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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유 - 노래라는 몸짓

2011. 4. 24. 16:01 Film Diary/It scene



이 땅의 영화계에서 가장 소외된 장르중 하나가 바로 뮤지컬이 아닐까싶다. 최초의 뮤지컬영화 <청춘 쌍곡선 (1956)>을 시작으로 <삼거리 극장>에 이르기까지 (삼거리극장도 벌써 5년전에 본 영화다. 그 이후론 그럴싸한 시도조차 없었다.) 우리의 기억속에 고스란히 남은 넘버와 씬들은 몇이나 될까. 지금 이곳에서 소개할 영상, <후아유>속 조승우의 소박한 퍼포먼스는 아이러니하게도 21세기에 갓 들어선 청춘남녀들의 앳된 관계를 다룬 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영화팬들에겐 가장 인상적이고 친숙한 음악적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고 본다). 이건 쫌 슬픈일이 아닐까 싶다. 간헐적으로 시도라도 이뤄진다면 아쉬움이 덜한텐데, <추격자>가 스릴러의 불씨를 당겻던 것처럼 대중적이고 환상적인 뮤지컬 영화가 하나 등장하지 않는 이상 이대로 희미하게 사라져 버릴것만 같아 정말 아쉬울 뿐이다. 

주제로 돌아와, 비단 뮤지컬 장르와의 비교를 떠나서라도 조승우가 이나영을 위해 윤종신의 '환생'과 긱스의 '짝사랑' 나미의 '유혹하지 말아요'를 연달아 부르는 장면은 노래라는 몸짓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선물과 위안이 될 수 있을지 보여주는 예시일 것이다. 라이브 스피커라니, 벌써 추억이 된듯한 단어다. 그러고보니 9년이 흘렀다. 좋은 배우들의 시작점을 볼 수 있는 야심찬 작품이니 아직 감상하지 못한 분들은 한번쯤 시간내어 봐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다시 본 <후아유>는 흥미로운 부분이 꽤나 많았다.    



스콧 필그림 (Scott Pilgrim Vs.The World) - 천재감독의 상상놀음

2010. 12. 3. 14:48 Film Diary/It scene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으로 봤을때 영화속 특수효과는 두가지 용도로 갈린다. 현실성을 대하는 극명한 태도차이. 환상이나 상상을 시각화하여 그럴듯한 현실로 동화시키거나 세세한 디테일을 잡아 극의 흐름을 단단히 하는 방식들은 표현상의 차이는 있지만 이것들은 분명 현실을 쫓는 특수효과의 영화적 모험이다. 대척점에 서있는 또하나의 방식은 지극히 영화적인 상상력을 표현하기 위해 오히려 현실을 내쫓는 특수효과의 방어적 실험이다. 작정하고 놀아보자는 감독의 단단하지만 우스꽝스러운 결단이랄까나. (조금 억지스런 거시적 시점을 대입해보면 이런 실험에는 비정상적 편집 수법까지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2010년 최고의 기대작이였건만 국내 개봉 불발이란 비극적인 처우로 인해 통한의 방구석 관람을 해야만했던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의 경우는 신인류의 대중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선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독특한 실험이었다. 영화란 매체에 만화적 상상력을 더해 결국엔 게임으로 만들어버리는 에드가 라이트의 기묘한 실험은 타고난 감각과 현명한 연출력을 통해 현실을 거세한 방어적 실험의 통쾌한 21세기적 모범답안을 남겼다. 이상하게 극장 안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너나 할것 없이 진지한 현실주의자가 되버리는 고리타분한 관객들에게 잘만든 환상놀음이 얼마나 현실적인 오락거리가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좋은 예시가 됐단거다.

 

   
 이런 표현방식에 흔히 따라붙는 과유불급의 꼬리표를 시원하게 떼어낸 일본영화가 떠올라 같이 이야기 해보고자한다. 오바야시 노부히코 감독의 77년작 <하우스>. 25년을 살면서 가장 기이했던 영화적 체험은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홀리 마운틴>과 오바야시 노부히코 감독의 <하우스>, 이 두가지 였다. 이건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른다해도 웬만해선 변하지 않을것같다. 허나 전자가 컬트와 영화사적 의미 사이에서 진동하는 괴작이라면 후자는 컬트와 상업를 관통하는 오락영화이기에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와 합이 잘 맞는것 같아 <하우스>를 택했다. 

