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튀어나온 마지막 방송 공지에 맘 한구석이 시려왔다. 어째 좋은 것들은 빨리 사라져만 가는것 같다. 한국형 <애비로드 라이브>를 꿈꿔온 <라라라>의 여행길은 예상보다 일찍 끊어졌다. 결국 마지막 방송에선 진행자 김창완씨의 맺음말이나 아티스트들의 새로운 무대는 접할 수 없었다. 퇴장만큼이나 쓸쓸한 마지막 무대가 선보여졌다. 빛났던 과거의 무대를 한장 한장 넘길 수록 아쉬움만 커져가는 시간이었다. 여행의 기적을 울렸던 이승열씨의 무대로 문을 연 마지막 방송은 그간 라라라를 빛내온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돌아보게 했다. 참 좋은 아티스트들이 많았구나. 제작진의 마지막 인사도 이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인 <편지>의 선율위에 아쉬움이 묻어나는 작별의 말들이 올라왔다.
<라라라>의 종영을 보니 이승환씨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모든 것들이 앞으로 가는데 음악만 뒤로 가는 느낌이라던 이야기. 음질만은 포기할 수 없다던, 모두가 경시한다 해도 자신만은 좋은 음질의 명맥을 유지하겠다던 이승환씨의 넋두리 같은 신념이 떠올랐다.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들은 끊임없는 발전을 거듭함에도 듣는것에 관한 가치만은 퇴보하듯 소외받는 한국땅에서 <라라라>의 존재는 꽤나 큰 교훈을 선사하는 창구였다. 공중파와 케이블을 합쳐 실력파 기성가수 혹은 인디씬의 신예를 만날 수 있는 무대는 수적으론 늘어난게 사실이지만 객석없는 스튜디오에서 그네들의 진중한 공연과 음악적 소신을 엿볼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왜 하필 <라라라>가 사라진건지. <라라라>의 가장 큰 가치는 음질에 초점을 맞춘 스튜디오 녹화방식의 무게감에 있지만, 좋은 음질 만큼이나 진행자 김창완씨와 아티스트들이 나누던 음악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도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다시 들을 수 없단 사실이 못내 아쉽다. 어느 지점에 도달한 아티스트, 성숙한 현역 가수 김창완씨가 농담스레 후배들에게 건내는 이야기 속에는 음악과 삶에 대한 철학과 진심이 곳곳에 숨어있었기에 다른 방송에서 보여지는 진행자와 손님의 관계보단 음악인과 음악인의 진심이 오가는 자리로 보여서 참 좋았는데 말이다. 그나마 위안인건 <수요예술무대>가 부활한다는 소식이다. 케이블로 자리를 옮긴것과 예술성에 대한 고집이 강한 무대란 사실을 고려하면 여타 심야 음악방송과는 별개로 생각해야겠지만,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좋은 무대의 부활은 분명한 희소식이다. 5년만에 돌아왔듯, <라라라>도 몇년 후면 다시 돌아올 것이란 기대를 해본다.
얼마전 KBS 에 <음악창고>가 생겨 공중파 4개 방송사의 음악방송은 4개로 유지됐지만, 스튜디오 음악의 참맛을 알려줬던 <라라라>의 빈자리는 크기만 하다. 좋은 음악을 더 많이 소개하고자 애쓰고 있지만 대중적 균형감각을 위해 애매한 위치에 걸려있는 <스케치북>과 <초콜릿>을 제하면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는 창은 <스페이스 공감>과 <음악창고>만 남았다. <스페이스 공감>은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지금만 같길, 그리고 <음악창고>는 약간의 차별화를 두길 빌어본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무대이기에 뭔가 허전한 듯한 지금의 포맷에 약간의 변화를 꾀했으면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김창완씨가 함께하는 연주를 듣고, 서울전자음악단이 연주하는 아버지 신중현씨의 음악을 감상하며, 조규찬과 이소라의 듀엣곡을 스튜디오에서 다시 들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할까. 뭐, 이런 포맷은 분명히 부활하리라 생각하지만 갑자기 사라져버린 무대가 벌써부터 그립고 허전하다. 그런 허전함을 체워보고자 인상적인 몇몇 무대를 추억해본다.
