기. 그리고 너무나도 귀여운 영화. 난 정말로 더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서 이 작품을 즐겨주었으면 한다. 추운 겨울날, 당신의 가슴을 따듯하게 녹여줄 작품임이 틀림없다. 


12위 타짜

 신명나는 템포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은 장르영화의 새로운 방향을 선보인 꽤나 주목할만한 영화였다. 그리고 두번째 연출작 <타짜>, 도박꾼들의 거대한 세계를 최감독 특유의 각색 작업을 통해 영화로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지점으로 끌어올린 훌륭한 작품이었다. 그는 스크린 위에서 캐릭터와 이야기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나아갈 방향들을 알고있는 듯하다. 관객들을 이끄는 그의 글솜씨와 거침없는 이야기의 진행은 충무로의  '상업' 혹은 '장르'영화를 만들어 나가는 감독들 중에서도 단연 선두에 위치한듯 하다. 다만 <타짜>의 아쉬운 점은 지나치게 빠른 템포 때문인지 전작에서 느꼇던 캐릭터들의 생동감을 느끼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2006년 가장 훌륭한 상업, 장르 영화중의 한편이다. 앞으로도 그의 '재구성'이 계속 되길 바란다.


11위 열혈남아



 꽤나 우울한 엔딩을 맞았음에도, 설경구의 재기 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진 영화였다. 별볼일도 없을 뿐더러 언제나 강해보이려 애쓰지만, 한없이 비겁한 삼류 건달과 우리네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모정의 따듯함과 인간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던, 그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증명 느와르'라 부를 수 있는 영화 <열혈남아>. 2006년은조폭과 건달이 등장하는 영화들의 색다른 변화가 시도된 한해였다. 이 작품 역시 건달의 생활을 통해 그들 역시 인간임을,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한동안 우리가 잊고 지낸 '인간관계'의 소중함과 그리움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나역시 남자임을, 그리고 한번쯤은 우리의 어머니들을 따듯한 시선으로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준 좋은 영화였다. 설경구씨는 이 영화의 시사회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영화 보시고, 어머니한테 전화한통 넣어드리세요'라고 이 영화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10위 디어평양

이 목록들 중에서 유일한 다큐멘터리다. 그렇다, <디어평양>은 다큐멘터리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말이 필요없다. 그냥 이런건 직접 보고 느끼는게 최고이지만, 벌써 우리들은 이 작품을 잊었다는것이 아쉬울 뿐이다.


9위 스쿠프

 <스쿠프>는 70의 노인이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은 영화이다. 다만 우디 앨런의 작품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라고 말이다. 77년작 애니홀 이후 쉬지않고 작품을 찍고있어서 일까, 그의 영화는 늙지도않을뿐더러 자신만의 색체를 유지하며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전작 <매치포인트>에서도 유감없이 노장의 실력을 보여줬던 그는, 이번 영화 <스쿠프>에서 젊은 배우들과 함게 깔끔하고 재치넘치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성공적인 코미디영화를 이끌어냈다. 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 노인과 소녀, 그들은 조금은 엉뚱하고 다소 귀엽게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속에서 시종일관 중얼거리는 우디 앨런의 입담앞에 자지러 질 수 밖에 없다. 우디 앨런의 놀라운 유머감각을 느낄 수 있었던 영화 <스쿠프>, 코미디 영화를 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 극장에서 박수가 터져나온것은 처음이었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기발한 유머를 선보이는 노장에게는 경의를... 그리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스칼렛 요한슨에게는 박수를

8위 라디오 스타

 이준익감독의 연출에는 조금은 옛날 냄새가 뭍어난다. 그리고 사람사는 냄새도 느껴진다. 아마도 그렇기에 라디오 스타가 더욱 빛날 수 있었던것 같다. 퇴물가수와 평생동안 그를 챙겨주는 매니져, 그들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영화 <라디오 스타>는 올 한해동안 선보여진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따듯한 작품이었다. 그전까지 의심하고 있었던 이준익 감독의 역량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인생에 있어서의 '벗'과 '동료'에 관한 의미도 돌이켜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나는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그 진정성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참으로 좋다. 착하고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너와 나'의 관한 영화가 좋다. 극장을 나서면서도 따듯한 가슴을 품고 인생을 돌이켜볼 수 있는 영화였다. 이따금씩 이 사회와 인생에 회의가 느껴질때 이런 영화를 만나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인생은 아름답고, 살만한 것이구나'. 난 이 영화가 참 좋다.


