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갑자기 영화가 끼어드네

2011. 4. 28. 01:43 [Special feature]/Wonderful Life



어째어째 하다보니 이렇게 되버렸다는거, 이런 늬앙스가 지금 이 상황에 잘 어울리는것 같다. 정체모를 결심으로 인해 가방하나 둘러메고 일주일간 제주도를 돌고온지 정확히 12일이 지난 오늘, 묘하게 5시간 후면 또 남쪽으로 내려가게 됐다. 호적상 고향, 한번도 두발딛고 걸어본적 없는 부산땅에 가게 됐다. 그곳에서 2,3일 정도 지낸 후 향할 곳은 순천, 그리고 그 다음날이면 최종 목적지인 전주에 가게된다. 정말 아무생각없이 부산과 순천에서 5일 정도 지내려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전주 영화제 가이드북 때문에 출발 10시간을 앞두고 모든걸 새로 계획했다. 그렇게 여행은 4일이 추가되고, 일정한 예산으로 몇일을 더 버텨보기로 했다. 허튼 소리가 아니고 생의 첫 영화제 관람을 앞두고 설레는 맘에 기록을 남겨두는거다. 영화에 대한 마음이 커져 갈 수록 영화제에 대한 환상도 점점 커져만 갔었는데. 학교다 군대다 시험이다. 이런 식이면 장례식까지 핑계를 대며 못갈것 같아 기적같은 우연을 핑계삼아 영화제에 몸을 맡기려 한다. 심심한 인생에 있어 꽤 중요한 순간이기에 휘발전에 새겨본다. 

해운대와 자갈치 그리고 태종대, 이리도 바다냄새 솔솔나는 키워드에서 순식간에 영화로 엎어버리는 순간, 복잡하고 피곤하긴 했지만 조금씩 설렘과 흥분이 차오른다. 2시간 만에 뚝딱 예매해버린 12편의 영화 목록을 보니 요 충동적이고도 무책임한 계획 변경에 결코 후회가 남지 않을듯 하다. 

관광과 휴식의 순간은 생략하고 이번 여행길에서 함께할 영화에 대해 기록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일단 부산땅을 밟았으니 시네마테크 정도는 가봐야하지 않은가. 도착과 함께 부산 시네마테크에 들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시스터스>를 한편 보고 3,4일 이래저래 신선한 공기좀 마시고 사람 구경좀 하다 전주로 건너와 첫 영화로 제제 타카히사 감독의 <헤븐스 스토리>를 보는거다. 러닝타임 278분의 시네토크 까지 붙어있는 시간이다. 삶과 죽음, 그리고 복수와 분노의 끈임없는 연결고리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이 작품은 베를린 넷팩상과 국제비평가 협회상을 받았다니 <사랑의 노출>이 안겨줬던 이상하게 긴 일본영화의 신비로운 명맥을 이어줬으면 한다. 다음날은 3편의 영화 기존의 서사방식을 탈피한 평화로운 실험영화 <제스와 모스>를 감상한 후, 예전부터 극장관람을 꿈꿔오던 흥미로운 다큐 <인사이드 잡>을 보는게다. 그리곤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독특하고도 강단있는 서부극 <믹의 지름길>을 보고 얼른 취침에 들어야만한다. 

3번째 날의 스케쥴은 14시간 가량을 극장에 앉아 영화를 봐야한다. 좋은 영화 4편을 골랐는데 각각의 상영시간이 146분 272분 330분 84분이다. 이런것이 바로 영화제의 고통스런 축복이구나. 걸작이란 소문이 자자한 라울 루이스의 <리스본의 미스터리>를 본 후, 머리도 식히고 눈도 정화할겸 호세 루이스의 아름다운 풍경의 시 <실비아의 도시에서>를 보는거다. 그리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벨라 타르의 마지막 작품인 <토리노의 말>을 감상한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불면의 밤으로 향해야한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2010년 최고 화제작 330분이라는 극강의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카를로스>를 본 후 극장을 나서면 아침 5시가 된다고 한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계획이지만, 나는 이 작품들이 하나같이 너무나도 재미나서 졸음은 커녕 시간감각마저 앗아가리라 예상하고 기대해본다.  

