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퇴장, 그리고 새로운 주목
이따금씩 컬트영화의 심판대에 올려지는 작품들이 나오곤 합니다. 컬트 영화가 처음으로 등장한 당시와는 영화산업의 구조적 차이때문인지, 본래 일컬어지던 참된 의미의 컬트적 요소들을 100% 충족 시킬만한 작품들이 나오기는 어려운 실정이긴하죠. 비록 시초적 컬트영화들이 보여줬던 극단적인 반응보다는 다소 얌전한 양분이지만, 충분히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구타유발자들>은 다분히 컬트스러운 맛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구타유발자들>을 접한 이유는 일전에 읽었던 시나리오 때문이었습니다. 2004년 이었나요, 어디선가 대상을 받았다던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꽤나 흥미로우면서도 진지한 면을 보이고 있는 작품이였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스크린위에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인지, 그리고 이 괴상한 캐릭터들은 과연 어떤 배우가 소화해 낼 수있을까란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에도 극장에서 경험한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참으로 처참한 것 이였습니다. 비단 흥행성적 뿐만 아니라, 영화가 진행중인 동안에도 관객들의 불만어린 목소리들을 끊이지 않고 들을 수있었습니다. 정확한 스코어는 모르겠지만, 흥행면에서도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본 사람이 적어서 일까요? 이 영화는 별다른 집중도 받지 못한 체 기억속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몇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 DVD가 발매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접하게 된 후부터 <구타유발자들>에 대한 찬사가 연이어 나오게 됐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그리도 이 작품에 대해 졸작이냐 수작이냐는 기준치를 놓고 싸움이 계속되는 것일까요? 우선 저의 생각부터 말씀드리자면, 06년 상반기에 봤던 한국영화중에서는 단연 Best에 들어갈 정도로 훌륭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적절한 도구 하지만, 오해받을 시도
아마도 이 작품은 불호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를 이룰만한 작품일 것입니다. 앞서 컬트스러운 맛을 지닌 영화라고 소개했던 이유도 그러한 것이겠죠.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두고 '구토유발자들'이라는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비난의 이유를 지나친 폭력묘사나 과도하게 친절한 감독의 주제전달 이였다고 생각합니다(여기저기서 평들을 읽어보니 그런듯 싶군요). 하지만 그런 주장은 창작자의 표현의 틀을 지나치게 억압하는 편협한 시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선 이것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영화에 대한 언급을 잠시나마 하고 지나가야 할것 같습니다. 제목에서 부터 느껴지듯이 <구타유발자들>이란 작품의 근저에는 폭력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풀어나가는 매 순간들은 폭력을 매개로 이루어지고, 캐릭터들의 관계도 다양한 폭력을 도구삼아 연계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벌어지는 학창시절의 따돌림과 구타를 시작으로, 군대내에서의 폭력 그리고 자신의 직위를 이용한 사제간의 성폭력등 표면적 폭력에서 부터 계급적 차별에 따른 암시적 폭력까지 <구타유발자들>속에는 이런 다양한 폭력들이 계속되는 순환고리 속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와같이 폭력과 그 관계들의 순환을 말하고 있는 이 영화는 직설적으로 주제들을 표현해 나갑니다. 한치의 거리낌도 없이 진행되는 이야기는 관객의 입장에서 지나치게 단순하고 평면적인 주제 전달이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감독의 이런 선택은 단순함과 뻔함이라는 명목으로 작품성에 해를 미치는 요소로서 작용하기 보단 오히려 장점을 부각시켜주는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 오직 배우들만의 몸과 이야기를 통해서 주제를 전달하려는 이 영화는 사뭇 연극과도 많이 닮아있습니다. 연극 특유의 느낌들이 베어있는 이 작품은 다양한 영화적 기법이나 기교들은 부리지 않은 체 듬직하고 열정적으로 관객들과 소통하려 합니다. 그리고 날것의 느낌이 가득한 이 강렬한 영화는 주제의 직접적 전달이라는 과정을 통해 더더욱 그것을 부곽시키며, 단순함을 현명함으로 비트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못마땅해 하시는 지나친 폭력은 언급할만한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떤 영화의 쌩뚱맞은 씬에서 무의미한 폭력이 남발된다면 그것은 충분히 지적할만한 것이겠죠. 하지만 폭력이란 매개체가 주제의 큰 틀로서, 표현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작품에서 폭력의 과도한 사용은 지적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의 창작의 자유 이전에 필연적으로 사용되었어야할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주제를 전달하는 가장 적합한 방안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를 접한 사람으로서 폭력적인 장면들의 표현이 다소 완화된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현명한 이야기들, 놀라웠던 연기자들
한국사회의 폭력우화를 선보이는 이 영화는 8인의 피/가해자들의 관계를 한겹씩 벗겨내며 흥미롭게 진행 됩니다. 사제간의 관계에서 부터 가볍게 시작되는 이야기는, 여러가지 사사로운 갈등을 통해 긴장감을 조금씩 조성하며, 결국 다수의 사정들이 얽히게 되는 이야기의 구조로 발전하는 영리한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은 도시사람들과 시골 사람들의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각각 피해자와 가해자들이 섞인 이두개의 그룹이 작은 마찰이후 한자리에 모두 모이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 과정속에서 하나씩 소개되는 인물들은 대부분 소모되지 않은 체 자신의 위치에서 극의 분위기를 상승해 나가도록 도움을 줍니다. 화기애애한 초반 분위기는 간간히 코미디적 요소들이 사용되며 관객의 긴장을 풀게끔 만들지만, 극의 진행과 함께 밝혀지는 구타의 피해자와 가해자들의 관계와 늘어가는 폭력성은 점점 극한의 상황으로 이야기를 끌고가며 관객의 몰입을 유도 합니다. 한정된 공간안에서 영리하게 풀어나가는 이러한 진행은 보는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극의 후반부는 한석규와 이문식이 열연한 문재와 봉연의 이야기들이 펼쳐지며, 이야기는 깔끔하게 정리가 됩니다. 문재라는 구타의 근원이 등장함과 동시에 지금까지 진행되온 폭력의 연계고리들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에서 허물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관객들은 끊을 수없는 순환의 잔인한 고리들이 얽히고 섥히는 것을 바라보며 <구타유발자들>의 현명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문식은 극의 중점적인 인물인 봉연을 연기하면서, 그간의 영화에서 그가 보여줬던 상극의 캐릭터들의 공존을 시도합니다. 그의 이중적인 모습은 지금까지 이문식이 연기했던 캐릭터중 단연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시절 문재에 의해 피해자 취급을 당하던 온순한 모습과 폭력의 피해자였던 과거에 대한 복수심에 의해 탄생된 가해자로서의 그의 모습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그리고 극한의 상황까지 도달한 다수의 얽힌 관계들은 문재의 등장과 함께 깔끔히 정리가 되는데, 그의 존재는 봉연의 폭력에 대한 사정을 일러주고, 순환과 연계라는 극의 주제를 연결시키며 <구타유발자들>을 완전하게 연결짓는 방점의 역할을 해줍니다. 가장 적은 분량을 나왔음에도 그만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극 전체를 장악하는 한석규의 열연도 눈부셨습니다.
폭력적이기에... 저돌적이기에 더욱 마음에 들었던 영화였던것 같습니다. <구타유발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