7위 굿나잇 앤 굿럭



"굿나잇 앤 굿럭" 이 간결하고 강직한 인사말과 함께 영화는 막을 내린다. 아마도 올해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대사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매카시 광풍에 유일하게 맞선 언론인 머로의 이야기를 담고있는 담담한 영화 굿나잇 앤 굿럭은 언론인들의 안일한 현실을 뒤돌아보게 만든 역사의 가르침이었다. 흑백으로 표현된 세계와 간결한 연출을 통해 '미니멀'함의 효과를 절실히 느끼게 해준 이 영화는 2006년에 등장한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묵직하게 우리들을 향해 돌진하다. 전작 컨페션과 굿나잇 앤 굿럭을 통해 미국사회의 냉전과 진실을 다뤄나가는 '조지 클루니'의 연출가로서의 행보도 기대해볼만 할것 같다. 흑백의 진정성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6위 플라이트 93

 애도하기 위해서, 또한 기억하고자 우리는 앞으로도 9.11에 관한 많은 영화들을 접하게 될것이다. 이 영화 <플라이트 93>은 올한해 가장 충격적이고, 가장 애절한 작품이었다. 그떄 그사람들의 모습을 마치 옆좌석에서, 혹은 관제탑 속에서 바라보고, 경험한 듯한 강한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플라이트 93>을 극장에서 본 사람들은 알것이다. 영화가 끝난 순간 자신의 머리에 총알 한방이 박혀버렸다는 사실을... 이 영화의 엔딩은 절대 잊을 수 없을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접한 모든 사람들이 말이다.

각본상
가족의 탄생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은 올한해 가장 찐한 사랑을 받은 영화이다. 평론가와 관객들 모두 이 새로운 가족의 모습앞에서 따듯한 낯설음을 느꼇다. 비록 Best 20에는 올리지는 않았지만 올 한해 가장 뛰어난 영화중 한편인 <가족의 탄생>은 낯설은 매력을 지니고있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속 가족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이 새로운 가족을 보고있자면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든다. 새로운 대안으로 다가온 이 훌륭한 작품은 3개의 단편적 이야기들이 한곳으로 묶여나가는 과정속에서 그 참된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무엇보다 '각본'부문에서 가장 큰 점수를 주고싶은 작품이다. 물론 <달콤, 살벌한 연인>과 <음란서생>, <천하장사 마돈나>와 <괴물>등 훌륭한 각본들이 많았지만, 가족의 탄생의 시나리오는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5위 천하장사 마돈나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가 있다. 사랑스러운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는 코미디 영화 임에도 연달아 두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강한 개성과 뛰어난 작품성을 지닌 영화이다. 올 한해동안 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코미디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작품은 나에게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희극과 비극의 균형과 새로운 희극적 요소들, 그리고 극을 지탱해주는 뛰어난 연기자들까지, 너무나도 부럽고 존경스러운 작품이다. 코미디 영화를 이정도로만 만들어준다면 앞으로 '코미디 장르는 괜한 괄시를 받는다는 아쉬운 소리'는 하지 않아도 될것이다. 이렇게 훌륭하게만 만들어 준다면...  아쉬운 흥행성적은 연말의 각종 시상식에서 트로피로 대신하였으니 모든것이 만족스러운 영화.

4위 괴물



 2006년, 가장 말도 많고 상복도 많은 영화. <괴물>은 지나칠 정도로 훌륭한 영화였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작품이 벌써 한국에서 나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만 3번을 봤다. 물론, 모든것이 만족 스러운것은 아니었다. 봉준호 감독은 단순한 이야기만을 전달하기에는 너무나 현명하고 욕심도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다소 어수선해진 경향은 없지않아 있지만, 나는 <괴물>을 현재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오락영화의 최고치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오락, 상업영화로서 이 영화를 즐긴 나로서는 여러가지 '사회적' 의미들은 단순한 영화적 장치로만 생각할뿐 '의도가 뻔했다느니' 등의 이유로 작품성을 깍아 내리고 싶지는 않다. '주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기엔 너무나 단순한 오락영화 이기 떄문이다. 한국 최고의 스릴러를 만들어낸 감독이 다시 한번 다른 장르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오늘날 까지도 사랑받고 인구에 회자되는 위대한 감독들의 공통점은 기본적으로 영화를 재미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봉준호의 영화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요즘도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지날때면 가끔씩 오싹한 기분이 든다. 괴물의 첫등장은 아마 평생 지우지 못할 기억이 될것이다.