장난처럼 흔들리고 싱겁게 부유하는 이미지들이 음악과 상상력을 만나 얼마나 즐거운 순간으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에드가 라이트와 오바야시 노부히코는 33년의 간극 사이에서 비슷한 답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을 한데 묶은 이유는 강력히 추천할만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뭔 거창한 이야기를 하고자하는게 아니다. 과잉과 상상이 얼마나 좋은 유희인지를 이야기하고 싶은거다. 괜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두 작품을 굳이 비교해보자면 몇몇 공통점과 극명한 차이점이 존재하긴 한다. 광고계의 유능한 디렉터가 영화계로 뛰어든 경우와 영국의 재능있는 신예가 헐리웃으로 건너온 경우는 비슷한 출밤점이라 볼 수 있겠지만 노부히코의 실험이 기괴함이 뭉쳐 기적같은 빛을 발한 괴짜의 기념비라면 에드가 라이트의 실험은 철저하게 재능으로 재단된 천재의 농담이랄까나. 



 아래에는 <하우스>의 클립 2개를 올려놨다. 첫째는 도입부에 등장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고 아래는 감상자의 혼을 쏙 끌어당기는 매혹적인 오프닝이다. 에드가 라이트의 기민함과 천재성에 감탄하느라 개념없이 <하우스>를 상대적으로 비하한 느낌이 살짝 나지만 이 작품 역시 너무나 사랑한다. 오리지널리티와 신선한 충격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33년전의 기술력이라 수명을 다한 몇몇 효과들도 존재하지만 불멸의 이미지들도 가득한 작품이니 기회가 된다면 꼭 봤으면 한다. 당신도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우스>안에서 나카시마 테츠야 (불량공주 모모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고백) 도 이명세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 솔직히 <Nick And Norah's Infinite Playlist> 에서부터 식상함이 언뜻 보이던 마이클 세라의 청춘 심볼은 <Youth in revolt>로 종말을 고할줄 알았다. 이번 작품을 보면서 다시 느꼇다. 역시 찌질한 청춘엔 너만한 남자가 없어 !  <Juno>의 흐느적거리는 동네 청년을 누가 또 소화하리.   

컷(Cut) - 박찬욱과 이병헌

2010. 11. 24. 13:43 Film Diary/It scene


너 잘 들어둬라. 재능없는 예술가는 말야 그게 뭔줄알아? 뭐같애? 그건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nothing. 그건 있잖아... 구멍없는 반지나 무슨 네모난 공같은 거야. 알어?


<컷>을 무척 사랑한다. <달콤한 인생> 이후 김지운 감독님과 함께하는 일이 잦아졌지만, 개인적으로 이병헌이란 배우는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극장에서 <악마를 보았다>를 멍하니 구경하다 문득 이병헌씨의 얼굴엔 생활이란게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지극히 영화적인 얼굴, 장르적 색체가 강한 영화를 위한 얼굴로 변해간다는 느낌이다. 확실히 10년전의 이병헌과는 다른 사람같았다. <해피 투게더>에서 보여줬던 생활적인 인간미보단 낯선 무정형의 이미지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작품 선택에 의한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비현실적인 영화적 이미지가 강해진 느낌이다. 

 그의 낯선 얼굴과 차가운 표현력은 박감독님의 냉소적 세계와 잘 어울릴것 같다. 두번의 작업이 있었지만 모두 아쉬운 측면이 있었다. <공동 경비구역 JSA>는 박감독님의 기술적인 측면은 맘껏 뽐낼순 있었어도 저만의 개성을 표현하기에는 조심스런 자리였다. <올드보이>에서의 조우가 아쉽게 어긋난 후 <컷>을 통해 재회한 두 사람의 조합은 50분 가량의 중편이었기에 미완의 아쉬움으로 끝맺었다. <쓰리 몬스터>의 마지막 이야기인 <컷>은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 작품이긴하다.

