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영화제를 통해 감상한 후 대략 한달만에 <파수꾼>을 다시봤습니다. 3월 3일은 개봉일이였기에 감독님과 배우분들이 모두 함께한 자리에서 GV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동진 평론가의 입을 빌리자면 관성적으로 영화를 봐오던 자신에게 정신을 번뜩 들게한 작품이라 칭했습니다. 그러면서 소년성에 대한 이야기를 덫붙였습니다. 그간의 한국영화들이 남고생의 이미지를 스테레오 타입속에 가둬 소년성의 착취와 나태함을 반복해왔다면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은 대한민국의 남고생으로서의 소년성을 정확하고 깊이있는 시선으로서 포착해냈다는 것입니다. 바로 소년성에 대한 진솔한 직시가 이 영화의 첫번째 장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이 작품이 한 시절의 순간적인 사건으로서 기억되는건 조금 억울한 일인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 인간관계 사이의 희미한 안개와 모호한 경계를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독역시 인터뷰를 통해 배경설명의 최소화를 위해 그들에게 교복을 입혔다고 언급했습니다. 소년성에 대한 뛰어난 고찰이 눈에 띄지만 사실은 학창시절이나 사회인으로서나 별다른 변혁이 없는 한국사회의 외롭고 애같은 우리 모두들에게 우정과 관계에 대해 작지만 날카로운 메스를 가져대는 것입니다.
막상 개봉을 하니 영화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습니다. 5000만원의 예산으로 미묘한 관계와 사소한 갈등을 쫓아 굴레를 탐구하는 이 작품은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영화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뛰어난 기술적 성과도 놀라운 이야기의 발견도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친구의 관계속에서 2시간을 팽팽히 끌어가는 윤성현 감독 특유의 탁월한 화법을 발견했습니다. 깊이가 상당한 작품입니다. 감히 작품성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준은 아니지만, 소집단 내에서 피고지는 갈등의 골을 이만큼 섬세하고 짜임새있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건 진실된 인물에게 살아있는 대사를 부여한 작품은 이 영화가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보통의 존재를 내세우지만, 그 어느 영화보다 깊이있게 관계의 미묘한 떨림을 포착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기태라는 소년의 자살과 함께 시작됩니다. 기태의 아버지는 아들이 아닌 학생으로서의 기태를 조심스럽게 추적합니다. 그리고 주변부에 흩어진 갈등의 조각들을 하나둘씩 주어가며 평생을 함께할 물음표를 조금씩 펴가려 합니다. 기태, 백희, 동윤. 세명의 친구는 우정과 오해 사이에서 서로를 밀치고 잡아 당깁니다. 그렇게 흘러가는 2시간. <파수꾼>은 기태의 자살 이면에 존재하는 가장 보통의 존재를 발견합니다.
인디와 상업을 구분짓는건 괜한 짓인것 같습니다. 형편없는 나태함과 흘러넘치는 자의식으로 완성된 상업영화도 수두룩한 요즘입니다. 우리모두가 한번쯤은 겪어보거나 몇번쯤은 지켜봤을 우정에 관한 희미한 질문을 담은 <파수꾼>은 정직한 연출과 진정성있는 연기를 통해 대중화법에 익숙해진 일반 관객들에게도 씁쓸(하지만 잊고 살아선 안될)한 향수와 영화적 재미를 동시에 가져다줄 수 있는 수작입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흔들리는 이미지를 선사합니다. 인물을 담은 모든 장면이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첫째 이유는 인물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동행이거나 아직은 경험이 부족한 신인 연기자들에게 가장 자유롭고 즉흥적인 연기가 가능하도록 배려한 감독의 과감한 선택같았습니다. 이에 관한 질물을 하고 싶었지만, 촉박한 시간탓에 혼자만의 추측으로 남기게 되었지만, 인터뷰를 읽어보고 GV의 내용을 경청해 보니 아마도 그 이유에서 윤성현 감독은 인물의 감정을 쫓아 프레임을 움직인것 같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영화를 추천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어느 책을 통해 예술의 투명성에 관한 짧은 생각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현미경을 들이댄 분석과 비평보다는 삶의 양식과 행복을 위한, 응시 자체로서의 감동에 귀기울이게 됐습니다. 그래서 위의 글들은 별다른 영화적 분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추억속 친구들의 사소한 단면과 희미한 성향을 버무린 우리네 관계와 우정을 떠올려보고 싶으신 분들은 한번쯤 시간내어 감상하시는 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두번째 감상이 더욱 인상적이었지만, 차마 그렇게까지는 추천하지 못하겠습니다.
영화의 문을 열어준 박정민씨. 모두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완성시켜준 이제훈씨. 결국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는 서준영씨. 모두가 훌륭한 연기를 펼칩니다. 그야말로 발견의 장입니다. 그중에서도 이제훈씨의 연기는 분명한 발견입니다. 모두가 기억하고 기대해야할 확실한 발견입니다. 아직은 낯설지만 곧 익숙해질 이름입니다. 좋은 영화를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파수꾼>은 2011년 가장 반가운 한국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