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을 다녀왔다. 스티브 맥커리의 <진실의 순간展> 이후 5개월여 만에 다시 세종문화회관을 찾았다. 이번 전시회는 독특한 구석이 있었다. 직업 사진작가가 아닌 시인의 눈으로 기록한 순간들이었다. 이번 사진전의 주인공인 박노해씨는 시인이자 평화/노동 운동가이다. 그가 노동자로 일하던 1984년 <노동의 새벽>이란 시집을 통해 얼굴없는 시인, 실천 노동자로 읽혀지고 보여졌다. 그렇게 한국 현대사의 어두웠던 시간 속에서 옳고 바른 길을 걸었던 그는 저항과 고통의 시간들을 겪고 겪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에게 시를 낭독했다.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사형도 구형받고, 무기징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현대사의 수 많은 상처를 안은 채 시간은 흘러갔고, 자유를 얻은지 2년의 시간이 흐른 후인 2000년 부터 세계 여러곳을 홀로 거닐게 된다. 그곳은 빈곤에 고통받고 분쟁으로 상처입은 이들이 자기네 삶을 악착같이 쌓아가는 장이었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각각의 고난을 짊어진 네개의 대륙의 그림자를 밟으며 그는 오늘날 한국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낸다. 그는 사진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선진 문명국중 어느 누구 하나 아프리카 대륙의 빚을 지지 아니한 이가 없기에 그들에게서 빼앗아온 넋과 희생을 잊어선 안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의를 내세운 패권제국이 중동에 뿌린 수많은 눈물을 외면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또한 전통문화에는 꾸준한 균열이 생기고 자연은 끊임없이 시련을 내리는 아시아의 이웃 나라들에게서 오래된 미래를 찾아볼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지구의 허파와 등뼈가 자리한 그곳, 체게바라의 피기침 소리가 아직도 선한 그곳, 중남미는 지구와 인류에게 의미있고 소중한 곳이지만 그곳을 지탱하는 이들은 외면과 착취 속에 고통스러워 함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네 대륙을 잇는 박노해씨의 사진들을 보며 이런 생각들을 떠올리고, 잠시나마 삶에 감사하고 반성하며, 나눔의 소중함을 느껴야 할것이다. 적어도 나 자신은 잠시나마 이런 생각들을 깊게 해봤다. 잊고 살만한 중요한 가치를 고민하게 해준 소중한 만남이고 경험이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 곳에서 큰 울림을 얻을 것이다. 이 곳은 단순히 이미지의 피상적 전시 공간이 아니었다. 단순히 사진전이란 단어로 국한하기엔 이곳은 처연한 생기가 있는 곳이었다. 그는 홀로 걸으며 세계 곳곳의 소리를 담아오고, 순간을 적어왔다. 이곳을 가득 체우는 소리들은 그가 대륙을 오가며 담아온 저들의 운율이었다. 그리고 120여 점의 사진마다 진심을 다해 써내려간 그들의 이야기는 보는 이에게 때로는 아름다운 시로 때론 가슴아픈 비극으로 가슴 깊게 스며든다. 인생을 읽고 문화를 듣고 순간을 본다. 박노해씨의 전시회는 이런 의미에서 다시한번 소중한 만남이고 경험이었다. 난 누군가가 만든 작품을 보며 기계적인 해설을 듣거나 큼지막하게 써놓은 문구를 기억하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기억도 못할 뿐더러, 순수하게 작품만 보고싶기도 하다. 하지만 어딘가 적혀있던 그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다. '사랑한 만큼 보이는 것'이다. 내가 사진 속의 사람들을 찍는게 아니라 그들이 카메라를 통해 내 가슴에 진실을 쏜 것이다. 그와 비슷한 사진을 찍는 이들은 많다. 가끔은 그런 사진이 불편해 보일때도 있다. 하지만 오만함이 아니라 애정을, 내려봄이 아니라 마주봄을, 이러한 신념의 향기를 가득 머금은 그의 사진들은 경외롭고 아름답다. 그러기에 많이 슬프다.
박노해씨는 그곳에 앉아 열심히 관객과 대화하고 정성스레 싸인을 했다. 비록 한마디 대화도 나눠보진 못했지만, 사진을 통해 충분히 그와 대화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회장을 빠져나갈때 직원이 조그마한 쪽지를 건내며 그곳에 메일 주소를 적으면 매주 시를 보내준다고 했다. 기분이 좋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쯤은 그의 작품들과 이런 경험들을 상기할 수 있을것 같다. 노래 한곡이 사진 한점이 세상을 바꿀 순 없겠지만, 적어도 몇몇에겐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마련해 줄 수도 있다. 이런 전시회는 어린 친구들과 함께 가면 더욱 좋을것 같다. 좋은 예술과 좋은 사람이 한 곳에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3000원에 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평이한 영화 한편 보다 더 좋은 경험이 될테니 주말 쯤에 이 곳을 한번 찾아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