 일단 단독장편에 비해 상업적 부담의 짐이 덜한 자리였기에 박감독님 특유의 고약한 우스개소리를 마음껏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무엇보다 박감독님의 뮤지컬 넘버를 어디에서 구경하겠는가. 영화 외적으로도 재미난 부분이 있다. 일단 영화속 영화로 등장하는 뱀파이어 물은 <박쥐>에 대한 예고이자 예행연습이었다. 그리고 극중 주인공인 영화감독 류지호의 이름은 류승완/김지운/봉준호/허진호 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하니 이 역시 흥미롭다.

 다시 배우 이병헌과 박찬욱감독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사족을 잘라내고 오직 극한의 무대만을 조명하고 있는 이 작품은 이병헌의 극적인 얼굴을 잘 활용한 예라고 생각한다. 내게 이런 믿음을 심어준 장면이 하나 있어 소개한다. 영화 중반부 쯤 등장하는 류지호의 시린 속내이다. 이병헌과 박찬욱의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보여주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박찬욱의 영화속에선 이병헌의 얼굴은 배로 냉담해지고, 이병헌의 입을 빌린 박찬욱의 영화는 배로 장르적이다.    

 머리가 안좋아 영화 속 대사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재능없는 예술가에 대한 냉소적 시각은 유일하게 떠올리곤 하는 대사다. 인용까진 아니여도 이런 저런 무재능을보며 자주 연상되는걸 보니 확실히 이 장면이 맘에 들었나보다. 결론은 하나다. 두분이 손잡고 어서 한 작품 하시길.  

<노라 없는 5일> 노라가 내게도 남겨준 것

2010. 11. 23. 04:37 Film Diary/It scene

(다짜고짜 엔딩부터 이야기한다는게 맘에 걸리긴하지만, 인생의 축으로 남을 마침표이기에 감히 올려본다. 마냥 좋았으며 정말 감사했기에 진지하게 노라없는 5일을 떠올려본다)

1일, 영화 이야기하는 날. 노라의 자살로 인해 모이게된 그녀의 주변부를 5일간 지켜보는 이야기다. 5일. 그녀와 완전히 이별할 수 있는 날까지 남은 시간은 5일. 종교적 관습과 절묘하게 맞물려버린 그녀의 장례일은 기막힌 우연같이 느껴지지만, 사실 이 모든건노라가 준비한 만찬의 초대장이었다.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가깝고도 먼 전남편 호세는 노라가 준비한 이별 만찬의 첫번째 손님이다. 노라를 바라보는 애증의 시선. 그렇게 <노라 없는 5일>은 시작되며 하나 둘씩 그녀 주변의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다. 역시 가족이 있는곳엔 갈등이 있었으며, 위기가 있는 곳엔 본심이 드러난다. 그녀의 죽음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이래저래 시간은 흘러가고 호세는 그녀가 준비한 마지막 유언을 체험한다. 유언의 체험. 이 짧은 문장으로<노라 없는 5일>의 모든것은 이해된다. 그녀는 지상에서 두발을 떼는 바로 그 순간 현세인은 해내기힘든 화해의 기운을 빚어낸다. 하루가 지나가도 역시나 이곳에 머무르게될 서로가 서로를 껴안길, 떠나는 내가 머무를 네게 새로운 빛을 선사하길, 그녀는 그렇게 서로를 붙이고 각자를 격려한다. 노라의 5일은 예상대로 남은 이들의 삶을 축복한다.   

