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을 무척 사랑한다. <달콤한 인생>이후 김지운 감독님과 함께하는 일이 잦아졌지만, 이병헌이란 배우는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에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든다. <악마를 보았다>를 멍하니 구경하다 문득 이병헌의 얼굴엔 생활이란게 보이지 않는단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지극히 영화적인 얼굴, 장르영화를 위한 얼굴로 변해가는 느낌이다. 확실히 10년전의 이병헌과는 다른 느낌이다. 데뷔초 <해피 투게더>등의 작품에서 선보였던 생활적인 인간미보단 낯선 무정형의 이미지가 점점 강렬지고 있다. 작품 선택에 의한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비현실적인 영화적 이미지가 적격인 외형과 톤이다. 그의 낯선 얼굴과 차가운 표현력은 박감독님의 냉소적 세계, 특히 지독한 농담을 거세한 철저한 하드보일드의 세계에 잘 어울릴것 같다. 두번의 작업이 있었지만 모두 아쉬운 측면이 있었다. <공동 경비구역 JSA>는 기술적 측면의 허용도는 높았지만 저만의 개성과 취향을 자유롭게 표출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르던 시기였다. <올드보이>에서의 조우가 아쉽게 어긋난 후 <컷>을 통해 재회한 두 사람의 조합은 중단편의 숙명적인 미완결성으로서 끝맺게되었다.
사족을 잘라내고 오직 극한의 무대만을 조명하고 있는 이 작품은 이병헌의 극적인 얼굴을 잘 활용한 예라고 생각한다. 이토록 멋들어진 호흡을 보고있자면 헐리웃 시장에서 각기의 방식으로 신고식을 치르고 있는 두 영화인의 역동적인 시너지를 하루빨리 세계의 영화팬들에게 자랑하고싶은 욕구를 참아내기가 힘들정도다. 두사람의 협업에 믿음을 심어준 씬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류지호의 모호한 시린 속내이다. 이병헌과 박찬욱의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보여주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박찬욱의 영화속에선 이병헌의 얼굴은 배로 냉담해지고, 이병헌의 입을 빌린 박찬욱의 영화는 더욱 짙은 장르색을 내비친다.
마지막으로 격하게 사랑하는 작품이기에 몇마디를 덧붙이고자한다. <쓰리 몬스터>의 마지막 이야기인 <컷>은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일단 단독장편에 비해 상업적 부담의 짐이 덜한 자리였기에 박감독님 특유의 고약한 우스개소리를 마음껏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무엇보다 박감독님의 뮤지컬 넘버를 어디에서 구경하겠는가. 또한 감독님의 팬으로서 즐길만한 외적 재미들도 심심치 않게 엿보인다. 봉준호 감독이 <이공>속 <싱크 & 라이즈>를 통해 괴물을 스케치했듯이 영화속 영화로 등장하는 뱀파이어물은 <박쥐>에 대한 예고이자 예행연습이었다. 극중 주인공인 영화감독 류지호의 이름은 류승완/김지운/봉준호/허진호 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하니 이 역시 흥미롭지 아니한가. 5년전쯤 시네마클래스 자리에서 이 작품을 박감독님과 함깨 스크린으로 봤던때가 생각난다. '가장 짧기에 부끄러운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어 좋아한다'며 <컷>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친절한 금자씨> 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영화다. 시야와 마음을 넓혀 박찬욱 월드의 근사한 장르놀이를 딱딱한 시선으로 뭉개는 일이 줄었으면 한다. <박쥐>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이 <스토커>행을 결정하는데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진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