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노라 없는 5일> 노라가 내게도 남겨준 것

2010. 11. 23. 04:37 Film Diary/It scene

(다짜고짜 엔딩부터 이야기한다는게 맘에 걸리긴하지만, 인생의 축으로 남을 마침표이기에 감히 올려본다. 마냥 좋았으며 정말 감사했기에 진지하게 노라없는 5일을 떠올려본다)

1일, 영화 이야기하는 날. 노라의 자살로 인해 모이게된 그녀의 주변부를 5일간 지켜보는 이야기다. 5일. 그녀와 완전히 이별할 수 있는 날까지 남은 시간은 5일. 종교적 관습과 절묘하게 맞물려버린 그녀의 장례일은 기막힌 우연같이 느껴지지만, 사실 이 모든건노라가 준비한 만찬의 초대장이었다.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가깝고도 먼 전남편 호세는 노라가 준비한 이별 만찬의 첫번째 손님이다. 노라를 바라보는 애증의 시선. 그렇게 <노라 없는 5일>은 시작되며 하나 둘씩 그녀 주변의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다. 역시 가족이 있는곳엔 갈등이 있었으며, 위기가 있는 곳엔 본심이 드러난다. 그녀의 죽음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이래저래 시간은 흘러가고 호세는 그녀가 준비한 마지막 유언을 체험한다. 유언의 체험. 이 짧은 문장으로<노라 없는 5일>의 모든것은 이해된다. 그녀는 지상에서 두발을 떼는 바로 그 순간 현세인은 해내기힘든 화해의 기운을 빚어낸다. 하루가 지나가도 역시나 이곳에 머무르게될 서로가 서로를 껴안길, 떠나는 내가 머무를 네게 새로운 빛을 선사하길, 그녀는 그렇게 서로를 붙이고 각자를 격려한다. 노라의 5일은 예상대로 남은 이들의 삶을 축복한다.   

2일, 엔딩을 곱씹는 날. 마지막 장면이다. 워낙 좋은 영화이기에 작품 자체를 잊진 않겠지만, 영화의 엔딩만큼은 고요한 상처로서 오랬동안 내 몸에 남을것같다. 애증이랬다. 호세가 노라를 바라보는 첫째날의 시선은 애증이랬다. 5일간 호세가 체험한 노라의 마지막 유언은 늘그막한 새로움을 선물한다. 아들과 지인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가 뻔뻔하고 가증스러 잠시 숨겨뒀던 호세의 애증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아들과 그녀의 가까운 친구에게 호세는 편지를 돌려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노라의 마지막 편지. 호세가 편지를 쫓고, 편지가 호세를 부르는 곳에서 그녀의 진짜 마음이 흘러나온다. 서로를 원망하고 그리워했던 노라와 호세 사이에 어떤 마지막 대화가 오갔을까. 노라의 음성도 기대할 수 없다. 5일간 많은 것들을 받아온 호세의 얼굴위로 노라의 진심이 밝게 비친다. 슬며시 보이는 미소와 살짝 찌푸려진 눈살 속에 많은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3일. 영화를 삼켜본 날. 2010년의 어느 가을밤, <노라 없는 5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새벽에 올림픽 대로 위에서 꺼이꺼이 울었었다. 사실 관 밖에서 시작된건 아니었다. 중간 중간 호세의 고집스런 얼굴 뒤로 뵈는 유약한 근심때문에 많이 울었었다. 이상하리만큼 많이 울었다. 외로운 노년의 처지가 뭐가 그리 슬펐는진 모르겠지만, 항상 마음을 옥죄는 습관적 거리두기가 부른 불안 때문이었을까. 계속 밀쳐내기만 하는 적당함에 고민하던 찰나였기에 그랬을까. 소중한 것과 소중한 사람도 몰라본채 어리석고 쓸쓸하게 늙어갈까봐 불안해하던 찰나였기에 그랬을까. 여튼 강요없는 정서에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본적은 없었다. 

4일, 25년을 돌아본 날.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가 있다. 분명히 있다. <노라 없는 5일>은 쓸쓸한 미래를 불안해하는 내겐 더없이 완벽한 거울이었다. 사실 감상이 마음속에 들어와 회오리를 치며 자극할때는 작품과 가슴사이에 명확한 연결고리가 보이진 않는다. 단지 호세의 과거가 나의 미래가 될까 무서웠고, 호세의 오늘이 나의 미래가 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이런 간략한 문장들은 내 맘에 틀어박혀 적잖은 고민을 던져주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내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남을지 생각해봤다. 타인 눈속의 나를 생각해봤다. (위 문장 아래로 꽤나 긴 글을 썼었다. 그런데 문득 맥락없는 자아탐구가 쌩뚱맞게 느껴졌다. 블로그란 공간의 특성이 나에대한 진지한 고민을 잠시 멈추게 했다. 호숫가에 앉아 진지하게 떠올려본 <노라 없는 5일>과 내 인생의 상관관계는 이렇게 흐지부지 마무리 될것 같다. 꽤 진지한 생각을 이어 갔었는데 공개된 공간에 올려다 놓으니 도통 어울리지가 않는것 같았다. 앞으론 따로 일기를 써야할것 같다. 점점 빠르게 늙어가는걸 느낀다. 결국 이 작품을 통해 과거를 훑어보지 못한 꼴이 되버렸지만 적어도 내 미래에는 지대한 영향을 미칠것임을 알기에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황급히 마무리해본다.)   

마지막 5일. 마지막 날은 제목조차 끄적이지 못할 미정이다. 이 작품이 내게 선물해준 삶의 무게 정도만 기억하고 있다가 먼 훗날 많은 일들을 체험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후 홀로 곱씹으며 고민 해봐야겠다. 참 좋다. 이 영화. 위트있는 드라마에 펑펑 울어본 것도 좋은 추억이 될것같고 조금은 덜 어리석게 하루 하루를 체우게 해줄 좋은 경험도 될것 같다. 노라는 가족 뿐 아니라 한국 땅에 있는 나에게도 많은 것들을 남기고 떠난것 같다. 실존하진 않지만 좋은 곳으로 갔기를. 


Recent Comments

Recent Trackbacks

Copyright © ss All Rights Reserved | JB All In One Version 0.1 Designed by CMSFacto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