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27. 14:55 Film Diary/Review
브라보! 웬만해선 간단한 후기조차 쓰지 않는 요즘 <이층의 악당>은 추천해 마땅할 귀한 손님이기에 이렇게 짧게나마 기록하고자 한다. 시간은 4년전으로 돌아간다. 막 대학에 들어갔을 무렵 학교가 끝나면 집이 아닌 극장으로 향하던 때가 있었다. 티끌만한 자유를 영화관람에 모두 퍼붓던 시절. 그냥 걸려있는 영화는 아무생각없이 보던 때가 있었다. 영화인의 이미지가 전무했던 최강희씨. 주역보단 조역이 어울리던 박용우씨. 난생 처음 보는 감독님의 이름. 허나 영화는 충격 그 자체였다. 물론 3년이 흘러 <차우>를 보며 그 기록이 깨지긴 했지만 극장에 앉아 그렇게 많은 웃음을 쏟아낸건 처음이었다.
몇년의 시간이흘러도 극장을 나설때 마주했던 분위기를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 명확한 날자와 시간은 몰라도 적어도 그날의 온도와 풍경 정도는 그리게 해주는 영화들이 있다. 내겐 이런 것들이 인상적인 영화와 그냥 흥미로운 영화를 가르는 기준이다. <달콤 살벌한 연인>을 등지고 집으로 향하던 밤의 풍경과 온도가 아직도 선할걸 보면 이건 분명 충격이었나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층의 악당>은 그의 뜨거운 데뷔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란 거다. 답보도 아니다. 그의 유머는 인물의 입에서 몸 전체로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단순히 상황의 단편적인 나열 속에 재치있는 현대적 감각을 입히던 방식을 벗어나 이야기를 쌓고 사람을 그려 그 속에 자연스레 희극적 충돌을 끌어내는 발전을 이뤄냈다. 사실 <달콤 살벌한 연인>은 젊은이들이 열광할만한 재기넘치는 소품같았다. <이층의 악당>을 보고나니 <달콤 살벌한 연인>은 데뷔작이라는 한정된 무대에서 자신의 수많은 재주 중 한가지를 특화시킨것 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요 몇년 기억할만한 명연이 없어 영 아쉬웠는데 배우 한석규의 진가를 2시간 동안 실컷 맛볼 수 있다. 정말 배가 터져 죽을 정도로 실컷. 연출도 대본도 연기도 모든게 훌륭한 작품이었다. 고맙고 반가워서 이렇게 정신없이 생각들을 나열해봤다. 만약 이 글을 보고 단 한명이라도 극장에 갈 마음이 생긴다면 손감독님에게 받은 2시간의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되갚는 일이 되겠지.
어제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새벽 2시. 이영음에는 손감독님이 나왔다. 역시나 재치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이야기들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매그놀리아>에 대한 언급은 강렬하게 다가왔다. 감독님이 아닌 이주연 아나운서의 입에서 먼저 나온 이야기지만 <이층의 악당> 후반부 주,조연 모든 배우의 같은 시각 다른 일상을 비추는 짤막한 시퀀스는 <매그놀리아>의 이것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코미디를 연출하는 사람으로서 조심스러운 부분이기에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다니지는 않지만 이주연 아나운서의 예리한 질문에 시인하셨다. 극장에 앉아 같은 예상을 했던 사람으로서 뭔가 반가운 이야기였다. 유머러스한 말 속에 언뜻 비치는 손감독님의 작가적 마인드는 그의 차기작을 기대하게 만든다. 다른 장르가 되도 충분히 능력을 보여줄 사람같다. 기대해본다. 만약 그가 3번째 영화로 코미디를 들고 온다면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사회에서 그 작품을 볼것이다. 믿을 만한 재간꾼의 코미디 영화를 즐기기엔 돈 한푼 안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은 이들이 가득한 시사회장이 최적의 장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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