2일, 엔딩을 곱씹는 날. 마지막 장면이다. 워낙 좋은 영화이기에 작품 자체를 잊진 않겠지만, 영화의 엔딩만큼은 고요한 상처로서 오랬동안 내 몸에 남을것같다. 애증이랬다. 호세가 노라를 바라보는 첫째날의 시선은 애증이랬다. 5일간 호세가 체험한 노라의 마지막 유언은 늘그막한 새로움을 선물한다. 아들과 지인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가 뻔뻔하고 가증스러 잠시 숨겨뒀던 호세의 애증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아들과 그녀의 가까운 친구에게 호세는 편지를 돌려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노라의 마지막 편지. 호세가 편지를 쫓고, 편지가 호세를 부르는 곳에서 그녀의 진짜 마음이 흘러나온다. 서로를 원망하고 그리워했던 노라와 호세 사이에 어떤 마지막 대화가 오갔을까. 노라의 음성도 기대할 수 없다. 5일간 많은 것들을 받아온 호세의 얼굴위로 노라의 진심이 밝게 비친다. 슬며시 보이는 미소와 살짝 찌푸려진 눈살 속에 많은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3일. 영화를 삼켜본 날. 2010년의 어느 가을밤, <노라 없는 5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새벽에 올림픽 대로 위에서 꺼이꺼이 울었었다. 사실 관 밖에서 시작된건 아니었다. 중간 중간 호세의 고집스런 얼굴 뒤로 뵈는 유약한 근심때문에 많이 울었었다. 이상하리만큼 많이 울었다. 외로운 노년의 처지가 뭐가 그리 슬펐는진 모르겠지만, 항상 마음을 옥죄는 습관적 거리두기가 부른 불안 때문이었을까. 계속 밀쳐내기만 하는 적당함에 고민하던 찰나였기에 그랬을까. 소중한 것과 소중한 사람도 몰라본채 어리석고 쓸쓸하게 늙어갈까봐 불안해하던 찰나였기에 그랬을까. 여튼 강요없는 정서에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본적은 없었다. 

4일, 25년을 돌아본 날.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가 있다. 분명히 있다. <노라 없는 5일>은 쓸쓸한 미래를 불안해하는 내겐 더없이 완벽한 거울이었다. 사실 감상이 마음속에 들어와 회오리를 치며 자극할때는 작품과 가슴사이에 명확한 연결고리가 보이진 않는다. 단지 호세의 과거가 나의 미래가 될까 무서웠고, 호세의 오늘이 나의 미래가 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이런 간략한 문장들은 내 맘에 틀어박혀 적잖은 고민을 던져주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내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남을지 생각해봤다. 타인 눈속의 나를 생각해봤다. (위 문장 아래로 꽤나 긴 글을 썼었다. 그런데 문득 맥락없는 자아탐구가 쌩뚱맞게 느껴졌다. 블로그란 공간의 특성이 나에대한 진지한 고민을 잠시 멈추게 했다. 호숫가에 앉아 진지하게 떠올려본 <노라 없는 5일>과 내 인생의 상관관계는 이렇게 흐지부지 마무리 될것 같다. 꽤 진지한 생각을 이어 갔었는데 공개된 공간에 올려다 놓으니 도통 어울리지가 않는것 같았다. 앞으론 따로 일기를 써야할것 같다. 점점 빠르게 늙어가는걸 느낀다. 결국 이 작품을 통해 과거를 훑어보지 못한 꼴이 되버렸지만 적어도 내 미래에는 지대한 영향을 미칠것임을 알기에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황급히 마무리해본다.)   

마지막 5일. 마지막 날은 제목조차 끄적이지 못할 미정이다. 이 작품이 내게 선물해준 삶의 무게 정도만 기억하고 있다가 먼 훗날 많은 일들을 체험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후 홀로 곱씹으며 고민 해봐야겠다. 참 좋다. 이 영화. 위트있는 드라마에 펑펑 울어본 것도 좋은 추억이 될것같고 조금은 덜 어리석게 하루 하루를 체우게 해줄 좋은 경험도 될것 같다. 노라는 가족 뿐 아니라 한국 땅에 있는 나에게도 많은 것들을 남기고 떠난것 같다. 실존하진 않지만 좋은 곳으로 갔기를. 


