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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왕 - 장진 감독님 반가워요

2010. 9. 21. 00:37 Film Diary/Review



<퀴즈왕>을 보고 극장을 나서며 장진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떠올려봤어. 한때나마 가장 좋아했던 감독인 만큼
그의 작품은 거진 다 본것 같더라. 비록 연극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희곡집을 통해서 읽어봤었고, 단편 <소나기
는 그쳤나요?>와 장편 <굿모닝 프레지던트> 제외한 모든 극영화들은 다 본것 같았어. 난 그의 신작이 항상 반가
웠어. 그리고 굉장히 행복했어. 그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아이러니가 참 좋았거든. 손재곤 감독이 <달콤 살벌한 연인>
을 내놓았을때, 많은 이들이 대사빨의 대세는 장진에서 손감독으로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자주하는걸 봤었는데, 
나는 아닌것 같았어. 왜냐면 애초에 장진은 그렇게 단선적인 희극인이 아니라고 생각했었거든. 물론 감각적이고 
기발한 대사의 가치도 소중한 것이지만, 진정 훌륭한 작품은 그 이상의 것, 충돌과 오해 속에서 기민하게 헤엄치는
인물과 상황들이 만들어낸 장치. 장진 감독은 그런걸 참 잘하는 사람 같았어. 그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희극적 원천
은 덕배와 화이의 세상, 치성과 이연의 세상 속 인물들의 입을 통한 직접적인 웃음보다는 사람과 사람 그리고 상황
과 상황 사이에서 삐져나온 아이러니와 여백이라고 생각했거든  

 유독 코미디 장르에 관심이 많은 나였기에 그런 장진 감독이 참 좋았어. 하지만 <박수칠때 떠나라>를 기점으로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 새로운 시도를 하는 예술인을 비좁은 시야로 바라본다는건 굉장히 어리석고 위험한
것임을 잘 알고 있지만, 장진 감독에게는 한가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는 최고의 연극인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발한 이야기꾼 중 한명이지만, 영화판에서는 그닥 훌륭한 연출가는 아니란 거야. 그가 써낸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고, 그 이야기를 따라가는 배우와 상황들 역시 너무나 훌륭한것이기에 그의 영화는 재미있고 기발할 순 있었
지만 결코 훌륭한 영화는 아니었어. 그의 인터뷰를 보거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동세대의 영화 감독들과 
비교해서 시네필적인 느낌은 별로 없는것 같았어. 많은 이들이 장진의 감독적 자질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 해오기도 
했고... 하지만 그럼에도 이토록 명확한 장르적 브랜드화와 대중적 지지를 받는건 그만큼 장진 감독의 희극적 감각이 
뛰어남을 이야기 해주는 걸꺼야.



 여하튼 그런 그가 웃음과 해프닝을 미뤄두고 미스테리와 느와르 그리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꺼내들었을때는 아쉬울 
수 밖에 없었어. 이건 비난이나 실망 보다는 아쉬움이었어. 그토록 잘하는 것이 있음에도 타 장르로 선회한 그의 모습을 
봤을땐 그다지 훌륭하지 못한 장르적 모양새와 영화적 완성도에 아쉬워하게되고, 아쉬워하면 할 수록 장진표 해프닝이 
더욱 그리워질 수 밖에 없었지. 그러던 중 <바르게 살자>의 제작자 타이틀에 오른 그의 이름은 너무나 반가웠어. 아마도 
조만간 장진의 행복한 소동극을 볼 수 있을것 같았거든. 그렇게 장진에 대한 고마웠던 과거와 근래의 아쉬움을 거쳐서 
<퀴즈왕>을 만났을땐 참 기분이 좋았어. 나에게 있어 <퀴즈왕>이란 작품은 참으로 고맙고 반가운 소동극이었어. 