3위 판의 미로



극장에서 영화가 끝나는 순간 탄성을 자아냈던 <판의 미로>, 스페인 내전의 어두운 과거와 소녀의 판타지적 동화가 교차하는 과정에서 풀어나가는 이 비극의 장은 정말이지 근래에 보기 드문 걸작이었다. 잔혹한 현실을 잊어달라는 자장가소리가 기괴한 판타지의 문을 연것일까. 슬펐다. 놀라웠다. 그리고 환상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판의 미로다. 이 영화를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들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무리 취향을 내세운다해도, 기본적으로 훌륭한 영화는 분명히 존재 한다는 것을.


2위 리틀 미스 선샤인



 영화팬들 사이에서 언급되는 작품들중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가 바로 <리틀 미스 선샤인>이다. 각양 각색 루저 가족의 여행을 통해 가족愛와 그 소중함을 전해주는 이 영화는 인디의 질척한 시선을 통해 한층 더 따듯하게 우리에게 다가선다. '가족'은 어떻게 보면 가장 가까이 있음에도 서로를 가장 잘 모르는 사람들의 집단일 수 있다. 어쩌면 한집에 모여 사는 우리들은 한없이 어색해질 수도, 혹은 서로를 미워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모습을 가진 그 어떤 사회적 동물들도 '가족'이라는 범위 안에서는 새로운 존재로서 서로 소통하는 것 같다. 그 속에서는 이유없이 서로를 사랑으로 감싸줄 이유가 생겨나느것 같다. 그것이 바로 가족이다. 요즘 너나 할것 없이 가족과 사회의 해체를 말하는 상황에서 속속 등장하는 이런 가족의 관한 이야기들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많은 생각의 여지를 남겨준다. 그럼에도...우리는 가족이기에.   

1위 브로크백 마운틴



 내가 선정한 올 한해 최고의 영화는 홍상수 감독 해변의 여인도 아니고, 미카엘 하네케의 날선 영화 히든도 아니다. 바로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이다. 위의 리스트를 보면 알겠지만 개인적으로 멜로 영화에는 전혀 관심도 없을 뿐더러, 재미있게 본 작품조차 없었다. 사랑을 이야기한 작품들은 언제나 내가 사랑할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작품 만큼은 나의 가슴을 한없이 슬프게 만들었고, '그'들의 사랑에 고개가 끄덕여지게 만들었다. 이안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히스 레저의 기막힌 연기말고도, 이 영화에는 참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그리움 가득한 세월의 흔적들을 잡아낸 그 여백까지. 그 모든것들은 이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후세에 길이남을 걸작으로 남겨지게끔 큰 공헌을 했다. 올 한해 최고의 영화를 넘어서, 10년 20년 후에도 이보다 훌륭한 영화는 등장할 수 있겠지만, 이보다 위대한 러브스토리는 등장하지 못할것 같다. 적어도 나의 눈에는 말이다. 극장의 불이 모두 꺼진체로 자막과 함께 흘러나온 이 음악 또한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여기서부턴 다시 2010년의 현재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의 반복이라 실속은 없는게 사실이지만 21살의 영화적 경험이 굉장히 유복했었구나싶은 선명한 기록이 되는것같아 마음에 든다. 2006년에 그렇게 극장을 드나들던게 괜한 시간소모는아니였나보다, 스무작품을 뽑아도 차고 넘칠 정도로 좋은 작품이 많은 해였다. 이제보니 정말 그렇다. 극장 관람에 얽힌 추억들이 있다. 거창하진 않아도 분명한 추억거리들이 있다. 좋은 작품을 보고 나설때 느꼈던 감정과 온도들의 지속적인 기억들. 기분좋은 느낌의 지속. 그런 영화적 체험의 8할은 이곳에 다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놓고보니 귀찮더라도 매년 매년 이런 식의 기록을 해야할것 같다. 10년이 흘러도 홀로 들춰볼만한 포스팅은 이런 류의 글들이 유일할것 같으니. 정말이지 아마 생각없이 쓰기 시작한 글이지만 예전 목록을 보니 올해에는 꼭 해야겠다싶네.