<워터 보이즈> - 쾌활함에 도취

2010. 11. 20. 22:52 Film Diary/It scene



'유치'라는 단어로 단정짓기 쉬운 일본 코미디영화 속에는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든 따스한 명랑함이 스며있기에 쉽사리 그 가벼움을 무시할 수가 없다. 한없이 가볍지만 결코 간과할 순 없는 감정의 살랑거림들. 배우들의 과장된 몸짓을 보고, 뻔뻔한 거짓부렁들을 듣고 있자면 본능적으로 불평과 불만들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것 같다가도 그네들의 소품같은 일상과 만화같은 긍정성을 보고있자면 희망가득한 따스함들이 금세 쾌활한 신기루로 변해 몸과 마음을 아늑히 감싸준다. 내일 아침이면 마주할 척박한 현실과 너무나도 다름을 꿰뚫고있기에 그다지 위로가 안될것임을 느끼면서도, 그 무한한 긍정성과 희망의 조각만이라도 잃지 말고 맘 깊은곳에 간직해두라는 그네들의 조언이 인생의 해가되진 않을것 같기에 풋내나는 환상정도는 어딘가에 챙겨두는 편이다.

 처음으로 이런 쾌활함에 도취됐었던 과거를 생각해본다. 일본문화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2000년대 초반에 접한 그들의 감성은 약간 놀라웠다. 뭐랄까나. 그간 생각해온 일본의 얼굴과 많이 다르다는 느낌. 듣고 떠올려온 일본의 이미지는 나를 위해 남을 먼저 생각하는 거리감이었다. 지금에와서 생각해봐도 별로 다르진 않다. 그들에게 느끼는 이미지는 비슷하다. 단지 이런 저런 영화들을 보다보니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홀로 규정해본 결론이 생겼을뿐이다. 저들은 현실에 못다핀 꽃망울을 사각대는 종이와 꿈결같은 필름위에 만개하려는 것이 아닐까. 사실 일본 문화라곤 몇권의 책과 짧은 교양수업을 통해 훔쳐본게 전부라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것은 그 어느 민족보다 쾌활한 상상을 능숙히 해낸다는 것이고, 난 그게 참 맘에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워터 보이즈>를 참 사랑한다. 처음 접했을때 굉장한 느낌을 받았었다. 순진하리만큼 단순한 이 영화가 선사해준 행복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영화에 대해 깊은 생각은 안해보던 시절, 영화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려준 작품이었다. 도대체 뭘까 이 설레는 행복감은... 8년전 감상이지만 아직도 선하다. 야구치 시노부의 원더랜드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구입 1호 DVD도 <워터 보이즈>였다. 여러 의미에서 처음의 이미지가 강한 작품이다. 현실도 악역도 없는 야구치 시노부의 원더랜드는 그린벨트다. 청정지역에서 호흡하는 2시간의 여행. <스윙걸즈>로 이어진 능청스런 긍정성과 <해피 플라이트>로 이어진 시야의 확장, 모두 맘에든다. 꾸준하게 '현실에선 꿈도 못꿀 환상도'를 그려줬으면한다. 언제라도 그의 원더랜드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다. 저 영상을 다시보니 설렘이 또한번 맘을 두드린다.  




깃 - 갑작스런 환상

2010. 11. 14. 04:35 Film Diary/It scene


 <깃>은 여러모로 소중한 작품. 마음에 창을 내어 굳어버린 상식을 따스히 녹여준 영화. 20대에 들어선 어느날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준 작품. 흐리면 흐린데로 비오면 오는데로 자연에 기대어 만들어낸 투박함이 가르쳐준 진정한 쉼. 기술과 꾸밈보단 아무것도 없는 자연스러움이 건내주는 진정성. 작품이 내 맘에 들어와 일러준 또다른 이야기. 영혼의 구제를 위해 도망가듯 떠나는 여행을 언젠간 하리니. 관광도 모험도 아닌 낯설고 고요한 곳에서 사색의 도피를 즐기리. 생의 가장 낮은 곳으로 치닫는 절망, 그땐 나역시 영화속 현성처럼 그곳으로 향하리. 비록 약속도 기다리는 이도 없지만, 시간이 멈춘듯 홀로 살아갈 그런 곳을 찾으리. 자연과 쉼의 기록중 홀로 격정적인 소연의 환상. 딱딱한 옥상 바닥에 미끄러지고 튕겨오르는 여인의 환상. 탱고 리듬에 바다위를 걷는 일탈. 몇년의 시간이 지나도 절대 줄어들지 않는 묘한 이미지. 말없이 눈과 몸으로 써내려가는 소통의 움직임. 아마도 남자와 여자의 미묘한 관계를 파고드는 상징적인 춤사위. <시간의 춤>의 살사를 필름으로 접하게 해준 고마운 소연의 환상. 

