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mesridle
가을은 형언하기 힘든 치명적 매력을 지닌 계절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날엔 거리로 나가 뚜벅뚜벅 걷기만 해도, 멍하니 벤치에 앉아 오다니는 사람의 구두끝만 바라봐도 묘한 행복감이 몰려와버려서 다른 일에 대한 의욕이 절로 사라져 버리곤 한다. 감정이 너무도 쉽사리 요동치는 내겐 더욱 그러한것 같다. 정말이지 다른 일은 하기 싫어진다. 가만히 음악을 듣고 싶어진다. 음악이나 들어야 겠단 감성이 아니라, 음악만 들어야 할것 같은 의무감이 드는 날들이란 말이다. 가을과 음악. 이보다 더 좋은 친구는 없을것 같다. 가을은 느긋하거나 더딘 음악에 더없이 좋은 동반자 같다. 아무도 없는 밤거리, 라디오를 타고 흐르는 음악을 듣다보면 수도 없이 뭉클하고 벅찬 감정을 마주하곤 한다. 듣는이도 방송을 하는 이도, 가을의 치명적 매력에 홀려 모두가 비슷한 마음으로 선곡을 해대는 탓에, 예민한 아티스트들의 기억과 추억 들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가을에 듣는 음악. 그리고 그와 눈물 역시 떼어내기 힘든 관계인것 같다. 가끔씩 혼자 술을 먹곤한다. 심야의 라디오는 제 감정에 깊숙히 파고들기 좋은 매체이기에, 그 시간에 약간의 술을 먹는 행위는 자기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희미한 옛 추억을 뒤돌아 보기엔 썩 괜찮은 짓이다. 스산한 바람에 몸이 묶인 체로 멍하니 앉아 낙엽마냥 붉어지는 하늘을 바라볼때, 어느 예민한 음악가의 슬픈 노랫말이라도 귀에 들어오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져 내릴것만 같다. 특히나 가을에 듣는 음악에 술까지 끼어버린다면, 그리고 그 노래가 양희은 혹은 이소라가 부른 것이라면 눈물을 피하긴 힘들 것이다.
가을 밤, 약간 취해버린 내 자신을 눈물짓게 하는 음악은 추억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윤종신의 노래속에서 찌질한 주인공들이 애타게 부르짖는, 아마도 아름다웠으리라 기억하고픈 혼자만의 추억이나 덤덤하게 지나친 누군가와의 이별이 갑작스레 자신의 일상을 뒤덮는 조규찬의 따끔한 추억들. 이런 사랑에 관한 짧은 추억들. 이런 음악의 백미는 성숙한 이별이 얼마나 서글플 수 있는지 보여준 김광진의 <편지>인것 같다. 여하튼 이런 감성들은 가을에 쉽사리 눈시울이 붉어질만한 것들이지만, 슬픈 음악의 정서는 우리네 사연과 접점이 발견되면 시간과 공간을 불문하고 비슷한 응어리를 끌어내기에, 가을을 위한 노래는 아닌것 같기도 하다. 두번째 추억. 사랑에 관한 짧은 추억과 함께 가을날 내게 눈물을 뽑아내는 노래들은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그러기에 더욱 슬픈 옛것들에 관한 향수와 추억이다. 후회가 낳은 집착일진 몰라도 난 유달리 과거를 그리워하곤 한다. 혼자만 쓰고 혼자만 보는 글들의 대부분 주제는 과거와 현재의 공유에 관한 망상이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내 귓전을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가을의 냄새를 맡다보면 훌쩍 15년 20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하루 하루의 변화가 눈에 뵈는 가을의 중심에서 약간의 소주와 함께 옛동네를 거닐때면 미치도록 슬프다. 아마도 별다른 기억이 없다는게 슬픈것일 게다. 어제도 늦은 밤이 다되어 집을 나섰다. 어제도 라디오를 들으며 옛동네를 찾아봤는데, 마침 라디오에선 재주소년의 어느 멤버가 양희은의 <가을 아침>을 추천하곤 무책임하게 틀어버렸다. 비를 피해 놀이터 정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하염없잉 눈물이 나더라. 참 아름답고 이쁜 가사였지만, 과거에 대한 추억은 그렇게 쉬이도 날 눈물짓게 하는것 같았다. 사족이지만 양희은씨의 음성과 이병우씨의 선율로 완성된 <양희은 1991>은 보물이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대한 잉거 마리의 해석도 아름다웠지만, 양희은씨 만큼은 아닌것 같다. 요즘엔 <가을 아침>을 계속해서 듣고 있는것 같다.
시계를 조금만 돌려보면 정말 아름답고 좋은 노래들이 많다. 고작 20대 중반에 들어선 주제이기에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요즘의 젊은이들이 저 시절의 음악을 더 많이 들었으면 하고, 그럴만한 가치도 있단걸 이야기기 하고싶다.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어떻게 말로 표현을 못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