조규찬씨와 이소라씨는 각별한 사이다. 이소라씨가 새로운 음악을 부를때면 조규찬씨의 보컬 트레이닝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좋은 음성과 남다른 감성을 지닌 이들이 함께 부르는 데미안 라이스의 <Blowers Daughter>는 라라라 에서 가장 빛
나는 듀엣곡이었다. 이소라씨가 함께하는 시간은 적긴해도 분명 가장 멋진 듀엣곡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산울림의 <너의 의미>. 다소 거칠게 표현됐지만 참 이쁜 음악이다.
소중한 사람, 소중한 것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음악이기에 같이 올려본다. <라라라>는 꽤 커다란 의미였는데.
군대에 있을때 가장 많이 들은 앨범이 장기하와 얼굴들 1집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맘에 든 음악은 바로 <정말 없었는지>.
정말이지 눈물나게 좋았다. 언제나 라이브로 들어보고 싶었지만, 대중이 바라는 장기하의 모습은 이쪽이 아니기에 <라라라>
나 <스페이스 공감>이 아니면 꽤나 듣기 힘든 노래였기에 소중한 라이브다. 마지막 방송을 장식할 만큼 장기하와 얼굴들은
<라라라>와 잘 어울리는 그룹이다. 아쉽게도 2집이 나올때쯤 이 무대엔 못 서겠군.
세련된 음악이다. 검정치마를 처음 접했을땐 기분이 좋았다. 이 사람들 음악 참 잘한다 싶었다. <라라라>에 많은 밴드들이
나왔지만 가장 맘에 들었다. 많은 노래는 못했지만, 선히 기억난다. 방송 본 이후 찾아보니 조휴일이란 사람은 비범한 사람
같더라.
만능 뮤지션 정지찬의 <잘가>다. 현재 원모어찬스로 활동하며 여기 저기 많은 곳에서 모습을 비추는데 볼때마다 참 반갑
다. 실력 만큼이나 인간적 매력도 큰 정지찬씨. 독특한 장비를 사용해 홀로 체운 이 무대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지난 2월에 방송된 봄 여름 가을 겨울 편은 너무나 훌륭했다. 25년 이상의 시간을 고유의 스타일로 단단히 굳혀온 뮤지션.
그들의 어쿠스틱한 무대는 50분간의 천국이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짓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음악 이상의 감동을 준다.
가장 최근에 발표했던 음악 <사랑은...> 이 곡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들의 노래 중 하나다. 아내인 이승신씨와 함께 작사
한 이 노래는 최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레파토리에서 빠지지 않고 불려진다고 한다.
<라라라>를 통해 가장 좋아진 음악을 뽑으라면 주저없이 윤상의 <그 눈속에 내가>를 외칠 것이다. 1년 가까이 핸드폰에
서 울려대는 이 노래는 절대 질리지 않는다. 가장 어려운 음악을 할 수 있음에도 대중적인 코드의 병행을 놓지 않는 그의
다양성과 음악성은 정말이지 감동이다.
위대한 보컬 김도향씨의 음성이 참 반가웠다. 4,5년 전쯤 김창렬씨가 프로듀스한 앨범을 무척이나 인상깊게 들었는데...
위대하다는 표현은 이에게 더할나위 없이 어울린다. <스케치북>에도 잠깐 얼굴을 비춘적이 있었지만, 그땐 아쉬움이 남
았었는데, 김목경씨와 함께한 이 무대는 좋은 추억이 될것같다.
<라라라>를 통틀어 가장 감격적인 순간은 김창완과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함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연주한 때가
아닐지. 몇달간 머릿속을 가득 메웠던 이들의 합주가 <라라라>의 대미를 장식하는걸 보니 나만 그렇게 생각한건 아닌듯
싶다. 김종진씨와 전태관씨가 흥분된 목소리로 산울림의 음악을 처음 접했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할때 음악에 대한 순
수한 열정이 느껴져서 참 좋았다.
다시보고픈 무대 1순위는 포크 뮤지션 손지연씨의 무대다. 노래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느꼇던 따스한 충격만은 선하다.
<라라라>는 끝이 났지만, 3% 미만의 저조한 시청률에도 가치있는 소수를 위해 노력하시는 심야 음악방송의 모든 제작진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들의 노력이 계속 된다면 언젠가 우리 가요계도 조금씩 변하리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