 자연이란 아름다운 카메라, 언젠간 떠날 쉼과 도피의 티켓, 환상이 이어준 쿠바 한인의 기적같은 인생. 다시한번 <깃>은 여러모로 소중한 작품. 인생의 결정적 장면, 갑작스러운 <깃>의 환상.






로켓 사이언스(Rocket Science) - 한병의 술에 관한 기억

2010. 10. 9. 17:55 Film Diary/It scene


 영화를 본 후에 알게 된 거지만 각본과 연출을 맡은 제프리 블리츠는 <오피스>와 <파크 앤 레크레이션>에 이름을 올린 이다. 페이크 다큐 속에서 연민의 웃음을 능숙히 이끌어 낸 그의 씨앗은 <로켓 사이언스>에서 블랙 코미디로 잘 표현된다. 허나 여기선 웃음보단 청춘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인생이란 이름의 희극을 누군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바로 그 누군가의 나레이션으로 문을 여닫는 이 작품은 답답하리만큼 평범한 전개 속에 그보다 더 막막한 청춘을 담은 영화다. 이 곳에선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그 중 만성적 말더듬 증상에 시달리는 소년 할은 이따위 세상의 주인공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할은 문제 투성이인 구성원들 사이에서 홀로 좌절하며 변화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결국 영화가 끝나버려도 할의 인생은 큰 변화를 맞지 않은것 같지만,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된 봄과 가을 처럼 할의 처음과 끝은 닮은듯 달라진다. 원래 청춘/성장 영화의 과정과 결과는 밋밋한 경우가 많다. 보편적인 고민의 시간과 시각들은 누구에게나 비슷하기에 성장 영화의 중추는 일상처럼 다소 밋밋하다. 특히나 <로켓 사이언스>는 극화를 위해 삶을 끌어들인것 보단 삶 위에 극화의 틀을 씌운듯 극적인 부분들을 피해간다. 그러기에 할의 청춘은 더욱 답답하고 막막하다. 그래도 그가 씹어 삼킨 세 조각의 피자 덩어리는 희망의 싹이니, 할은 변한게다.

 영화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잠시나마 구원이라 믿었던 어느 소녀에 대한 배신감이 분노로 표출되는 이 장면은 <로켓 사이언스>에서 유일하게 일탈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다. 할의 하루 하루를 잘 따라갔다면, 그의 앞에 놓인 장애물들을 바라보며 당신도 아팠다면, 이 장면은 참 서글픈 시원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만약 공감하지 않았더라도 이 장면은 음악이 화면에 참 잘 달라붙은 경우이기에 만족스럽게 구경할 수 있을것이다. 할의 인생에서 한병의 술로 기억될 이 장면을 한번 보자. 



An education(언 에듀케이션) - 이토록 아름다운

2010. 9. 26. 18:49 Film Diary/It scene




 온전히 아름답다 할 순 없는 이야기였지만, <an education>이란 영화는 정말 아름다움의 연속이었어. 
60년대의 영국의 색감부터 잠시 스쳐간 파리의 정취까지. 그리고 제니의 마음부터 캐리 멀리건의 얼굴까지. 
개인적으로 참 낭만적이고 기특한 작품이었어. <juno>의 클래식한 버전같은 느낌이랄까나. 
2010년에 들어 감상한 작품 중 내 취향에 가장 잘 맞는 느낌이었어. 한동안 극장을 찾을 때마다 자극적인
화면들과 자주 마주했었는데, <an education>을 보는 동안은 참 마음이 편했어. 아마도 dvd 를 구입해서
몇번이고 돌려볼 영화가 될것 같아. '닉 혼비'란 이름을 보고 고른 작품이지만, 각본가나 연출가보단
캐리 멀리건이란 이름이 깊게 박힌것 같아. 참 아름다운 여배우야. <로미오와 줄리엣>의 클레어 데인즈를
처음 접했을때 느꼇던 설레임과 환상이랄까나.   

