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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날, 그리고 안녕히 가시길

2010. 11. 9. 03:08 [Special feature]/Wonderful Life


 기분 좋은 날이다. 이런 저런 일들을 하느라 책상앞에 앉은 시간은 3시간 뿐이었지만,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공부따윈 뭐. 어쨌든 개인적으론 참 기쁜날이다. 꿈에 한걸음 다가간 날이기에 참 기쁘다. 어설프게 살아가지만 내게도 꿈이란게 있다. 교도관. 이건 나의 장래희망이다. 어쩌다보니 들어가게된 전공. 지내다보니 정해져 버린 진로. 역할의 중요성을 알고, 운명적인 발걸음을 믿고 있는 한 내 장래희망은 어디까지나 교도관이다. 허나 직업적 '꿈'뿐 아니라 최소한의 낭만적 꿈도 가지고 있다. 언제나 꿈꾸고 언젠간 이룰 꿈, 시나리오 작가다. 직업적인 작가가 되는건 꿈도 꾸지 않는다. 나는 단지 죽기전에 극장에 앉아 내가 쓴 작품을 단 한번이라도 보는 것, 그게 내 꿈이다. 내가 가진 꿈의 조각중 가장 큰 부분이다. 

 어째서 오늘이 기쁜날인가. 다름 아니라 처음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그간 해보면 좋겠다, 해보면 재밌겠다 싶은 이야기들은 많았기에 어딘가에 끄적이며 홀로 즐거워했던 날들은 많았지만 막상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꼭 해야할것 같은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아직까지도 사지 멀쩡한 습작조차 출산하지 못했었다. (길어도 허약한, 알차도 너무 짧은 사생아들) 허나 이번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역시나 사람은 사회와 환경에서 떨어질 수 없나보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과의 이별. 사실 음악만 들어왔지 아티스트에 대해선 자세히 모른다. 솔직히 잘 모르는 이다. 허나 라디오를 통해 우연히 위로를 받았던 기억 정도는 있다. 나를 연애하게 하라. 어느날인가 굉장히 슬프게 들렸던 노래. 그런 그가 떠났다. 사실 난 죽음에 대해 그리 슬퍼하진 않는다. 슬퍼해봤자 도저히 달라질것도 없기에, 어쩌면 이 다음 세상은 더 좋은 곳일지도 모르기에 그냥 슬픔보단 한번쯤 진지하게 추억할 뿐이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문뜩 떠오른게 있었다. 언제나 관심가지던 사후에 관한 이야기. 지극히 상상으로 꾸며질 수 밖에 없는 사후 세계란 무대를 생각하니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언제나 맘속에 무겁게 짊어지던 가족에 대한 미안함. 나를 신경써주는 주변인에 관한 소홀함. 고마운줄 모르고 한없이 우울해 하는 인생살이. 모든 이야기들이 너무나 갑작스레 스쳐갔다. 멍하니 바라봐도 도저히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단어장을 접고 노트를 펼쳐 계속해서 쓰기 시작했다. 궁금하고 미안했던 만큼 모든 이야기들은 자연스레 이어졌다. 행복하게 즐길 취미 정도는 있구나 싶어 뿌듯함이 밀려왔다. 수천석의 도서관에서 다들 수능공부와 공무원 대비에 열심히었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가 가장 행복하리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썻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약간의 상상과 비틀림. 그리고 이어지는 과거의 추억과 주변의 소중함을 통해 느낄 인생의 아름다움.   

 뭐 결국 완고를 한다해도 형편없는 시나리오가 될것이다. 3,4권쯤 시나리오 가이드를 읽고 수십 수백편의 시나리오를 읽었지만 막상 글을 쓸때면 제멋대로 적어간다. 자세한 내용은 창피하고 불안해서 언급하진 못하겠지만,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인생에 대한 고마움을 잊은체  한없이 차가운 마음으로 소중한 사람과 소중한 일상을 무심히 지나치는 어느 20대 청년의 갑작스런 죽음. 그리고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기 전 주어진 7일의 시간. 5일의 연장과 2번의 회상. 그렇게 주어진 3번의 여행. 이렇게 대강 말하면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름 탄탄하게 구상중인 이야기가 있다. 아, 좋다. 술술 써져서 더욱 좋다. 

 많은 감독들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초고는 얼른 쓰는게 좋다고 한다. 홍상수 감독은 어차피 니들이 써봤자 형편없을 테니 어서 완고부터 하라했다. 그래, 시간을 내서라도 얼른 써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참 기대가 된다. 처음으로 엔딩부터 떠오른 시나리오다. 말썽안부리는 불효자로서, 베풀줄 모르는 사회인으로서, 한번뿐인 인생을 멋지게 체우지 못하는 청춘으로서 많은 반성과 로망을 담은 이야기가 될것 같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과 영화 <애프터 라이프>로 시작되었지만, 항상 꿈꿔왔듯이 <빅피쉬>와 대니보일의 <인질> 그리고 장진의 인간관계에 관한 영향이 짙게 뭍어날 이야기가 ... 되었음 좋겠다. 

 아주 먼 훗날 이 작품을 누군가 보게 된다면, 정말 잠시라도 좋으니 인생을 조금은 더 열심히,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단 소박한 충동을 느끼게 됐으면 좋겠다. 이번엔... 잘 되야할텐데. 영화를 본지 10년. 막연히 시나리오 작가를 꿈꾼지 5년. 25살의 겨울에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하나쯤은 쓸 수 있을것 같다. 제목에는 꼭 세번과 여행이라는 단어를 집어넣고 싶다. <여행 세번>이나 <세번의 여행은>이나 <마지막 여행은 세번>이나 어찌되었든 꼭 사지멀쩡한 우량아를 낳아봐야지. 좋다. 나를 연애하게 하라. 간만에 들으니 또 슬퍼지네. 좋은 힌트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진원씨. 제가 꿈꾸는 사후세계만큼이나 멋진 곳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하고 계시리라 믿어볼게요. 대신 역전만루홈런은 바라지도 않으니 번트라도 할 수 있도록 제게 힘을 주세요. 정말 노래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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