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한 남자가 아파트에 침입해 부부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그날 밤 피해자와 사소한 다툼이 있었던 연극배우 시바타 마사키로 밝혀지고, 곧장 이 사건은 재판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이 사건은 죄의 유무를 따지기 이전에 일본 형법 제 39조에 해당하는 심신상실자 조항에 직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감정인으로 배정된 오가와 카후카는 그의 행동을 수상히 여기고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Alanshore
기본적으로 <39 형법 제 39조>는 복수를 그린 법정물이야. 독특한 점이 있다면 그 복수의 대상이 사인간의 관계를 넘어서 그 이상의 규범과 가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단거야. 인간이 더욱 인간답게 살기 위해 스스로 쌓은 법이란 테두리가 어떤 방식으로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그 모순이 누군가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가에 대한 보고서 이기도해. 이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의 형법 제 39조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 조항은 심실상실에 관한거야. 쉽게 말해서 '미친사람에 대한 책임능력 인정 여부'에 관한거지. 이건 형벌의 기능이 단순 응징에서 교정과 교화의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더욱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야. 단순하게 죄를 지었으니 그에 대한 국가의 대리적 복수를 시행하는게 아니고,범죄인의 처벌 목적을 재사회화에 두고있는 시점에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조차 질 수 없는 정신적 병자를 처벌할 필요가 있는가란딜레마라 할 수 있지. 이건 사람의 마음에 관한 것을 그 토대로 하고 있기에 보편적인 수준에서 일정한 분별은 가능하다해도, 100%의 완전한 분별은 불가능하기에 이를 사회적 규범과 인간 삶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객관적 법의 테두리에 온전히 덮어 씌울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할거야.
그 모호함이 극적효과에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어서 인지 '심실상실'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나 문학을 통해 자주 소개되곤 했었어.특히 이 작품은 3년 앞서 개봉한 <프라이멀 피어>와 쉽게 비교되곤 하는데, 노튼이란 배우의 발견과 함께 스릴러 장르로서 매혹적인 장치까지 겸비한 <프라이멀 피어>가 대중적이고 장르적으로 뛰어난 작품이라면. 이 작품은 본 조항에 대해 굉장히 신중한
태도로 접근하는, 또다른 매력의 영화라고 생각해. 누군가의 희생과 오열을 오락거리보단 진실된 마음으로 성찰해보고자 다짐한 느낌이었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루즈한 진행이 동반되기도 하는데, 이건 통상의 대중영화 화법엔 어울리진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만한 필요적 선택이었다고 생각해. 이야기 거리는 <프라이멀 피어>와 비견된다지만, 난 오히려 주제적인 측면에선 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제기했던 알런 파커 감독의 <데이비드 게일>이 연상됐고, 인물간의 연계고리 부문에선 스탈링과 렉터 박사
의 관계속에서 사건을 풀어나가고 상처를 치유해 나갔던 <양들의 침묵>의 관계가 떠오르더라.
'심신상실자의 행위는, 이를 벌하지 않는다. 심신모약자의 행위는, 그 형을 감형한다.' 이 조항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도와준 두배우, 츠츠미 신이치와 스즈키 쿄카의 역할도 참 컸어. 특히 츠츠미 신이치의 연기가 돋보였었는데, 시기적으로 '사부'감독의 독특한 작품들 사이에 끼여있는 영화여서 그런지 그의 시무룩하고 무엇인가에 쩌들은 표정은 참 설득력있었어. <먼데이>나 <드라이브>, <포스트맨 블루스> 등의 사부영화를 생각해보면 츠츠미 신이치란 배우는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을 하면서도 묘하게 무능력한 현대인의 무기력을 잘 표현하는것 같아.
여하튼 느슨한 진행과 잦은 플래쉬백으로 법정, 수사물 고유의 장르적 쾌감은 부족하지만, 지극히도 현실적인 법정의 표면 묘사와 본 법조항에 대한 진지한 질문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던 작품이었어. 생각해보면 속도는 더디지만, 진행 과정속에서 하나씩 들어나는 퍼즐의 조각이나 사람들의 사정들은 꽤 흡입력있었던것 같아. 영화의 마지막 자막을 보면서 이 문제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봤는데, 최근에도 가장 주목받는 사회파 미스테리 작가 야쿠마루 가쿠의 신작 <허몽>에서도 이 문제를 이야기 하는걸 보면, 현재까지도 진행형인 이 조항은 앞으로도 진지하게 고민해볼 가치가 있는것 같아.
글을 쓰고 생각해 보니 미 법원에서 해리성 정체 장애로 최초로 무죄판결을 받았던 24개의 인격을 지닌 빌리 밀리건의 책이 생각이 나서, 시간난다면 읽어봐. 아주 신기한 이야기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