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을 작성해야지' 입으로만 중얼거리며 이래 저래 미루다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까지 다녀와 버렸다. 뒤바뀐 밤과 낮을 바로잡고자 24시간 이상을 무수면 상태로 버텨야할 상황에서 도저히 글자는 눈에 안들어오기에 공부는 때려치고 그간 미뤄온 숙원사업에 손을 대봤다. 현저히 떨어지는 현실감각 탓에 실용보단 이쁜것. 그리고 날 기분좋게 만드는 것들을 더 선호한다. 보지도 않을, 그리고 이미 예전에 다 봐버린 비디오를 책장에 차곡 차곡 쌓아놓는 이유도 단지 넓직한 이미지가 이쁘기에, 그리고 가만히 보다보면 기분도 좋아지기 때문일게다. 아마 팜플렛을 챙겨온 것도 비슷한 이유에설게다. 중학생 시절 신문지의 영화광고를 오리고, 간헐적으로 들리는 극장에서 팜플렛을 꾸역 꾸역 챙겨오는 짓거리도 아마 그냥 이뻐서 그런걸 게다. 사실 그때만해도 영화에 대해선 별 아는바도 없을 뿐더러 친구들과 약속이 있지 않으면 극장도 안가던, 영화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이쁜 것들을 줏어 모으다 보니 자연스레 영화에 관심이 생긴걸까. 여튼 우연히도 그 후 얼마 지나지않아 극장을 혼자 찾아가는 중학생이 된듯하다. 동기도 목표도 없기에, 수집 목록은 참으로 조잡하고 애매하다. 뭐 어차피 수집에서 만큼은 과유불급은 어불성설일 수 있으니 앞으로도 기준은 없을것 같다. 주기적으로 변덕치는 영화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듬성 듬성 몇년의 시간들이 비어있다.
기준도 없이 시작된 막 짓거리지만 자연스레 용솟음치는 괴상한 애착 정도는 생기긴했다. 일단 외국 영화들에 있어선 팜플렛의 호감 정도는 작품성과 비례하는것 같다. 좋은 작품, 혹은 내가 감명깊게 본 작품엔 너무나 평범한 애착이 간다. 근데 기묘한 점은 한국영화의 경우는 역으로 적용된다는 거다. 정말 이상한 영화, 평단과 관객들에게 철저히 조롱받은 작품들을 갖고 있으면 묘한 뿌듯함이 생긴다. 물론 박찬욱과 봉준호 이창동의 영화는 너무나 빛나기에 흐물거리는 종이 한장도 소중히 모시고픈 맘이 든다. 몇몇 거장을 제한다면 한국영화 시장을 좀먹은 혹은 거대한 재앙으로 기록된 작품들에 호감이 간단거다. 이번에 정리하며 발견한 것이지만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팜플렛이 2개나 있는걸 보고 너무 즐거워졌다. 몇년전에 찍은 사진이지만 다시봐도 감동적이다. <까불지마> <구세주>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긴급조치 19호> <그녀를 모르면 간첩> <제니,주노> 오, 이 놀라운 면면을 보시라. 개인적으론 깐느 영화제 콜렉션 나열에 맞먹는 전율이다. 특히나 극장에서 관람한 긴급조치는 더욱 특별하다.
이번에 목록을 정리하다보니 막연하기만 했던 팜플렛 수집에서 몇몇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첫째로 난생 처음보는 듯한 영화들이 은근히 많다는 것이다. 국내극장에 걸렸으니 누구나 알법한 배우들이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시놉시스 한글자 마저떠오르지 않는 작품들이 많았다. 도대체 실베스터 스텔론의 <디 톡스>는 무슨영화였지. 이건또 뭐야 안젤리나 졸리와 클라이브 오웬이 나오는데 난생 첨보는 느낌이다. <머나먼 사랑>이라... 영화는 많이 안봐도 영화 정보를 읽어제끼는걸 좋아하기에 개봉작들은 거진 다 알고 있다 당연시 해왔는데, 확실히 한수 배웠다. 어쩌면 머리가 안좋은 것일 수도 있겟지만.
