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를 보며 분석하고 평가하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방송을 본후 느낌점을 언급하는 경우는 사석에서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공유하는 순간 뿐이지, 인터넷 상에서 굳이 진지하게 피드백을 보내진 않는다. 물론 생각과 취향의 공유는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시청자가 일방적 수용자의 입장을 벗어나 입체적인 위치에 서서 방송과 소통하는 요즘 시대에는 팬덤도 비판도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전파를 탄지 체 하루도 지나지 않아 노.진.요.가 개설됐다. 그리고 방송에서 그들의 캐릭터를 규정하는 중요한 척도중 하나는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분명히 발전적인 의사소통이다. 하지만 나는 예능에 있어서 만큼은 이기적인 단순 수용자가 되고 싶다. 내게 잘 맞는 예능을 보는 순간 만큼은 시원한 그늘 밑에서 보내는 휴식으로 여기고 싶다. 애정은 크지만, 그늘 밑으로 소리없이 찾아 한시간 후면 미소지으며 떠나가는 구경꾼이 되고 싶다. 아마도 이런 선택의 시발점은 방송을 통해 좋아졌던 기분마저 앗아가 버리는 듯한 비판아닌 소모적 칭얼거림 때문일 것이다. 주말 프라임 타임에 방영되는 프로에겐 필연적인 부산물일 수도 있겠지만, 본방까지 챙겨가며 팬들 간의 기분좋은 잡담까지 바득바득 비판아닌 비난으로 덮으려는 자들의 행태가 불편해서라도 생각의 공유를 피하게 됐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매주 토요일마다 나를 찾는 친구들에 대해 더욱 진심으로 대하게 되는것 같았다. 그러기에 분석이나 평가 없이, 복잡한 너와 나의 의견교환 없이 잠시 티비앞에 앉을 뿐이었다. 그냥 멍하니 방송만 보고 웃고 끝내는 것이 좋았다. 그래도 어제 방영된 <무한도전>에 관한 이야기는 꼭 해야할것 같아 처음으로 버라이어티 프로에 관한 글을 쓴다.
리얼 버라이어티란 포맷은 한국 예능에 있어 단발적 아이디어와 급히 소집된 연기자 만으론 넘을 수 없는 벽을 세웠다. 그리고 그첫 시작은 <무한도전>이었다. 이 프로 역시 처음에는 통상의 예능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부족한 방송이란 오해를 샀다. 하지만 새로운 유전자를 지닌 연출자와 죽어라 열심히인 배우가 모여 새로움을 만들어 갔다. 프로에 대한 애정과 주인의식은 방송분량 사이를 메운 사람간의 즐거움을 포착했고 그것은 조금씩 변화와 노력을 통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갔다. 사회적 신드룸과 함께 수 없는 복제품을 생산해냈다. 하지만 그들은 피고 지기를 반복, 아직까지 본 형식에 있어 <무한도전>의 진정성과 참신함을 뛰어 넘는 작품은 탄생하지 못했다. <무한도전>은 시간과 노력의 날로 세심히 세공되어 자신만이 낼 수 있는 색감과 형태를 성취한 보석이됐다. 다른이가 이와 비슷한 색과 모습은 낸다해도 이보다 더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보석은 만들기 어려울것 같다. 단순히 많은 돈을 들인다고, 유능한 연출자가 있다고, 인기있는 연기자가 모인다고, 만들 수 있는게 아닌것 같다. 이 프로는 연출자와 배우가 부딪혀 발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신비한 빛이라 생각한다. 노력을 동반한 기적의 빛. 유재석이란 배우를 중심으로 자연스레 쌓아온 관계와 신뢰가 기성의 틀을 깨는 독창적 PD를 만나 발한 빛.
어제의 특집은 이러한 <무한도전>의 내면과 땀의 역사를 가장 잘 보여준 경우라 생각한다. 가끔씩 PD는 본래 기획한 특집들을 포기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타방송에서 먼저 사용해 버려 어쩔 수 없이 선회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리얼을 전제한 버라이어티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소제가 중첩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어제같은 포맷은 그야말로 무한도전이기에 가능한 방송이었다. 다른 방송에선 시도조차 못할 구성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상상이 안됐다. 텔레파시 특집이라니, 김태호 PD는 무슨 생각인걸까. 무한도전이란 이름에 깊히 새겨진 기대감 절반과 난해한 소제에 대한 초조함 절반을 동시에 안고 티비 앞에 앉았다. 아, 역시 그렇구나. 결국 100%의 만족으로 돌아왔다. 언제나 처럼 서로의 일상과 비밀을 장난스레 주고 받으며 시작된 그들의 오늘은 서로 다른 7개의 점들을 추억의 장소로 끌어모아 그곳에서 추억의 별을 띄우기 위해 어제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무한도전의 소리없는 팬으로서 너무 벅찬 것이었다. 그 벅참은 누군가 나를 위해 손수 써내려간 편지를 받은 느낌이었다. 가을날의 쓸쓸함을 위로해줄 속깊은 메시지 안에 지난날들을 차곡 차곡 눌러담은 편지. 아주 오래된 친구가 보내온 추억과 따듯함이 베어있는 묘한 편지. 랜선과 와이파이망에 휩싸여 무심히 지나쳤던 내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일러주는 편지. 단순히 주제 만으로도 상당히 참신한 아날로그의 향수였다. 하지만 무한도전 이기에 쌓아 올릴 수 있었던 7조각의 기억과 추억들은 우리를 초대한다. 그들이 긴 시간동안 쏟아부어온 열정의 크기와 그 속에 싹튼 결속력의 단단함을 아는 이들이라면 저들끼리 공유한 추억속에도 슬며시 올라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여행아닌 여행에 올라탄 우리는 화사한 시야와 아름다운 선율 안에서 추억의 가을여행을 시작한다. 2005년의 어느날 부터 시작된 기억의 여행은 서로가 웃고 울던 수 많은 장소들을 거치며 결국엔 내 사람의 진짜 얼굴과 마주하게 될것이다. 흔히 이런 구성은 시트콤 후반부에서 극을 마무리 할때 긴 시간을 되돌아 보며 시원섭섭한 추억을 곱씹는 형태인데,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버라이어티 프로에서 이와같은 느낌을 받는다는게, 참 오랜 시간 성실히 달려온 프로란게 느껴진다.
아직 다음주가 남았지만 지금까지의 구성만 본다면 충분히 감정의 강요 없이도 충분한 감동과 공감을 이끌 수 있는 기획인것 같다. 늦은 밤까지 서로가 서로를 애타게 찾을 그들을 생각하니 다음주에도 내 가슴은 뜨거워질것 같다. 난 너무 고맙다. 그들을 보면 힘이 나고 살맛이 난다. 내 안의 부재를 가득 메워주는 그들의 우정과 노력이 참 부럽고 고마울 뿐이다. 토요일마다 나를 찾아오는 친구 <무한도전>, 어제 방송에서 이야기 한것처럼 아주 오래 오래 해먹었으면 좋겠다.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