 대체적으로 실망스럽단 이야기들이 많지만, 난 이 작품이 꽤나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해. 많은이들이 용두사미 라며 
부진한 후반부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하지만 그런 사유로 작품 전체를 저평가할 정도의 후반부 전개는 아니었다고 생각해.
흥미로운 초중반의 무게에 균형이 흔들린 것은 사실이지만, 이건 급격한 하강이나 무책임한 진행은 아니었어.
 난 몇가지 관점에서 이 작품에 반하게 됐는데, 일단은 도입부에서 경찰서 씬까지의 지속적인 과정이었어. 캐릭터를 생성
하고 서로를 꼬아놓는 과정. 놀라웠어. 모두가 알듯이 이 작품에는 수많은 배우. 그것도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굵직한 배우
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어. 장진 감독은 하늘위에서 이 많은 배우들을 관찰하고 조종하다가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해 그들 
각자에 맞는 옷을 재빨리 입히고 낄낄거리며 그들을 한 날 한 장소로 소집시켜. 그리고 캐릭터를 한 장소에 몰아넣고 30분 
가까운 시간을 너무나 신명나게 이끌어나가. 아마도 <퀴즈왕>의 하이라이트는 이미 초반에 나와버린 걸지도 몰라. 
 <친절한 금자씨>가 폐교씬을 위해만들어졌다면, <퀴즈왕>은 이 시퀀스를 위해 탄생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볼 정도
였어. 그리고 수 많은 캐릭터들의 자기화된 대사와 행동들이 참 절묘했어. 인물에게서 억지로 지어짜낸 대사와 행동이 아니고,
적절한 완급 조절 속에서 수긍될만한 각자의 활약이 너무 보기좋았어. 난 좌석에 앉아서 영화를 보다가 너무 기분이 좋을때는
설레곤 하는데 이 장면들이 그랬던것 같아. 미타니 코키 감독의 소동극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장진 감독의 이런 시도
가 너무 반가웠고. 그 수준도 상당했던것 같았어. 



 다음으론 캐릭터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야. 인물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캐릭터성은 희미해 지게 되거든. 물론 <퀴즈왕>도 
예외는 아니지. 타작에 비하자면 감독 특유의 독특한 설정으로서 눈에 띄는 사연을 지닌 이들이 많긴하나, 충분한 설득 
시간을 갖진 못했기에 흐지부지된 캐릭터도 몇몇 있었어. 그리고 장진식 코미디에 적합하지 못한 배우도 눈에 띄었고. 
난 그중에서 심은경양의 캐릭터가 참 기분좋았어. 모호함과 갸우뚱함이 가득한 장진표 작품에는 더없이 훌륭한 연기와 
설정이었어. 자칫 어설퍼 보이고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었던 '여나'의 캐릭터를 심은경양이 완벽히 살려낸것 같았어. 뚱한 
표정과 무관심하게 툭툭 쏟아져 나오는 대사는 사랑스러울 정도였어. 작년 최고의 발견이었던 <불신지옥>에 이어서 또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참 뿌듯하기도 했어. 그리고 류승룡씨의 희극적 역량에 대해서 처음으로 느끼게 됐어. 정말로 
다양한 표정과 가능성을 지닌 배우같더라. 

 소동극을 요리하는 장진 감독의 재치있는 솜씨와 몇몇 훌륭한 캐릭터의 조합만으로도 너무나 즐거운 만남이었던것 같아.
시도때도 없이 웃음의 잽을 툭툭 쳐주는 감독 특유의 개성도 확실히 들어났고, 무엇보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그가 선사해줬던 웃음과 조우할 수 있어서 참 좋았어. 초 저예산 기획이었기에 상대적 아쉬움이 뭍어날 순 있었겠지만,
난 충분히 만족한 한판의 해프닝이었어. 영화를 보고나서 생각한 건데, 그가 영화를 찍는 과정이나 함께 작업하는 배우들을
보면 그는 정말 행복한 감독일것 같아. 뭐 해외 영화제에 못나가고, 상좀 못받으면 어때. 그에게는 장르대신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팬들과 언제라도 그를 위해 달려와줄 배우들이 있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꾸준히 영화를 찍을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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