 * 개인적인 감상뿐 아니라 2006년의 영화들은 2010년과 포개봐도 꽤나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 <음란서생>의 김대우 <열혈남아>의 이정범 <달콤 살벌한 연인>의 손재곤 <천하장사 마돈나>의 이해영, 이들 모두 2010년에 <아저씨> <방자전> <이층의 악당> <페스티발>이란 건강한 둘째를 낳았다. <페스티벌>은 아쉽게도 이른 이별을 맞았지만 4명의 감독들 모두 제 자리에서 튼실한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것 같아 참 기분이 좋다. 그리고 <사생결단>의 모난 부분을 완벽히 세공해낸 류승범,황정민의 재회 <부당거래>도 연상된다. 마지막으로 <배트맨> 스리즈를 발판 삼아 자신의 욕망을 순차적으로 표현해내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프레스티지> 역시 두번째 욕망인 <인셉션>과 정확히 겹친다.


 또 글이 길어졌지만 결론은 조만간 2010년 영화를 대상으로 제 2회 나름 진지한 시상식을 해보겠다는, 뭐 그런 이야기.


포스터/포스터 아트 MOVIE POSTER OF THE WEEK

2010. 12. 5. 17:45 Film Diary/Link


 포스터나 포스터아트에 꽤 관심이 많은 편이다. 영화에서 파생된 모든 요소들 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녀석이니깐. 몇몇 웹페이지를 돌아다니며 영화뉴스 사이에 간헐적으로 소개되는 이미지들을 소개받곤 했었는데 전문적으로 포스터/포스터아트만을 소개하는 괜찮은 공간을 발견해 소개하고자 한다. 
 
 일전에 영화에 관한 생각들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소로 소개한바 있는 MUBI에 자리한 공간이다. Adrian Curry가 정기적으로 업로드하는 칼럼이다. MOVIE POSTER OF THE WEEK 이라는 타이틀로 꾸준히 감각적인 포스터와 훌륭한 포스터아트들을 성의껏 소개하는 곳이다. 



 언뜻 살펴보았지만 확실히 매력적인 곳이다. 나역시 꾸준히 방문해보고자하니 포스터와 관련된 미술이나 이미지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한번씩 들려보시길. 세상엔 뭐이리 이쁜 이미지들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은지. LINK -  MOVIE POSTER OF THE WEEK





스콧 필그림 (Scott Pilgrim Vs.The World) - 천재감독의 상상놀음

2010. 12. 3. 14:48 Film Diary/It scene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으로 봤을때 영화속 특수효과는 두가지 용도로 갈린다. 현실성을 대하는 극명한 태도차이. 환상이나 상상을 시각화하여 그럴듯한 현실로 동화시키거나 세세한 디테일을 잡아 극의 흐름을 단단히 하는 방식들은 표현상의 차이는 있지만 이것들은 분명 현실을 쫓는 특수효과의 영화적 모험이다. 대척점에 서있는 또하나의 방식은 지극히 영화적인 상상력을 표현하기 위해 오히려 현실을 내쫓는 특수효과의 방어적 실험이다. 작정하고 놀아보자는 감독의 단단하지만 우스꽝스러운 결단이랄까나. (조금 억지스런 거시적 시점을 대입해보면 이런 실험에는 비정상적 편집 수법까지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2010년 최고의 기대작이였건만 국내 개봉 불발이란 비극적인 처우로 인해 통한의 방구석 관람을 해야만했던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의 경우는 신인류의 대중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선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독특한 실험이었다. 영화란 매체에 만화적 상상력을 더해 결국엔 게임으로 만들어버리는 에드가 라이트의 기묘한 실험은 타고난 감각과 현명한 연출력을 통해 현실을 거세한 방어적 실험의 통쾌한 21세기적 모범답안을 남겼다. 이상하게 극장 안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너나 할것 없이 진지한 현실주의자가 되버리는 고리타분한 관객들에게 잘만든 환상놀음이 얼마나 현실적인 오락거리가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좋은 예시가 됐단거다.

 

   
 이런 표현방식에 흔히 따라붙는 과유불급의 꼬리표를 시원하게 떼어낸 일본영화가 떠올라 같이 이야기 해보고자한다. 오바야시 노부히코 감독의 77년작 <하우스>. 25년을 살면서 가장 기이했던 영화적 체험은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홀리 마운틴>과 오바야시 노부히코 감독의 <하우스>, 이 두가지 였다. 이건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른다해도 웬만해선 변하지 않을것같다. 허나 전자가 컬트와 영화사적 의미 사이에서 진동하는 괴작이라면 후자는 컬트와 상업를 관통하는 오락영화이기에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와 합이 잘 맞는것 같아 <하우스>를 택했다. 