 여기엔 참 좋은 음악과 멋진 씬들이 많이있어. 난 그중에서도 잠시 머물었던 파리의 햇살과 추억들이 잊혀지지 않어.
뭔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샹송은 참 부드러워서 좋아. 제니의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을 함께 감상해보자고. 
<an education>, 교육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경험 방식에 대해서도 나중에 이야기 해봐야겠다. 참 좋은 성장물이었고.
참 이쁜 영화였어. 파리에서의 짧은 여행 장면을 같이 보자.

신자유 청년 - 황금시대 中

2010. 8. 26. 00:15 Film Diary/It scene




 저마다의 시각으로 '한국 사회에서 돈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이야기했던 옴니버스 영화 <황금시대>.
그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단편 <신자유 청년>이야.  <은하 해방 전선>의 윤성호 감독이 연출하고 임원희씨가 주연을 맡았는데
젊은 감독들의 참신한 발상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작품이였어. 52주 연속 로또 1등에 당첨된 청년 임경업이 겪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지금의 한국사회가 품고있는 각종 정치 사회적 이슈와 논란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단편인데 괜찮았어. 좋았어. 

 특히나 <오피스>를 통해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희극적 효과에 상당히 고무된 상태였던지라, 이런 차용과 시도도 참 
반갑더라고. 웃고있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미소로 입을 닫게되는 각종 패러디들이 참으로 현명하게 다뤄진것 같아.
뻔뻔하게 팝 칼럼리스트라는 자막과 함께 등장하는 진중권씨의 등장도 잔잔한 재미를 주네. <UV 신드룸>에서는 임진모씨가
진지한 얼굴로 UV의 음악성에 대해서 극찬을 하던데, 본 장르의 독특한 강점이랄까나. 아주 좋아.

장기하와 얼굴들의 '아무것도 없잖아'로 마무리되는 이 영화. 기성세대의 말만따라 죽을똥 살똥 왔는데 여긴 아무것도 없단 거겠지. 

 

피아니스트의 전설 - 달빛 아래서

2010. 7. 19. 18:46 Film Diary/It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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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의 전설, 원제인 Legend of 1900 보다 난 이 제목이 참 좋더라. 다루는 이야기가 이야기인 만큼
참 인상적인 장면도 많은 작품이야. 피아노 앞에서 삶을 연주하고 사랑을 연주하는 많은 장면들 중에서도
난 매직 왈츠 장면이 참 좋더라. 바다 위, 흔들리는 배 안에서 이리 저리 물결따라 춤추며 흘려 내보내는
이 선율이란.... 영화를 못본 이들이라도 이동진 기자님의 언제나 영화처럼을 듣는다면 익숙한 멜로디겠다.

군대에 있을때 이상하게 이 음악이 너무 듣고 싶었어. 사회에 있을때면 심심할때마다 돌려보던 장면이라
그런지 몇달을 못 들었더니 너무 기억나더라. 그래서 휴가를 나오자마자 OST 를  구입해서 부대에 복귀했는데
이 트랙은 없더라고. 어찌나 허무했는지...

다시봐도 진짜 멋진 장면이다. 쥬세페 감독은 인상적인 순간을 여기에도 남겼네.


