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전파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영화 프로그램은 꽤 많은 편이다. 그러하기에 수적인 측면에선 별다른 불만은 없다. 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부류의 방송들이 창의적 기획과 팬들과의 소통에 있어 여전히 답보상태에 빠져있단게 아쉬울 뿐이다. 방송의 컨텐츠와 실용성에 있어 얼마만큼의 노력이 투자되며 이 기획들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수용자들에게 올바른 길잡이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영화팬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가이드가 몇이나 될지 생각해보면, 우열을 가리기전에 우리는 다섯손가락을 채 굽히지 못할 것이다. TV속 영화소개 프로그램들은 날이 갈 수록 영화팬들을 밀어낸다. 오히려 그들의 타겟은 영화에 취미 이하의 흥미를 보이는, 그렇다고 영화를 증오하지도 않는 대다수의 관객들인것 같다. 다행히 라디오란 매체는 그 속성만큼이나 속깊은 마음으로 영화팬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 일상의 어긋난 취향이 교합되는 공간으로서의 매력이 존재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위에 언급한 문제제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영화음악이란 주제를 걸고 감상적인 위안과 피상적인 정보를 주고받을 뿐이지, 깊이와 열정에 있어선 아쉬움이 남는게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지난 1월 6일 부터 이주연의 영화음악(MBC fm 4u 91.9)을 통해 방송되고 있는 김홍준 교수의 <고전영화의 발견>은 보석처럼 빛나는 기획이라 생각한다. 통칭 이영음으로 표현되는 이 새벽 영화음악 방송은 영화의 거죽만 둘러쓴 여타의 심심한 프로들에 비해 꽤 알찬 기획을 선보이며 기다림의 노고를 보상해주고 있다. <서편제>의 조감독 출신이자 <장미빛 인생>의 감독, 영화계 이곳 저곳에서 각종 위원장과 프로그래머를 역임한 이이자 현재 한예종의 교수인 김홍준. 앞에 언급한 수 많은 수식어보다 더욱 중요한건 바로,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영화광. 이거다. 김홍준 교수는 매주 목요일 새벽이면 자신의 지식과 애정을 가득담아 <고전영화의 발견>의 장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곳에서 매주 1편의 영화를 성의있게 소개하며, 감독의 최소한의 족적과 본 작품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30분 속에 녹여내려 한다. 고전이란 영화의 진화를 가능케 한 영화사의 전범이자 어쩌면 상업으로만 남을 수 있던 영화란 매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힘겹게 끌어들인 역사의 흔적이다. 이런 거대한 작품들을 30분의 순간에 온전히 담는단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는 듣는이로 하여금 감사한 마음이 일렁일만한 수준의 정성으로서 그 한계 메우려한다.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자리가 아니기에 김교수는 사전적 통상적 범위를 넘어 흥미의 끈을 놓치지 않을 수준에서 영화의 목록을 채워가고 있다. 초창기부터 심하면 90년대 까지의 영화를 고전으로 규정하고 이곳에서 소개하겠다는 약속은 고전영화의 소중함과 관람의 필요성을 설득시키기 위한 고민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소수를 위한 탐구보단 다수에게 고전의 가치를 알리자하는 본 프로그램의 취지와 노력은 적당한 선에서 알찬 정보를 안겨주고 있다. 다소 지나치게 유명한 작품 위주로 목록이 채워져가는 경향도 있지만, 지독한 영화광의 차고 넘치는 이야기를 듣고있자면 이미 영화를 본 이들이라도 마치 DVD 의 서플을 귀로 감상하고 있는듯한 묘한 2차적 즐거움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본 카테고리를 통해 매주 방송되고 있는 <고전영화의 발견>을 월 단위로 묶어 포스팅을 할 생각이다. 라디오란 매체의 접근성과 더욱 열악한 다시듣기의 불편함이 맘에 걸려 말로만 추천하기 보단 직접 눈앞에 가져다줄 생각이다. 적당한 경계에서 의미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고전영화의 발견>을 통해 발견혹은 회상을 경험해보길 바란다.
2001년 씨네 21 <김홍준 - 정성일 대담> 을 통해 김홍준 교수는 현존 최고의 감독을 묻는 질문에 존 포드, 오스 야스지로, 루이스 브뉘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로베르 브레송 중 한 사람이라도 살아있다면 주저없이 꼽겠지만 거장들의 세기가 저문 마당에 그 답은 쉽게 나올 수 없을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가 생각하는 고전영화는 어떤 의미일지, 한번 들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