둘째는 앞으론 누군가에게 팜플렛을 선물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이다. 대수롭지 않게 모아왔기에 대수롭지 않기에 친구들에게 주곤 했었는데, 예전 사진 속 팜플렛이 집에서 사라진걸 보니 묘하게 씁쓸한거다. 생각해보니 이건 다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뭐 선물로 주기엔 그리 대단치도 않은 종이 쪼가리니 그냥 가만히 냅두는게 상책인것 같다. 뭐 죽어라 필요한것도 아니지만, 괜히 느껴지는 공허함이 있다. 별 생각없이 줏어왔어도 10년 가까운 시간이 쌓아준 정이려나. 셋째로는 앞으로 소규모 독립 상영관에 갈땐 꼭 가방을 챙겨야겠단거다. 멀티플렉스로 나설땐 이래 저래 다른 물건들도 살겸 읽을 책도 싸갈겸 작은 가방이라도 들고가니 팜플렛을 자연스레 챙겨오는데, 시간에 딱 맞춰 영화만 보고 후딱 나오는 독립 상영관에선 팜플렛을 잊는 경우가 많은것 같았다. 뭐 팜플렛이란게 메인스트림이건 인디건 시간 지나면 어차피 다 사라질 운명이지만 인디영화 쪽 팜플렛이 이쁜 것들이 더 많은것 같다. 이번에 정리하다보니 확실히 느꼇다. 어째 제작비는 비견도 안될 꼬맹이들이 이리도 이쁜 종이위에 그림을 찍어내는건지.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감성이 참 이쁘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절감한것이 요즘엔 도통 팜플렛에 투자를 안하는것 같다. 거진 한쪽짜리 압축본에 기껏해야 접이식 구성이다. 캬, 새삼 느낀거지만 2000년대 초반만해도 뭔놈의 책같은 팜플렛도 많더라. 이거 흔한 광고지지만 해당 영화를 인상깊게 본 사람으로선 꽤 소중한 자료가 되는것 같다. 뭐 비단 분량의 문제 뿐 아니더라도 사각의 틀에서 가끔씩 벗어나는 깜찍함을 좀 발휘해줬음 좋겟다. 축구공 디자인을 빌려온 <소림축구> 팜플렛은 영화 만큼이나 유쾌했단 말이다. 펼치면 반지같이 생겨먹은 <반지의 제왕> 팜플렛은 지금봐도 신기하단 말이다. 토토로 모양에 맞춰 이쁘게 잘라놓은 요 귀여운 녀석좀 보란 말이다. 요즘엔 도통 이런 짓은 안하는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희극 조합인 에드가 라이트의 <뜨거운 녀석들>과 정신나간 <심슨 극장판> 팜플렛이다. 요렇게 달려 만코롬 조금만 신경 써줘도 참 좋은 선물이 될듯한데 말이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도 달력 디자인인데 한장 뿐이라 아까워서 접지못하는게 아쉽구려.
몇년 잊고 지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배우 이은주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까워 미칠것 같은 이은주씨. 유독 좋아하는 배우였기에 이래 저래 팜플렛도 챙겨놨었는데, 아쉽다 아쉬워. 조만간 시간이 나면 <안녕 UFO>를 한번 다시 봐야겠다. 내 기억으론 <번지점프를 하다>와 함께 이은주씨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담긴 작품이라 생각한다. 영화적 비중을 따지면 <안녕 UFO>가 훨씬 높기에 이은주하면 자꾸만 이 작품이 생각난다. 다시봐도 참 아름다운 사람이네.
아... 본론이 지나치게 뒤로 가버렸다. 결국 이곳에서 할 이야기는 수집한 자료들을 꾸준히 기록하기 위해 목록을 적어 봤단거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보단 개인적 기록 차원이라, 이 카테고리안에서 게시글은 이게 마지막이 될것이다. 페이지 상에서 꾸준히 업데이트하며 혼자 성실히 기록해보고자 한다. 일단 한국영화를 제외한 작품들은 외화로 뭉쳐놨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국가간의 어느정도 구분은 가능하지만 그럴만큼 방대한 양은 아니기에...