4번째 날은 베르너헤어조크 감독의 신비로운 3D 다큐멘터리 <잊혀진 꿈의 동굴>을 환상적으로 감상한 후, 사랑해 마지않는 영원한 젊은 그대 이명세의 <첫사랑>의 감상과 함께 이명세 감독의 gv를 즐기는게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영화제의 마지막 날에는 장 뤽 고다르의 신작과 시규어 로스의 보컬 욘시의 솔로 콘서트를 감상하는 게다. <필름 소셜리즘>과 <고 라이브>는 영화제 마지막날 가벼운 마음으로 그곳과 작별하기에 적합한 작품들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서는 그날 오후부터 24시간 가량을 활용해 카쉬전과 유르겐 텔러전 마지막으로 피쳐링 시네마전을 관람한 후 영상자료원으로 가 3시간이 훌쩍넘는 막장 파티 <그라인드 하우스>의 상영과 함께 여행을 마치는 거다. 거기다 여행을 다니며 열차와 벤치에 앉아 읽을 책은 얼마전 헌책방에서 단돈 삼천원에 구입한 시드니 루멧 감독의 말랑말랑한 저서 <영화 만들기>다. 순식간에 만든 틀이지만, 아무 고민없이 사랑스런 취미를 음미할 생각을 하니 참으로 뿌듯하다. 알찬 계획인것 같다. 하루에 한끼를 먹어야 하나. 이 돈으로 어떻게 버티지. 이번 포스트는 지극히 사적인 기록이라 아무런 정리도 확인도 없다. 3,4시간 자고, 평생 두번다시 반복하기 힘든 맘편한 여행 좀 다녀와야 겠다. 여행은 다녀오고, 다시 또 나설 생각을 하니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극장전의 그 놈 처럼 나도 생각을 쫌 많이 해야겠다. 

 
부산-순천 여행을 마치고 전주에 도착해 4일만에 쓰는 글. 다름이 아니라 관람작에 대한 변경, 그 개인적인 끄적임을 위해 몇자.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관계로 5 월 2 일에는 2 편을 추가해 <카이탄시 스케치> <아이타> <헤븐즈 스토리 + 시네토크>. 둘째날인 5 월 3 일은 <제스와 모스> <믹의 지름길> <니콜라이 차우세스쿠의 자서전> 에다가 <인사이드 잡>을 <골리앗의 여름>으로 변경. <인사이드 잡>은 5월 개봉예정이라니 영화제에서 즐기긴 다소 아쉽고, 상영 후 좋은 평을 얻고 있는 <골리앗의 여름>의 마지막 1자리를 겨우 겨우 예매. 극한의 5 월 4 일은 변경 사항없이 <리스본의 미스터리> <실비아의 도시에서> <토리노의 말> <카를로스> 를 14 시간여 관람. 5 월 5 일은 불면의 밤을 보낸 후 기상 시간에 따라 2시대 영화 한편은 유동적으로 선택하고, 그 이후의 예정작은 <잊혀진 꿈의 동굴 (3 D )> 과 이명세 GV와 함께하는 <첫사랑>, 마지막 날은 고다르의 <필름 소셜리즘>과 <고 라이브>를 그대로 유지. <앙젤리카의 이상한 사례>라는 영화에 심히 끌렸지만, 5월 중 서울아트시네마 상영이 예정되어있기에 욘시의 공연을 그대로 선택. 최종적으로 15편. 시간만 가능하다면 비는 시간에 일반 상영관에서 <소스 코드>도 도전해보고...  

Recent Comments

Recent Trackbacks

Copyright © ss All Rights Reserved | JB All In One Version 0.1 Designed by CMSFacto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