장난처럼 흔들리고 싱겁게 부유하는 이미지들이 음악과 상상력을 만나 얼마나 즐거운 순간으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에드가 라이트와 오바야시 노부히코는 33년의 간극 사이에서 비슷한 답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을 한데 묶은 이유는 강력히 추천할만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뭔 거창한 이야기를 하고자하는게 아니다. 과잉과 상상이 얼마나 좋은 유희인지를 이야기하고 싶은거다. 괜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두 작품을 굳이 비교해보자면 몇몇 공통점과 극명한 차이점이 존재하긴 한다. 광고계의 유능한 디렉터가 영화계로 뛰어든 경우와 영국의 재능있는 신예가 헐리웃으로 건너온 경우는 비슷한 출밤점이라 볼 수 있겠지만 노부히코의 실험이 기괴함이 뭉쳐 기적같은 빛을 발한 괴짜의 기념비라면 에드가 라이트의 실험은 철저하게 재능으로 재단된 천재의 농담이랄까나. 



 아래에는 <하우스>의 클립 2개를 올려놨다. 첫째는 도입부에 등장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고 아래는 감상자의 혼을 쏙 끌어당기는 매혹적인 오프닝이다. 에드가 라이트의 기민함과 천재성에 감탄하느라 개념없이 <하우스>를 상대적으로 비하한 느낌이 살짝 나지만 이 작품 역시 너무나 사랑한다. 오리지널리티와 신선한 충격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33년전의 기술력이라 수명을 다한 몇몇 효과들도 존재하지만 불멸의 이미지들도 가득한 작품이니 기회가 된다면 꼭 봤으면 한다. 당신도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우스>안에서 나카시마 테츠야 (불량공주 모모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고백) 도 이명세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 솔직히 <Nick And Norah's Infinite Playlist> 에서부터 식상함이 언뜻 보이던 마이클 세라의 청춘 심볼은 <Youth in revolt>로 종말을 고할줄 알았다. 이번 작품을 보면서 다시 느꼇다. 역시 찌질한 청춘엔 너만한 남자가 없어 !  <Juno>의 흐느적거리는 동네 청년을 누가 또 소화하리.   

이층의 악당 - 브라보 손재곤

2010. 11. 27. 14:55 Film Diary/Review


 

 

브라보! 웬만해선 간단한 후기조차 쓰지 않는 요즘 <이층의 악당>은 추천해 마땅할 귀한 손님이기에 이렇게 짧게나마 기록하고자 한다. 시간은 4년전으로 돌아간다. 막 대학에 들어갔을 무렵 학교가 끝나면 집이 아닌 극장으로 향하던 때가 있었다. 티끌만한 자유를 영화관람에 모두 퍼붓던 시절. 그냥 걸려있는 영화는 아무생각없이 보던 때가 있었다. 영화인의 이미지가 전무했던 최강희씨. 주역보단 조역이 어울리던 박용우씨. 난생 처음 보는 감독님의 이름. 허나 영화는 충격 그 자체였다. 물론 3년이 흘러 <차우>를 보며 그 기록이 깨지긴 했지만 극장에 앉아 그렇게 많은 웃음을 쏟아낸건 처음이었다.

 몇년의 시간이흘러도 극장을 나설때 마주했던 분위기를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 명확한 날자와 시간은 몰라도 적어도 그날의 온도와 풍경 정도는 그리게 해주는 영화들이 있다. 내겐 이런 것들이 인상적인 영화와 그냥 흥미로운 영화를 가르는 기준이다. <달콤 살벌한 연인>을 등지고 집으로 향하던 밤의 풍경과 온도가 아직도 선할걸 보면 이건 분명 충격이었나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층의 악당>은 그의 뜨거운 데뷔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란 거다. 답보도 아니다. 그의 유머는 인물의 입에서 몸 전체로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단순히 상황의 단편적인 나열 속에 재치있는 현대적 감각을 입히던 방식을 벗어나 이야기를 쌓고 사람을 그려 그 속에 자연스레 희극적 충돌을 끌어내는 발전을 이뤄냈다. 사실 <달콤 살벌한 연인>은 젊은이들이 열광할만한 재기넘치는 소품같았다. <이층의 악당>을 보고나니 <달콤 살벌한 연인>은 데뷔작이라는 한정된 무대에서 자신의 수많은 재주 중 한가지를 특화시킨것 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충무로에서 가장 훌륭한 농담꾼이 되었지만 그의 재주는 단순히 3분마다 하나의 장치를 심어 관객을 어떻게든 움직여보겠다는 웃음의 강박에 집중하기 보단 이야기와 캐릭터의 완성도 속에 여유롭게 농을 이끄는, 이야기하는 재간꾼으로 확장되고 있다. 명확한 작가의식을 지닌 손재곤 감독님의 두번째 농담은 빈도를 줄이는 대신 농도를 높이는 방식이었다. 범죄와 추리소설에 관심이 많다던 그의 이야기는 비록 단순한 컨셉으로 시작되지만 분명한 기둥으로 작용된다. 이번 작품을 유심히 보면 말장난의 유희가 이야기를 삼켰던 전작에 비해 큰 틀안에서 배우를 현명하게 활용하며 줄기를 올곧게 이어가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건 코미디 이외의 장르 역시 언제나 염두해두고 있다는 손감독에 대한 성장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2번째 영화가 <달콤 살벌한 연인>만큼 웃기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건 원플러스 원 이나 금상첨화와 같이 눈물나게 고마운 부분이다. 독립적인 대사의 활용보단 웃음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방식이지만 여전히 그의 대사들은 살아쉼쉬고 있다. 대사만 떼어 놓고 보자면 어디에 내놓아도 빛날 수 있는 감각이다. 이번 작품에선 주인공들의 연령에 맞게 현실적인 느낌으로 정제시키긴 했지만 그의 타고난 재주가 어딜 가겠는가.