[ㄱ]
까칠한 그녀의 달콤한 연애비법 (2) /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 공기인형 (3) / 공작부인 / 그랜토리노 / 겟 스마트 / 권태 / 007 카지노 로얄 / 굿 셰퍼트 (2) / 고스트 라이더 / 고 / 검우강호 (3) / 가디언의 전설 (2)
[ㄴ]
나이트 메어 (2) / 나는 비와 함께 간다 (3) / 넘버 23 (3) / 나비효과 / 나루토 - 질풍전 / 뉴 폴리스 스토리 / 나오코 / 나인 / 뉴욕, 아이러브 유 / 나비부인 / 노크 / 님스 아일랜드 /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 닌자 거북이 /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 내일의 기억 / 눈물이 주룩 주룩 / 나인야드 2 / 늑대의 후예들 / 노트북 / 노스페이스 / 넥스트 / 닌자 어쌔신 (2) / 노라없는 5일 (5) / 노다메 칸다빌레
[ㄷ]
디스 이즈 잇 / 디어존 / 데이브레이커스 (3) / 데자뷰 / 대단한 유혹 / 디 톡스 / 데스워터 / 더 클럽 (3) / 드림업 / 더 리더 / 드래그 미 투 헬 / 드림걸즈 (3) / 더블타겟 / 데스노트 : L / 더 퀸 / 드리븐 / 데스티네이션 / 뜨거운 녀석들 (2) / 더 레슬러 /드래곤볼 에볼루션 / 대부 (10) / 디센트 2 / 드래곤 길들이기 (4) - 2종 / 더 코브 / 더 로드 (2) / 도쿄타워 / 돈 조바니 (3) / 대부2 (10) / 더 콘서트 (2) / 데블 (5) /
3인의 거장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 아르노 데플레생 / 미카엘 하네케) / 씨네필의 향연 (2005.04.15~ 05.01) / 2009년 6월 단편 상상극장 / 2009 빛나는 선택 (오이시맨 / 잘 알지도 못하면서 /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 보트)
[Note]
형사 - Duelist
[Post card]
천국의 속삭임 / 스폰지 하우스 - 일본 인디 필름 페스티벌 / 서핑업 / 친절한 금자씨 / 스폰지 to 스폰지 2006 / 브레이크 업 - 이별 후에 / 더 로드 / 씬시티 / 아임 낫 데어 / 흑수선 / 13구역 / 블레이드 2 / 샴 / 두사부일체 / 홍상수 감독전 / 마리 이야기 / 열혈남아 / 윈드토커 / 커튼 레이저 / 나도 모르게 (2) / 쇼킹 패밀리 /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 / 아비정전 / 천하장사 마돈나 / 주먹이 운다 / 페어러브
개인적으론 엽서나 작은 책자 따위의 기념품들을 좋아한다. 근데 요즘은 어째 이상하리만큼 홍보용 엽서는 만들지 않는 눈치다.
나름의 맥을 찾아 같이 놓고 사진찍는 일은 나같이 혼자노는 일을 즐기는 이들에게 꽤나 흥미로운 소모행위다. 과거형이 됐지만 정말 좋아했던 탐 크루즈의 작품들. 저 <바닐라 스카이> 팜플렛은 정식 팜플렛이 아니라 방한시 나눠줬던 싸인지다. 탐이 아닌 페넬로페에게 싸인을 받았는데 도저히 못찾겠더라. 뒤적 뒤적 팜플렛을 만지다보니 영화에 얽힌 옛추억도 스멀스멀 올라오긴 하는구나. 아, 탐 크루즈 참 잘생겼었지. 사랑하는 배우 디카프리오와 사랑하는 여성 전지현의 영화들도 나름의 추억과 소소한 소중함이 담겨있다. 맨 아래에 있는 <이터널 선샤인> <봄날은 간다> 팜플렛은 내가 젤 사랑하는 팜플렛 들이다. 특히 영화를 편애하는건 아니지만 전자는 비율이 후자는 재질이 맘에 든다. 물론 영화 자체도 좋아하긴 하지. 그리고 금자씨 팜플렛은 쫌 더 이쁘게 만들 수 있을것 같은데, 에이.
여기서부턴 이야기해보자면 나름의 추억과 설명거리들이 많지만 도저히 귀찮아서 못할것 같다. 그래도 몇몇 작품은 찝어서 이야기 해보자면, <하나와 앨리스>는 수능시험을 마치고 집에 들러 가방만 내팽개치고 바로 극장으로 가서 봤던 영화다. 앨리스. 이 캐릭터는 내 이상형에 가장 가까운 인간이라 한때 참 좋아했었다. 그리고 수 많은 팜플렛중 가장 쓸쓸한 느낌이 나는게 바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일게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던 느낌이 떠오른다. 저 팜플렛만 보면. 한마디로 참 불쌍한 팜플렛이다.
대미는 최초의 팜플렛으로 장식해야겠지.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 집에 굴러 들어온 최초의 팜플렛이다. 그만큼 때도 자국도 많다. 생각해보니 영화를 안봤네. 참 좋아하는 감독이긴한데 이런 장르는 진짜 못 만들것 같아서 안본것 같다.
이렇게 몇년간 미뤄오던 작업을 마쳤다. 역시 엄청나게 소모적인 짓거리였다. 와 요즘엔 뭔 짓을 해도 허무하네. 뭐, 언젠가는 좋은 기억으로 , 좋은 자료로 남겠지. 그렇게 믿어야지 뭐. 그럴린 없겠지만 저장하기를 눌렀을때 에러가 난다면 미쳐버릴것 같다. 진심으로.