시(poetry) - 그래도 괴물은 되지 말자

2010. 7. 13. 12:27 Film Diary/It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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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 절반을 넘어섰어. 반년간 감상한 영화들 중 단연 최고의 작품은 <시>였어. 물론 사정상 영화를 얼마
못보기도 했지만, 극장에 걸렸던 모든 작품을 감상했다고 한들 내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을거야. 주변의 몇몇
사람들에게는 이야기 한적 있지만 난 이 영화를 보고 내 삶에 대한 태도를 바꿔보려 많은 노력을 했어. 이창동
감독님은 내게 사람답게 살길 권하셨고, 미자는 내게 아름답게 살길 바랬던것 같아. 인간으로서 잊지 말아야할
기본과 잊어선 안될 가치를 선물해준 이 작품. 너무 좋았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엔딩부를 장식했던 미자의 '시'였어. 그리고 그 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건 바로 이 장면이야.
 스크린 앞에 앉아서 이토록 마음이 철렁했던 적도 없던것 같아. <생활의 발견>에서 홍상수 감독이 세상을 향해
읊조리는 한줄의 대사가 생각나더라 '우리 사람은 되기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맙시다.  가장 무서웠던건 나도 뭐
별 다를것 없는 사람이라는 ... 거겠지?  



재키 브라운(Jackie Brown) - 오프닝

2010. 7. 11. 23:11 Film Diary/It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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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다못해 로드리게즈의 <신씨티>에서 잠시 도움을 준것도 선명히 기억하면서, 몇몇 사람들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이야기를 하며 <재키 브라운>을 깜빡하는 경우가 있는것 같아. <펄프픽션>으로 <저수지의 개들>의 탄생이 우연이 아니란걸 보여줬다면, 이 작품은 앞의 두 영화를 통해 독창적인 신예가 탄생했다는 사람들의 인식을 뛰어넘어, 그가 탄탄한 이야기꾼이란 사실마저 검증시켜준 작품이라고 생각해. 그만큼 멋지고 중요한 작품이지만 그간 타란티노 감독이 각 작품마다 명확히 찍어온 심볼이 본 작품에서는 비교적 미약하기에 언급이 많이 안되는것 같아.
 
 이 장면은 <재키 브라운>의 문을 여는 오프닝 장면인데, 사실 예전에는 이 장면을 보면서도 별 생각이 없었어. 근데 박찬욱 감독의 리뷰 중에서 본 오프닝 씬을 해석한 것을 읽은 뒤부터는 묘하게 흥미로워 보이더라. 그녀가 오프닝씬에서 걷고 뛰는 모습을 두고, 수 많은 캐릭터와 사건들 사이속으로 살며시 미끄러져 들어와 당당히 걷다 황급히 뛰어나가고 결국 유유히 사라지는 그녀의 행보와 극의 흐름을 비교하셨더라.

 음악도 그렇고, 참 인상적인 오프닝으로 기억되네.



시간의 춤 - 헤로니모 임의 첫번째 편지

2010. 7. 11. 22:44 Film Diary/It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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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를 참 좋아해. 극 영화에 비해서 표현할 수 있는 상한선이 분명히 정해져 있기에,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한정적이긴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감동과 자성의 울림이란 것은, 그 파장이 너무나도
넓고 진하기에 감히 극화된 이야기들은 범접하기 힘든 순간들이 있는것 같아.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가끔씩 한 해 동안 극장에서 봤던 영화들을 떠올려볼때마다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상들은 다큐멘터리 장르가 내게 속삭여준 누군가의 삶이었던것 같아. 봉준호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을 몇년을 손꼽아 기다렸고 극장에 걸리자 마자 달려가서 만족스럽게 감상했지만, 어느 겨울날 생각없이
극장을 찾아 몇안되는 관객들과 함께 우연히 마주한 이 다큐멘터리 한편이 더 기억에 남고 그리워 지는것 같아.

 아마도 지난 겨울에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잠시 언급했지만, '시간'의 춤 이라는거. 참 좋은 제목인것 같아.
낯선 곳에서 서로의 인생을 비춰가며 한 세기를 살아온 쿠바 한인들이 이야기하는 인생과 사랑이야기는 정말로
정열적인 쿠바의 리듬처럼 뜨겁고 애잔한것 같아.

 <시간의 춤>을 관통하는 이하나씨의 따듯한 나레이션도 좋았지만, 헤로니모 임의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장현성씨의 목소리는 이 작품을 더욱 그립게 만드는것 같아. 한번 들어봐. 헤로니모 임이 보내는 첫번째 러브레터.

 물론 이 장면 뿐 아니라, 이 작품 속에는 시간과 삶을 관통하는 수 많은 사랑 이야기들이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꼭 보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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