 물론 정신없이 웃어대긴 했지만 그의 첫번째 농담에는 위험한 부분이 많았다. 흐름에서 지나치게 도드라진 감성들은 관객들의 감각과 어긋날 경우 꽤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이 웃을순 있다해도 객석의 반은 웃고 반은 무덤덤할 경우 감독 입장에선 절반 이상의 실패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작품에서 사람들이 가장 환호하는 '지하실 시퀀스'에 대한 감독의 고민을 들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도 객석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이것은 곧 재앙이기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그의 딜레마는 다행히도 기적같은 코미디를 낳았지만 그의 진지한 고민을 듣고나니 이 사람 꽤나 여유롭게 웃음을 만지는 사람 같았다. 생각을 해보니 4년전에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고 그의 유머는 강도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100 % 에 가까운 명중률을 보여주고 있었다. 언제 사람들을 웃기고 그 호흡은 어느 정도로 조절할지 명확히 꿰차고 있는 여유가 문뜩 느껴졌다. 객석의 반응이 그랬다.

 이젠 마지막이다. 그의 수 많은 장점들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범죄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최고의 극적 분위기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도 웃음기를 어딘가에 유지한다는 것이다. 즐거움을 절대 놓치지 않고 쌓여가는 묘한 긴장감. 앞에서 이야기했던 장르적 확장 가능성도 여기서 기인한다. 물론 7:3에 가까운 분명한 코미디이지만 이 사람 충분히 스릴러적 요소와 코미디의 균형을 맞추는 재주가 있다. 


  요 몇년 기억할만한 명연이 없어 영 아쉬웠는데 배우 한석규의 진가를 2시간 동안 실컷 맛볼 수 있다. 정말 배가 터져 죽을 정도로 실컷. 연출도 대본도 연기도 모든게 훌륭한 작품이었다. 고맙고 반가워서 이렇게 정신없이 생각들을 나열해봤다. 만약 이 글을 보고 단 한명이라도 극장에 갈 마음이 생긴다면 손감독님에게 받은 2시간의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되갚는 일이 되겠지.

어제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새벽 2시. 이영음에는 손감독님이 나왔다. 역시나 재치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이야기들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매그놀리아>에 대한 언급은 강렬하게 다가왔다. 감독님이 아닌 이주연 아나운서의 입에서 먼저 나온 이야기지만 <이층의 악당> 후반부 주,조연 모든 배우의 같은 시각 다른 일상을 비추는 짤막한 시퀀스는 <매그놀리아>의 이것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코미디를 연출하는 사람으로서 조심스러운 부분이기에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다니지는 않지만 이주연 아나운서의 예리한 질문에 시인하셨다. 극장에 앉아 같은 예상을 했던 사람으로서 뭔가 반가운 이야기였다. 유머러스한 말 속에 언뜻 비치는 손감독님의 작가적 마인드는 그의 차기작을 기대하게 만든다. 다른 장르가 되도 충분히 능력을 보여줄 사람같다. 기대해본다. 만약 그가 3번째 영화로 코미디를 들고 온다면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사회에서 그 작품을 볼것이다. 믿을 만한 재간꾼의 코미디 영화를 즐기기엔 돈 한푼 안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은 이들이 가득한 시사회장이 최적의 장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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